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에서 열린 스냅드래곤 X 시리즈 아키텍처 딥다이브 2025는 40년간 이어져 온 인텔과 AMD 주도의 x86 컴퓨팅 제국을 향한 퀄컴의 선전포고이자, PC라는 기기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는 역사적인 현장이었다.
퀄컴은 자신들의 심장부인 엔지니어링 랩을 전면 개방하며 하드웨어의 아키텍처 혁신과 실제 구동 환경에서의 검증을 모두 증명해 보였다. 오라이언 CPU의 압도적인 연산 능력, 아드레노 GPU의 유연성, 그리고 80 TOPS에 달하는 NPU의 잠재력은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왜 PC 시장의 판도를 뒤집을 결정적 한 방인지를 세가지 핵심 키워드로 정리했다.

세개의 키워드
그동안 윈도우 온 암(WoA) 진영을 괴롭혔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호환성, 그중에서도 게이밍이었다. 하지만 이번 행사에서 퀄컴은 이 불신의 벽을 완벽하게 허물었다.
카를로스 도밍게즈 리드가 이끄는 게이밍 랩은 에뮬레이션은 느리다는 고정관념을 산산조각 냈다. 90% 이상의 게임 코드가 이미 GPU 네이티브로 돌아간다는 기술적 팩트, 그리고 CPU 로직의 첫 번째 패스만 번역하면 이후에는 캐시를 통해 네이티브급 속도를 낸다는 논리는 현장 시연을 통해 증명됐다.
고무적인 것은 커널 안티 치트와 AVX 명령어 세트라는 양대 산맥을 넘었다는 점이다. 포트나이트나 배틀그라운드 같은 인기 게임들이 실행조차 되지 않던 시절은 지났다. 퀄컴은 개발사들에게 코드를 다시 짜라고 강요하는 대신, 자신들이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해 에뮬레이터 단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이제 개발사들은 굳이 네이티브로 포팅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원한다면 유니티나 언리얼 엔진을 통해 손쉽게 전력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게이밍 호환성은 이제 기술적 장벽이 아닌,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한편 스냅드래곤 X2 엘리트 익스트림이 기록한 긱벤치 싱글코어 4000점 돌파는 상징적이다. 이는 모바일 태생의 아키텍처가 데스크톱 PC의 심장보다 더 강력하게 뛸 수 있음을 숫자로 증명한 사건이다. 18개의 코어 중 효율 코어를 과감히 없애고 프라임과 퍼포먼스 코어만으로 승부를 본 오라이언 CPU의 설계 철학이 적중했다.
다만 진정한 혁신은 성능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성능을 유지하는 지속력에 있다. 카우시크 칼리타 디렉터가 공개한 전력 최적화 랩은 퀄컴의 DNA가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100개 이상의 전력 레일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며 0.001와트의 낭비도 허용하지 않는 강박적인 최적화. 이것이 바로 전원 플러그를 뽑아도 성능 저하가 없는 언플러그드 컴퓨팅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다.
경쟁사들이 성능을 높이기 위해 전력 소모와 발열을 감수할 때, 퀄컴은 모바일에서 터득한 저전력 기술로 고성능을 구현했다. 팬이 없는 얇은 노트북에서도 워크스테이션급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TDP(열 설계 전력)로부터의 해방은 PC 폼팩터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예고한다.
마지막으로 온디바이스AI다. 클라우드에 의존하지 않고 노트북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온디바이스 AI는 퀄컴이 그리는 미래의 핵심이다. 80 TOPS라는 NPU 성능 수치는 단순한 마케팅 용어가 아니었다.
현장에서 시연된 사르밤 AI의 거대 언어 모델은 인터넷 연결 없이도 240억 파라미터의 복잡한 연산을 눈깜짝할 새 처리했다. 사용자의 데이터를 외부로 내보내지 않고도 회의록을 요약하고, 실시간으로 통역하며, 이미지를 생성한다. 여기에 센싱 허브를 통한 개인 음성 분리 기술과 보안 안면 인식은 AI가 어떻게 사용자의 오감(五感)을 확장하고 프라이버시를 지키는지 보여줬다.
나아가 퀄컴은 드래곤윙 브랜드를 통해 이 강력한 컴퓨팅 파워를 산업 현장으로 확장했다. 공장의 로봇을 제어하고 불량품을 검출하는 작업을 하나의 칩으로 통합함으로써, 스냅드래곤의 영토는 책상 위를 넘어 거대한 산업 생태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스냅드래곤의 봄
샌디에고에서 목격한 이틀간의 여정은 PC의 재발명(Reinvention)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우리는 오랫동안 PC를 사용할 때 뜨거운 열기, 시끄러운 팬 소음, 그리고 무거운 어댑터를 당연하게 여겨왔다. 하지만 퀄컴은 그것이 기술의 한계였을 뿐, 필연이 아님을 증명했다. 스마트폰처럼 즉각적으로 켜지고, 하루 종일 배터리 걱정 없이 사용하며, 언제 어디서나 연결되는 경험. 퀄컴은 이 모바일의 상식을 PC의 새로운 표준으로 만들었다.
인텔과 AMD가 주도하던 x86 제국은 여전히 거대하다. 하지만 그들의 성벽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 갔다. 호환성의 해자(Moat)는 메워졌고, 성능과 효율의 무기는 퀄컴의 손에 쥐어졌다. 바야흐로, 스냅드래곤의 봄이 오고 있다.

[인터뷰] "AI 거품? 이제 추론의 시대 온다"
케다르 콘답 퀄컴 수석 부사장 겸 컴퓨트/게이밍 본부장 인터뷰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 퀄컴의 심장부에서 만난 케다르 콘답(Kedar Kondap) 퀄컴 수석 부사장 겸 컴퓨트/게이밍 본부장(SVP & GM)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AI 거품론에 대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지금까지의 AI 시장이 거대 모델을 만드는 트레이닝(학습)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만들어진 모델을 각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인퍼런스(추론)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고 전망했다.
AI 버블? 천만에!
"제조, 의료, 법률, 운영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산업 현장에 퀄컴의 아키텍처가 스며들 것입니다. 지금은 기업들이 모델을 테스트하는 단계지만, 곧 이 추론 결과물이 비즈니스의 성패를 가르는 시점이 올 것입니다. 거품이 아니라, 이제 막 진짜 게임이 시작된 것입니다. 문제는 타이밍일 뿐입니다."
하지만 AI의 진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은 하드웨어 제조사에게 큰 도전이다. 칩 하나를 개발하는 데 수년이 걸리는데, AI 모델은 매주 새로운 것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콘답 수석 부사장은 유연성과 생태계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맞습니다. AI는 전례 없는 속도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1세대 플랫폼을 내놨을 때만 해도 130억(13B) 파라미터 모델 구동을 자랑스러워했지만, 지금은 모델 경량화(양자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과거에는 INT8(8비트 정수)로 처리하던 것을 이제는 INT4, INT2로도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리는 특정 모델에 하드웨어를 종속시키지 않는다"며 "여러 모델을 통합 관리하는 '오케스트레이터 레이어' 전략을 통해, 소프트웨어가 아무리 빨리 변해도 하드웨어가 이를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또한 넥사 AI(Nexa AI) 같은 파트너들과 협력해 최신 모델의 최적화를 실시간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퀄컴 내부적으로도 AI 도입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회의록 작성부터 소프트웨어 코딩, 고객 이슈 해결까지 전사적으로 AI를 활용해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며 "내 지인의 10살 딸이 AI를 이용해 자신이 쓴 소설을 비디오로 만드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런 창작 과정이 클라우드 비용 걱정 없이 노트북 안에서 공짜로 이루어지는 세상,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디바이스-투-디바이스(Device-to-Device)의 미래"라고 말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온다
"지난 10년의 시간을 되돌려 봅시다. PC 시장은 사실상 멈춰 있었습니다. 소비자들에게 PC란 무엇이었습니까? 그저 기존에 쓰던 기기가 고장이 나거나, 당장 업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야 하는 물건, 즉 '비자발적 구매(distressed purchase)'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손에서 놓지 않는 스마트폰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기기가 멀쩡해도 새로운 기능과 가치를 발견하면 지갑을 엽니다. 우리는 바로 그 역동적인 흐름을, 멈춰버린 PC 시장에 이식하려는 것입니다."
인텔과 AMD가 주도해 온 x86 기반의 레거시 PC 시장은 혁신의 동력을 잃었으며, 이제 퀄컴의 모바일 DNA와 인공지능(AI)이 결합된 새로운 플랫폼이 그 자리를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콘답 수석 부사장은 "소비자가 왜 익숙한 x86 노트북을 두고 새로운 스냅드래곤 X2 기반의 노트북을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망설임 없이 다섯 가지 핵심 가치를 제시했다.
그는 "첫째는 경쟁사를 압도하는 선도적인 성능, 둘째는 전원 연결 없이도 며칠을 버티는 선도적인 배터리 수명, 셋째는 업계 유일의 선도적인 AI 역량, 넷째는 카메라와 오디오 및 연결성을 아우르는 기술적 이점, 그리고 마지막 다섯째는 얇고 가벼운 노트북부터 다양한 형태를 포괄하는 폼팩터의 다양성"이라고 요약했다.
특히 그가 가장 힘주어 강조한 것은 단연 AI 성능 리더십이었다. 퀄컴은 이번 X2 시리즈를 통해 업계 최초로 80 TOPS(초당 80조 회 연산)라는 경이적인 NPU 성능을 제시했다. 경쟁사들이 40~50 TOPS 수준에서 경쟁할 때, 퀄컴은 단숨에 그 기준을 두 배 가까이 끌어올린 것이다.
콘답 수석 부사장은 이 숫자가 단순한 마케팅 용어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는 "80 TOPS라는 수치는 여유 공간, 즉 '헤드룸(Headroom)'을 의미한다"며 "우리가 AI 혁신을 선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소비자가 향후 2~3년 내에 마주하게 될 무거운 AI 애플리케이션들을 지금의 하드웨어가 충분히 수용하고도 남을 만큼 강력한 성능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소비자들이 AI의 효용을 크게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를 "AI 애플리케이션이 각 산업별로 매우 파편화(vertical)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변호사에게는 수만 페이지의 판례를 요약해 주는 법률 특화 AI가 필요하고, 작곡가에게는 악기 소리를 분리해 주는 음악 AI가 필요합니다. 각 직군마다 요구 사항이 천차만별입니다. 퀄컴은 이러한 다양한 버티컬 AI들이 기기 자체에서(On-device) 원활하게 돌아가게 만들기 위해 NPU 용량을 늘리고, AI 워크로드의 핵심인 DDR 메모리 대역폭을 대폭 확장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미래 대비'의 실체입니다."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퀄컴은 수많은 독립 소프트웨어 공급업체(ISV)들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법률 소프트웨어 회사인 스팟드래프트(SpotDraft)는 자사의 거대 언어 모델을 우리 NPU로 포팅해 변호사들의 업무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고, 모이세스 라이브(Moises Live) 같은 앱은 실시간으로 음악 코드를 바꾸거나 스포츠 경기 영상에서 해설과 관중 소음을 분리해 냅니다. 이 모든 것이 클라우드가 아닌 노트북 안에서 실시간으로 이루어집니다."
"엔비디아 진입? 환영한다... 기술 리더십이 유일한 생존 전략"
최근 엔비디아 등 강력한 경쟁자들이 ARM 기반 윈도우 PC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는 소식에 대해서도 콘답 수석 부사장은 여유를 보였다. 그의 자신감은 확고한 기술 리더십에 기반하고 있었다.
"경쟁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하지만 퀄컴은 이미 세대를 거듭하며 성능은 높이고 전력은 낮추는 독보적인 노하우를 축적했습니다. 우리의 전략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기술적으로 가장 앞선 결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경쟁자가 누구든, 우리는 압도적인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것으로 대답할 것입니다."
그는 스냅드래곤 X2가 ARM의 설계도(ISA)를 빌려 쓰지만, 그 핵심인 오라이언 CPU는 퀄컴이 직접 설계한 커스텀 아키텍처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남이 만든 것을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설계부터 퀄컴의 기술력이 들어가 있다는 자부심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콘답 수석 부사장은 다시 한번 미래를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AI가 자신의 일상을 어떻게 바꿀지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AI는 매일매일 우리의 삶을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향상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가장 앞단에 퀄컴의 스냅드래곤이 있을 것입니다. PC는 이제 단순한 계산기가 아닙니다. 당신의 생각을 읽고, 창작을 돕고, 업무를 대신하는 진정한 '디지털 파트너'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