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IT 플랫폼 기업들의 핵심 트렌드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데이터화하는 헬스케어로 좁혀지고 있다. 검색으로 정보를 얻고 커머스로 물건을 사고, 메신저로 소통하는 단계를 넘어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 바이오 데이터를 다루는 것이야말로 가장 고차원적인 개인화 서비스이자 거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부침은 있으나 구글이 핏빗(Fitbit)을 인수하고 애플이 애플워치를 단순한 시계가 아닌 헬스케어 디바이스로 정의하며 아마존이 원메디컬을 통해 1차 진료 시장에 진입한 배경이다.

팀네이버도 움직였다. 26일 클라우드 EMR(전자의무기록) 기업 '세나클'의 경영권을 확보하며 승부수를 던졌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변죽만 울리던 헬스케어 시장의 주변부에서 벗어나, 환자의 질병 정보와 의사의 처방이 오가는 내밀하고 핵심적인 중심부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사진=회사 제공
사진=회사 제공

딜의 재구성
네이버의 기술 중추인 네이버클라우드는 세나클에 대한 추가 투자를 단행하며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이미 8.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상황에서 경영권까지 가져간다는 설명이다. 재무적 투자가 아닌 전략적 합병(SI)의 성격이 짙은 이유다. 

세나클은 1차 의료기관, 즉 우리가 흔히 동네에서 만나는 의원급 병원을 대상으로 하는 클라우드 EMR 서비스 '오름차트'를 운영하는 기업이다.

국내 EMR 시장은 오랫동안 유비케어나 비트컴퓨터 같은 전통 강자들이 장악해 왔다. 그러나 이들 기존 시스템은 대부분 서버를 병원 내부에 물리적으로 두는 구축형(On-Premise) 방식이었다. 보안 업데이트가 번거롭고, 외부 시스템과의 연동이 폐쇄적이며, 데이터를 표준화하여 활용하기 어렵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세나클의 오름차트는 다르다. 태생부터 클라우드(SaaS) 기반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별도의 서버 설치 없이 인터넷만 연결되면 언제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으며 데이터 백업과 보안 관리가 중앙에서 이루어진다. 무엇보다 내과, 이비인후과, 소아청소년과 등 다양한 진료과목에 특화된 기능을 제공하며 의료진 사이에서 사용성이 뛰어난 차트로 입소문을 탔다. 

네이버는 이러한 세나클의 기술적 유연성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최인혁 테크비즈니스 대표가 "기술적 완성도와 플랫폼 확장성을 두루 갖춘 세나클"이라고 평한 것은 네이버가 가진 거대 플랫폼을 병원 시스템에 이식하기에 세나클의 오름차트가 가장 적합한 '그릇'이라고 판단해다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전략의 큰 그림은?

지금까지 네이버의 헬스케어 전략은 환자 중심이었다. 네이버 검색창에 증상을 검색하고 네이버 지도로 병원을 찾고, 네이버 예약으로 진료를 잡는 과정은 매끄러웠다. 최근 지도앱 업데이트로 사실상 예약 인프라로 거듭나는 상황이라 더욱 이러한 분위기가 짙어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환자가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네이버의 데이터 흐름은 끊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료실 안에서 일어나는 진단, 처방, 검사 결과는 폐쇄적인 병원 내부 EMR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르다. 이번 인수로 네이버는 병원 내부 시스템이라는 블랙박스를 열 수 있는 열쇠를 쥐게 되었다. 세나클의 EMR이 네이버의 클라우드 인프라 위에서 구동된다는 것은 향후 병원의 진료 데이터가 네이버의 생태계 안으로 안전하고 표준화된 방식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고속도로가 뚫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치밀하게 계산된 수직 계열화 전략이 보인다. 

먼저 임상시험 플랫폼 기업 제이앤피메디에 투자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는 신약 개발과 연구 단계의 의료 데이터를 확보하겠다는 의지다. 여기에 체성분 분석 글로벌 1위 인바디에 투자했다. 병원 밖 일상생활에서의 건강 데이터와 시니어 케어 시장을 겨냥한 포석이다. 이 지점에서 세나클 인수가 이어졌다. 병원 내 진료 및 치료 데이터를 확보하는 마지막 퍼즐로 볼 수 있다.

연구(R&D) - 예방/관리(Home) - 진료/치료(Hospital)로 이어지는 헬스케어의 전 주기(Life-cycle)를 커버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는 뜻이다.

하이퍼클로바X, 진료실로 들어가다

이번 인수의 가장 파괴적인 잠재력은 인공지능(AI)과의 결합에서도 나온다. 

당장 네이버는 자체 개발한 초대규모 AI 하이퍼클로바X를 보유하고 있다. 이 강력한 AI가 의료 현장에서 힘을 발휘하려면, 학습하고 분석할 양질의 '메디컬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EMR은 환자의 병력, 투약 기록, 검사 수치 등 가장 정제되고 가치 있는 의료 데이터의 보고다.

세나클 위의석 대표가 언급한 "최근 증가하는 AI 진료 지원 수요"는 바로 이 지점을 시사한다. 네이버의 음성인식 기술(Clova Note)이 의사와 환자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듣고 자동으로 차트를 작성해 주는 AI 의료 기록(Voice EMR), 하이퍼클로바X가 환자의 과거 병력과 현재 증상을 분석해 의사에게 예상되는 진단명을 추천해 주는 CDSS(임상의사결정지원시스템) 등의 기능이 오름차트에 탑재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기에 클라우드 인프라의 매력이 보태진다.

의료 데이터는 민감성 때문에 최고 수준의 보안이 요구된다. 그리고 네이버클라우드는 이미 금융권과 공공기관 수준의 보안 인증을 갖춘 국내 최고 수준의 사업자다. 개인 병원들이 개별적으로 서버를 관리하며 랜섬웨어 위협에 떠는 것보다 네이버클라우드 기반의 세나클 EMR을 사용하는 것이 보안 측면에서 훨씬 안전하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나아가 클라우드 기반 EMR은 외부 서비스와의 연동이 자유롭다. 향후 네이버가 선보일 헬스케어 관련 AI 솔루션이나, 제3자(3rd Party)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의 서비스가 오름차트 위에서 플러그인 형태로 의사들에게 제공될 수 있다. 이는 세나클을 단순한 차트 프로그램이 아닌 의료용 소프트웨어가 유통되는 거대한 플랫폼으로 진화시킬 수 있다.

슈퍼 앱(Super App) 전쟁의 서막

네이버의 궁극적인 그림은 환자용 앱과 병원용 EMR의 완벽한 동기화로 보인다. 당장 세나클은 이미 환자용 건강관리 앱 '클레'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네이버 앱과 연동시킨다면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이 확장된다.

먼저 사용자가 네이버에서 병원을 예약하고 사전에 모바일로 문진표를 작성한다. 이 정보는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의사의 오름차트 모니터에 뜬다. 진료 후 처방전은 자동으로 환자의 네이버 앱으로 전송되고, 진료비는 네이버페이로 자동 결제된다. 약국으로 이동하면서 약 조제를 미리 요청하고, 실손보험 청구는 터치 한 번으로 끝난다.

이러한 끊김 없는(Seamless) 경험은 환자를 네이버 플랫폼에 강력하게 묶어두는 락인(Lock-in) 효과를 낳을 것이다. 의사 입장에서도 예약 부도(No-show)를 줄이고 행정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기존 EMR 강자들인 유비케어, 비트컴퓨터 등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오랜 영업망을 가지고 있지만, 네이버만큼의 막강한 자본력과 클라우드/AI 기술력, 그리고 B2C(일반 사용자) 플랫폼 파워를 갖추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시장은 점차 단순 기록용 EMR에서 AI와 플랫폼이 결합된 스마트 EMR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의료계는 전통적으로 보수적이며 외부 플랫폼의 침투에 배타적인 성향이 강하다. '네이버가 의료 데이터를 독점하려 한다'는 프레임이나, 플랫폼 종속에 대한 의사들의 거부감을 어떻게 해소할지가 관건이다. 네이버와 세나클 양측 대표 모두 코멘트에서 상생과 가치 연결, 업무 혁신을 강조한 이유다.

의사들의 업무를 뺏거나 데이터를 훔쳐가는 것이 아니라 진료를 더 편하게 해주는 조력자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급선무다.

데이터 프라이버시 문제 또한 민감하다. 클라우드에 저장된 환자 정보를 AI 학습에 활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 윤리적 이슈를 얼마나 투명하게 관리하느냐가 사업의 성패를 가를 수 있다. 정부의 비대면 진료 허용 범위나 마이데이터 사업 관련 규제 변화도 중요한 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