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이 전개하고 있는 숨 가쁜 M&A 질주 뒤에는 자금 조달 난항과 규제 리스크라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호텔, 화장품, 조선에 이어 금융 계열사인 흥국생명이 1조 원대 몸값의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까지 참전하며 판을 키우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기초 체력과 대외 환경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국세청의 전격적인 특별 세무조사는 태광의 질주에 강력한 제동을 걸 수 있는 최대 변수로 부상했다.

현재 태광산업과 계열사들이 최근 인수를 확정하거나 진지하게 검토 중인 딜의 규모를 합산하면 약 2조 원에 육박한다. 애경산업 인수에 4700억 원, 남대문 호텔 매입에 약 2850억 원(대출 포함), 케이조선 인수 예상가 5000억 원, 그리고 흥국생명의 이지스자산운용 인수 입찰가 1조 원 등 천문학적인 금액이 필요하다. 

문제는 태광산업의 현금 동원력이다. 3분기 말 기준 태광산업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약 4900억 원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보유 부동산 등 자산 가치는 높다. '돈은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성과는 거리가 있다.

태광은 그 유동성 갭(Gap)을 메우기 위해 태광은 다양한 금융 기법을 동원하려 했다. 이런 가운데 32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EB) 발행과 주가수익스와프(PRS) 등을 검토했으나 금융 당국의 규제 강화에 가로막힌 상태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자사주를 활용한 편법적인 자금 조달에 대해 현미경 검증을 예고했고, 이에 태광의 EB 발행 계획은 전면 재검토 단계로 들어갔다. 당장 내년 1분기부터 줄줄이 돌아오는 대규모 인수 잔금 납부 일정을 고려하면 유동성 압박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자칫하면 흑자 도산이나 유동성 위기설이 불거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더욱 치명적인 악재는 국세청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의 등판이다. 기업 저승사자로 불리는 조사4국이 태광산업에 대한 비정기 특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회계 검증을 넘어선 시그널로 읽히기 때문이다. 

통상 조사4국은 대규모 탈세 혐의, 비자금 조성, 편법 승계 등의 혐의가 포착되었을 때 투입된다. 국세청은 최근 태광그룹의 공격적인 자산 매각과 인수 과정에서 발생한 자금 흐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계열사 간 부당 지원이나 자금 대여 등이 있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러한 사법 및 세무 리스크는 흥국생명의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에도 불똥을 튀기고 있다. 

심상치않다. 사실 금융회사의 인수합병에는 금융 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라는 높은 벽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심사는 대주주의 재무 건전성뿐만 아니라 도덕성과 법적 리스크까지 포괄적으로 검토한다. 

이호진 세화예술문화재단 이사장. 사진=태광그룹
이호진 세화예술문화재단 이사장. 사진=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룹의 핵심인 태광산업에 대한 고강도 세무조사까지 겹치며 금융 당국의 승인 문턱을 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쟁자인 한화생명 등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지배 구조와 투명성을 부각할 경우, 태광은 가장 높은 인수가를 써내고도 고배를 마실 수 있다.

이호진 전 회장의 경영 복귀 시도와 맞물린 이번 확장 정책이 오너 일가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의혹도 부담이다.

이 전 회장이 세화예술문화재단 이사장에 취임하며 우회적인 경영 복귀를 타진하고 있지만 시민단체의 고발과 수사 당국의 압박은 여전하다. 태광의 광폭 행보가 순수한 사업 재편이 아니라, 오너의 복귀 명분을 만들기 위한 실적 띄우기용이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다만 이호진 전 회장의 경영 능력, 나아가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강력한 장악력은 현재의 태광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부동산 운용부터 중공업, 소비재까지 아우르는 포트폴리오 재편 자체도 매력적인 청사진이라는 점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무리한 자금 조달에 따른 재무 건전성 악화, 그리고 사정 당국의 전방위 압박이라는 현실의 벽은 높지만 이를 감안한 큰 그림이 필요하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