국제유가가 4거래일 만에 하락세를 멈추고 반등에 성공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평화 협상 가능성이라는 지정학적 하방 압력이 여전한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핵심 인사의 금리 인하 지지 발언이 시장 전반에 퍼져 있던 공포 심리를 '위험 선호' 모드로 급선회시켰기 때문이다.
이번 반등은 단순한 기술적 반등을 넘어 향후 원유 시장의 향방이 '전쟁 리스크'에서 '거시경제 정책'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변곡점으로 해석된다.
24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 대비 0.78달러(1.34%) 상승한 배럴당 58.8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1월물 역시 0.81달러(1.29%) 오른 배럴당 63.37달러를 기록했다.
유가 흐름은 드라마틱했다. 장 초반에는 1% 넘게 밀리며 직전 거래일 기록했던 지난달 21일 이후 최저치 수준을 위협받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기대감에 따른 '전쟁 프리미엄' 소멸 우려가 시장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다만 오후 들어 뉴욕증시가 일제히 상승세를 타고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되살아나면서 유가 역시 상승 반전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원유 시장이 수급 논리뿐만 아니라 금융 시장의 거시적 유동성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유가 반등의 결정적 트리거는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의 입에서 나왔다. 월러 이사는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연준의 이중 책무(물가 안정과 완전 고용)와 관련해 현재 나의 주된 우려는 노동시장"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그는 이어 "다음 회의에서 금리 인하를 지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장에 주는 함의는 상당히 크다. 월러 이사는 연준 내에서도 시장 영향력이 막강하며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도 거론되는 중량감 있는 인사다. 그간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성향을 보여왔던 그가 '물가'보다 '고용'을 걱정하며 금리 인하를 공개 지지한 것은 연준의 정책 기조가 확실히 완화적으로 돌아섰음을 확인시켜 주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졌다.
월러 이사는 "노동시장은 여전히 약세이며 반등할 것이라는 증거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경기 침체 방어를 위해 연준이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할 것이라는 기대를 키웠고, 달러 약세와 위험자산 투자 심리 회복으로 이어져 원자재인 원유 가격을 밀어 올리는 동력이 됐다. 앞서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보여준 완화적 태도와 맞물려, 선물시장에 반영된 12월 금리 인하 확률은 70%를 상회하게 됐다.
한편 연준발 훈풍이 유가를 끌어올렸지만, 상승 폭을 제한하는 강력한 하방 요인은 여전히 상존한다. 바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 협상론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종전 시도가 가시화되면서 원유 시장에 씌워져 있던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이 빠르게 제거되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은 평화 협상이 타결될 경우, 대러시아 제재가 완화되거나 해제되면서 러시아산 원유가 글로벌 시장에 대거 쏟아져 나올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는 공급 과잉을 심화시켜 유가 급락을 초래할 수 있는 구조적 악재다.
에너지 자문회사 리터부시앤어소시에이츠는 보고서를 통해 "최근의 유가 약세는 주로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의 진전과 관련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들은 "위험 프리미엄이 단기간에 5% 이상 감소한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경계감을 표했다. 협상이 난항을 겪거나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언제든 지정학적 위험이 다시 가격에 반영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오닉스캐피털그룹의 호르헤 몬테페크 애널리스트 역시 "현재 시장은 우크라이나 평화 조약 이슈와 미국 거시경제 지표라는 두 가지 거대한 테마에 압도된 상황"이라며 시장의 변동성이 당분간 지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런 가운데 당분간 국제유가는 '연준의 금리 인하(금융 논리)'와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수급 논리)' 사이에서 치열한 줄다리기를 이어갈 전망이다. 실제로 웰스스트리트의 수간다 사크데바 설립자는 "12월 금리 인하 기대감이 글로벌 위험 선호 심리를 개선하며 유가의 약세 심리와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즉, 금리 인하 기대가 유가의 하단을 지지하는 버팀목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월러 이사가 언급했듯 내년 1월 회의를 앞두고 쏟아질 고용 및 물가 데이터의 향방에 따라 시장은 다시 출렁일 수 있다. 데이터가 연준의 예상보다 더 나쁘게 나올 경우 경기 침체 공포가 되살아나 원유 수요 둔화 우려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유가의 방향성은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의 금리 결정과 그에 따른 달러화의 움직임, 그리고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의 구체적인 진전 여부에 달려 있다는 말이 나온다.
단기적으로는 금리 인하 기대감이 낙폭 과대에 따른 저가 매수세를 유입시키며 반등을 시도하겠지만, 전쟁 종료라는 거대한 공급 변수가 해소되지 않는 한 추세적인 상승 전환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투자자들은 연준 위원들의 발언 수위와 우크라이나 관련 뉴스를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