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국가 성장 전략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0%대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를 구하고 잠재성장률 3%를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이다.

정부는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새 정부 경제성장전략'을 공개했다. 매년 발표해 온 '경제정책방향'의 명칭을 '경제성장전략'으로 변경하며 경제발전의 기틀을 잡겠다는 각오다.

전략의 핵심은 AI 기술을 경제·사회 전반에 깊숙이 이식해 국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AI 대전환'과,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첨단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는 '초혁신경제'에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총 30개의 선도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재정·세제·금융·인력·규제 완화를 총망라한 '최우선 패키지' 지원을 약속했다.

구윤철 부총리는 "우리 경제를 떠받칠 산업을 찾기 어려운 절박한 상황에서 AI 대전환 시대는 선도국가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이자, 향후 5년이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며 "추격 경제 시스템에서 벗어나 초혁신 선도 경제로의 대전환을 통해 'AI 3대 강국·잠재성장률 3%·국력 세계 5강'이라는 대통령의 경제 비전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8%에서 0.9%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위기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인구 절벽과 투자 위축으로 잠재성장률이 1%대 후반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AI를 성장 하락을 반전시킬 유일한 돌파구로 지목,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다는 방침이다.

기재부에서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재부에서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AI 대전환, 모든 시스템을 새로 설계한다
정부 경제성장전략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기둥은 'AI 대전환'이다. 단순히 특정 산업을 육성하는 차원을 넘어 기업과 공공, 국민의 삶 전반을 AI 중심으로 재편하는 거대한 국가 개조 프로젝트다. 

정부는 "AI 대전환은 인구 충격 등에 따른 성장 하락을 반전시킬 유일한 돌파구"라며 향후 5년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가상 공간에 머무는 AI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 물리적 행동을 수행하는 '피지컬 AI'에 주목했다. 로봇, 자동차, 드론 등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진 제조업과 AI를 결합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피지컬 AI 1등 국가'로 도약한다는 비전이다. 이를 위해 기업 부문에서 7대 핵심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집중 지원에 나선다.

먼저 휴머노이드 로봇 3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범용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착수한다. 2027년까지 물류 분야를 시작으로 제조, 건설, 돌봄 서비스까지 산업 전반으로 도입을 확산시킬 계획이다. 이어 2027년까지 완전 자율주행차(레벨 4)를 상용화하고, 2030년까지는 선원 없이 운항하는 완전 자율운항 선박의 핵심 기술 개발을 완료한다.

자동차, 기계 등 주력 제조업 공정을 혁신하는 'AI 팩토리' 전환도 가속화한다. 2030년까지 제조업의 AI 도입률을 40% 이상으로 끌어올려 생산성을 극대화한다는 구상이다. 나아가 TV, 냉장고 등 생활 가전에 AI를 탑재해 초기 단계인 글로벌 AI 가전 및 홈서비스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한다.

항공·소방 등 5대 공공 분야에 특화된 완전 자율비행 드론 시스템을 개발해 공공 서비스의 효율과 안전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는 방침도 나왔다. 여기에 자율주행차, 가전, 로봇, 방산 등 4대 핵심 분야에 탑재될 'K-온디바이스 AI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해 AI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마지막으로제조, 바이오헬스, 물류 등 전 분야에서 국민 생활과 밀접한 제품 300개를 선정해 AI 전환(AX)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신설, AI 기술의 체감도를 높인다.

한편 AI 대전환은 민간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부는 공공 부문 3대 분야에 우선적으로 AI를 도입해 행정 효율성을 높이고 대국민 서비스의 질을 혁신한다. ▲AI 기반 맞춤형 복지·고용 서비스 도입 ▲홈택스 등 납세 시스템의 AI 기반 전면 개편 ▲신약 허가 심사 기간 단축을 위한 AI 활용 등이 즉시 추진된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국민이 AI를 한글처럼 쉽고 편리하게 활용하도록 하는 'AI 한글화'를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초·중·고 학생부터 대학생, 군인, 일반 국민, 전문가까지 생애주기별 맞춤형 AI 교육을 제공한다. 

국립대 AI 교수에게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AI 분야 석·박사에게는 전문연구요원 우선 배정 등 병역 특례를 확대해 최고급 인재 유출을 막는다. 이어 '해외 석학·신진 인재 2000명 유치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재외 한인 연구자의 귀국을 유도하는 등 글로벌 인재 확보에도 사활을 걸 계획이다.

성공적인 AI 대전환을 위해선 데이터, 컴퓨팅 파워 등 탄탄한 인프라가 필수적이라는 점도 주목했다. 이에 정부는 2030년까지 데이터 시장 규모를 50조 원으로 키우기 위해 공공 데이터 개방을 대폭 확대한다.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분석하는 '안심구역'을 클라우드 기반으로 전환하고, 가명정보 개방 범위를 넓혀 산업·연구 현장의 데이터 활용도를 높일 계획이다.

민관 협력을 통해 2030년까지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 장 이상을 확보하고 AI 데이터 센터 확충을 위해 전력·세제·규제를 패키지로 지원하는 방향성도 눈길을 끈다. AI 혁신 기술과 서비스를 마음껏 실증할 수 있는 'AI 특화 실증단지' 구축과 'AI 기본법' 등 관련 법제도 정비도 함께 추진된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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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혁신경제, 미래 먹거리 기술 주도권 확보
정부는 AI 대전환과 함께 미래 성장 동력을 책임질 '초혁신경제 15대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첨단 소재·부품의 기술 자립을 이루고 기후 위기와 에너지 안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세계 시장을 휩쓰는 'K-붐업'을 더욱 확산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정부는 이들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첨단전략산업기금과 민간 자금을 활용해 총 100조 원 이상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 집중 투자에 나선다.

먼저 미래 산업의 쌀이 될 핵심 소재·부품의 국산화와 기술 초격차 확보에 나선다. SiC(실리콘카바이드) 전력반도체 수급에 주목한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차세대 전력반도체의 기술 자립률을 2030년까지 20%로 높이고, 국내 생산 비중을 10%로 늘린다.

LNG 화물창 국산화도 추진한다. LNG 운반선 선가의 5%에 달하는 해외 기술료 지급을 막기 위해 한국형 화물창 기술을 개발, 5년 내 5척의 대형 LNG선에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원천 기술 개발을 통해 2030년까지 초전도체 양산화 표준화 및 양산화 응용기술을 확보한다. 또 고방열 그래핀 및 특수탄소강 상용화를 통해 2035년까지 글로벌 중핵기업 10개를 육성하고, 자동차·조선용 고성능 특수탄소강 소재를 개발한다.

나아가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낸다.

차세대 태양전지 및 분산형 전력망: 차세대 태양전지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AI 기반 분산 전력망 대규모 실증사업을 통해 차세대 전력망을 전국으로 확산한다. 이어 그린수소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고, 2028년까지 한국형 소형모듈원자로(SMR) 표준설계인가를 획득해 미래 원전 시장을 선점한다는 설명이다.

스마트 양식단지와 농업 육성지구를 혁신 선도지구로 선정해 AI·빅데이터 기반 정밀 생육·사육 관리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초대형 풍력 터빈 기술을 개발하면서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에 필요한 초고압 직류송전(HVDC) 기술을 2027년까지 국산화한다. 세계 최고 수준인 10cm급 초고해상도 위성 개발도 추진한다.

한류 열풍을 타고 급성장 중인 바이오, 콘텐츠, 뷰티, 식품 산업의 경쟁력도 한 단계 더 끌어올린다.

먼저 연 매출 1조 원 이상의 '블록버스터'급 신약 개발을 목표로 AI-바이오 모델을 구축하고, 5년 내 글로벌 3상 임상시험에 직접 진출하는 기업 3개를 육성한다. 이어 게임, 웹툰 등 콘텐츠 제작 전 주기에 AI를 접목하고 콘텐츠 전략펀드를 통해 투자를 확대해 2030년까지 수출액 250억 달러를 달성한다.

맞춤형 K-뷰티 통합 클러스터를 육성해 2030년까지 중소기업 수출액 100억 달러를 달성, 글로벌 2강으로 도약하며 2030년 수출 150억 달러를 목표로 거점 재외공관을 지정하고, 농식품 글로벌 경쟁력 성장 패키지 지원을 확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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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회 시스템의 근본적 개혁
정부의 성장 전략은 기술 혁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노동, 금융, 규제, 지역 균형 발전 등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 개혁 방안도 폭넓게 담았다.

먼저 대·중소기업, 정규·비정규직으로 양극화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완화를 위해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법제화한다. 직무 중심 임금체계로의 개편을 지원하고, 임금분포 정보를 공개해 격차 해소를 유도할 방침이다.

산업재해 근절을 위해선 원·하청 통합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반복적으로 다수의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과징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도입한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까지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을 확대하고, 산재보상 신청 시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급여를 우선 지급하는 '先보상 제도'도 추진한다.

부동산에 과도하게 쏠린 민간 자금의 흐름을 기업 투자 등 생산적인 자본시장으로 유도하는 '코리아 프리미엄' 실현에 나선다. 이를 위해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등 일반 주주의 권익을 강화하고,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로 엄벌한다. 임기 내 국내 증시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목표로 로드맵도 마련한다.

기업의 혁신을 가로막는 과도한 규제도 대대적으로 손본다. AI, 자율주행 등 미래 산업 관련 규제를 우선 정비하고, 기업 규모별 규제를 전면 재검토해 '피터팬 증후군'을 해소한다.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제활동에 대한 형사 책임을 완화하고, 대신 민사적·금전적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경제형벌 제도 개편도 추진한다.

나아가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하는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정부 조사 자료를 법원에 증거로 제출할 수 있도록 하고, '한국형 증거개시제도'를 도입한다. 원자재 가격 급등 시 하도급 업체에 부담을 전가하지 않도록 하는 '납품대금연동제'는 전기·가스 요금까지 확대 적용한다.

저출생·고령화 심화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 안전망도 강화한다. 미지급 위험이 큰 현행 퇴직금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퇴직연금을 모든 사업장에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고, 매달 지급하는 아동수당 대상을 2030년까지 매년 1세씩 상향 조정한다. 부부 모두 기초연금을 받을 때 20%를 삭감하는 제도도 손보기로 했다.

수도권 중심의 1극 체제를 넘어 '5극3특(5대 초광역권·3대 특별자치도)' 균형성장으로 지역발전 패러다임도 전환한다. 동남권(자동차·조선), 서남권(AI·재생에너지) 등 권역별 특화산업을 육성하고,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에 대한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대폭 확대한다.

윤인대 기재부 차관보는 "잠재성장률은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는 만큼 죽을힘을 다해 올리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도 "AI 대전환 과정에서 마찰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실업 문제 등은 대안을 만들어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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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만능주의' 경계해야
정부가 내놓은 경제성장전략은 AI를 게임 체인저로 지목하고 재정·세제·금융을 총동원해 잠재성장률을 반등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체적인 프로젝트와 달성 목표를 제시하며 단기간 내 성과를 내겠다는 점도 이례적이다.

다만 성장 전략에 크게 방점이 찍힌 만큼, 구조개혁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양질의 일자리 부족으로 '쉬었음' 청년이 120만 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AI 특화 교육만으로는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AI 기술 도입으로 기존 일자리가 사라질 충격에 대한 사회안전망 대책도 구체성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자본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이 AI 전환에 나서기에는 초기 투자 비용이 막대한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AI 거품'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국가 경제의 명운을 AI에 거는 것이 시기상조 아니냐는 신중론도 나온다. 기술 격차, 노동시장 혼란 등 AI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안전장치와 규범 체계에 대한 논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