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 칩 시장을 장악한 외산 GPU의 의존도를 낮추고 ‘기술 독립’을 이루겠다는 대한민국 AI 반도체 생태계의 3년여에 걸친 실험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실험실을 넘어 실제 병원과 산업 현장에서 국산 신경망처리장치(NPU)가 외산 칩보다 뛰어난 효율을 낼 수 있음이 입증됐다.
네이버클라우드(대표 김유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추진한 ‘AI반도체 Farm 구축 및 실증’ 사업의 모든 과업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3차년도 목표를 달성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발표는 단순한 국책 과제 종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2023년 5월부터 이달까지 이어진 이 프로젝트는 ‘국산 칩은 소프트웨어 호환성이 낮아 쓰기 어렵다’는 시장의 편견을 깨는 데 주력했다. 네이버클라우드를 필두로 KT클라우드와 NHN클라우드 등 국내 대표 CSP(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사) 3사가 판을 깔고 퓨리오사AI와 리벨리온 등 유망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이 칩을 공급하는 ‘팀 코리아’ 체제로 진행됐다.
지난 3년간 이들이 구축한 ‘AI 반도체 팜’의 연산 용량은 총 19.95PF(페타플롭스) 규모다. 하드웨어 구축에 그치지 않고 클라우드 플랫폼 위에서 4개의 실제 응용 서비스를 돌리며 상용화 가능성을 타진했다.
특히 올해 진행된 마지막 3차년도 실증은 ‘현장 검증’에 방점이 찍혔다. 칩 성능을 수치로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서비스가 돌아가는 환경에서 스트레스 테스트를 견뎌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퓨리오사AI와 손잡고 외국인 근로자와의 소통을 돕는 LLM(거대언어모델) 기반 번역 및 챗봇 서비스를 구현했다. 이 서비스는 서울AI허브와 제주위미농협 현장에 투입돼 실시간 통번역을 수행하며 외산 GPU 없이도 고성능 AI 서비스 구동이 가능함을 증명했다.
의료 AI 분야에서도 성과가 두드러졌다. KT클라우드와 NHN클라우드는 리벨리온의 NPU를 활용해 의료 현장의 난제를 풀었다. 가천대 길병원에서는 뇌 질환 진단과 예측 플랫폼을 가동해 의료진의 정밀 검진을 도왔고 우리들녹지국제병원에서는 뇌파 분석 AI 서비스를 통해 우울증 조기 탐지의 임상적 유효성을 확인했다. 생명과 직결돼 고도의 정밀함과 안정성이 요구되는 의료 분야에서 국산 칩이 통했다는 것은 기술적 신뢰도가 궤도에 올랐음을 시사한다.

객관적인 성능 지표에서도 ‘탈(脫) 엔비디아’ 가능성이 확인됐다. 한국인정기구(KOLAS) 인증 시험검사기관인 AI웍스가 효율성과 안정성 응답속도 등을 측정한 결과 일부 모델에서는 압도적 점유율을 가진 외산 GPU 대비 우수한 성능을 기록했다. 특정 AI 워크로드에서는 국산 NPU가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뿐 아니라 절대 성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데이터로 입증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실증 사업이 국산 AI 반도체 생태계의 ‘치킨 앤 에그(Chicken and Egg)’ 딜레마를 해소하는 마중물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드웨어가 있어도 쓸 소프트웨어가 없고 소프트웨어가 없으니 하드웨어를 안 쓰는 악순환을 끊고 클라우드 기업이 주도해 레퍼런스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종복 네이버클라우드 이사는 “이번 사업은 국산 NPU 기술이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되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앞으로 국산 NPU 중심으로 클라우드와 AI 서비스가 결합된 새로운 생태계가 형성될 것”이라며 “앞으로 정부와 업계가 지속적으로 협력해 단순한 반도체 칩 개발을 넘어서 AI 생태계를 확장하고 국산 NPU 기술이 산업 전반에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