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인공일반지능(AGI)으로 가는 길목에서 마주친 리스크는 ‘메모리 월(Memory Wall)’이다. AI의 두뇌인 AI 가속기(GPU)의 연산 속도는 무어의 법칙을 비웃듯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있지만, 정작 두뇌에 혈액처럼 데이터를 공급하는 메모리의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극심한 시스템 병목 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력한 엔진을 가져도 연료 공급 파이프가 가늘면 제 속도를 낼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700조 원 규모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막대한 전력만 소비하는 거대한 난로로 전락할 수 있다.

그는 왜?
올트먼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직접 찾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 산업의 심장인 GPU는 수천억 개에 달하는 파라미터를 가진 거대 언어 모델(LLM)을 학습시키기 위해 방대한 데이터를 동시다발적으로, 무엇보다 끊임없이 처리해야 한다. 그리고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고대역폭 메모리(HBM)다. 여러 개의 D램 칩을 아파트처럼 수직으로 쌓아 올리고, 실리콘관통전극(TSV)이라는 수천 개의 미세한 통로를 뚫어 데이터가 오가는 차선(I/O)을 대폭 늘린 혁신적인 제품이다.
기존 D램이 2차선 국도라면 HBM은 128차선 고속도로에 비유할 수 있다.
AI 모델이 점점 더 복잡하고 거대해지면서 HBM의 중요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고 이제 그 성능이 곧 AI의 성능을 좌우하게 되었다. 당연히 오픈AI가 스타게이트에 필요하다고 예측한 월 90만 장 규모의 HBM은 이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를 단 하나의 열쇠, ‘마스터키’였던 셈이다.
이 마스터키를 쥔 국가는 대한민국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62%, 삼성전자는 17%로 두 기업이 합산 79%라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했다. D램 전체 시장으로 넓혀도 양사의 합산 점유율은 70%를 넘긴다.
올트먼에게는 사실상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두 기업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오픈AI가 가진 복잡하고 다층적인 요구사항을 완벽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강점까지 가지고 있다.
먼저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을 맨손으로 일군 개척자이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기술 선도자다. AI 반도체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한 엔비디아에 HBM3에 이어 5세대 제품인 HBM3E까지 사실상 독점 공급하며 시장의 신뢰를 쌓았다. AI 시장의 ‘큰 손’과 십수 년간 끈끈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며 쌓아온 노하우와 최적화 경험은 오픈AI에게 무엇보다 매력적인 요소라는 분석이다.
현재 AI 생태계의 표준인 엔비디아 GPU 기반의 인프라에 가장 완벽하게 들어맞는, 검증된 메모리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파트너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종합 반도체 기업(IDM)’이라는 독보적 위상이 키포인트다. 실제로 삼성은 HBM은 물론 AI 추론에 특화된 저전력 D램인 LPDDR, 대규모 데이터를 저장하는 기업용 SSD 등 AI 학습과 추론 전 과정에 필요한 모든 종류의 메모리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세계 수준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시스템LSI(설계), 첨단 패키징 사업까지 수직계열화하고 있어 고객의 세밀한 요구에 맞춘 ‘턴키(Turnkey)’ 솔션 제공이 가능하다.
엔비디아 GPU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적인 맞춤형 AI 칩 개발을 병행하려는 오픈AI의 장기 전략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여세를 몰아 삼성전자는 단순한 메모리 공급사를 넘어 칩 설계부터 생산, 패키징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함께 논의하고 실행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파트너로서의 위상도 가지고 있다.

한국, 기회 잡는다
최근 중국의 메모리 기술이 무서운 속도로 한국을 2~3년 격차까지 추격하며 위협하는 상황에서 오픈AI의 이번 결정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에 중대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단순한 기술 우위의 재확인을 넘어 미국이 주도하는 AI 기술 패권 동맹에 한국이 핵심 파트너로 공식 편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AI 소프트웨어의 최강자인 미국과 하드웨어, 특히 메모리 반도체의 최강자인 한국의 결합은 상호보완적이며 폭발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최상의 조합이다.
올트먼이 AGI라는 인류사적 목표를 향한 여정에서 기술적 한계인 ‘메모리 월’을 함께 뛰어넘고, AI 생태계 전반을 함께 설계하며 미래를 만들어갈 운명 공동체를 대한민국으로 낙점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이재용 회장과 최태원 회장이 지난 수년간 올트먼 CEO와 분기마다 만나며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한편 글로벌 AI 동맹 구축에 공을 들여온 것 또한 미래를 내다본 치밀한 전략적 행보로 볼 수 있다.
<이코노믹리뷰>와 만난 재계 관계자가 “이번 파트너십은 단순한 기술 협력을 넘어 경제 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한, 국가 간 AI 동맹의 가장 이상적인 전략적 모델”이라고 평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올트먼은 한국에서 단순한 부품이 아닌 미래를 향한 가장 확실한 열쇠를 손에 넣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