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경보가 지속되는 무더위에 괴물 폭우라 불리는 장마비 등으로 다른 계절의 일상보다 더 힘들고 지치니 휴가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컴퓨터의 자료 목록에 별도 항목으로 휴가, 휴식 항목이 있습니다. 휴가지만 해도 기간, 장소, 계절별로 리스트가 빼곡합니다.

그렇지만 떠남이 수반되는 번거로운 휴가가 진정한 쉼이나 휴식으로 연결되는 것인가에 평소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지요. 차라리 숲속 벤치에 누워 나무가 커가는 소리, 친구의 시골 농막에 누워 땡볕 아래 옥수수 알이 굵어지는 소리, 고추가 익어가며 매워지는 냄새 맡기, 햇빛이 사선으로 오는 저녁 무렵 풀밭에 누워 풀이 자라는 소리 듣기...이런게 진정한 쉼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지만, 어림없는 소리임을 압니다. 벽시계의 시침이 가는 것을 본 적이 없는 평범한 오감의 작동으로는 불가능한 바램인 것을.

이렇듯 약간 지쳐가는 때 직무 교육을 핑계 삼아 산속으로 피정(?)을 다녀왔는데 나름 위로가 되었습니다. 경북 청도숲체원에서 1박2일 목공교실. 처음에는 대구 아래라고 가볍게 생각해 차를 갖고 가려 했습니다. 그랬는데 그곳이 저 영남 알프스 자락의 깊은 산중에 위치해서 서울서 4시간 반 넘게 걸리는 부산 위이고 마침 장마비가 무섭게 온다고 해서 잠시 혼란에 빠졌었습니다. 다행히 멀리서 오는 사람을 위해 기차역에 픽업을 나와주는 친절 덕에 한시름 덜고 편히 갔습니다.

빗속에 잠시 걸어본 숲체원 무장애 산책길. 온통 녹색 바다라 고요한 빗소리도 내게는 녹색이었습니다.
빗속에 잠시 걸어본 숲체원 무장애 산책길. 온통 녹색 바다라 고요한 빗소리도 내게는 녹색이었습니다.

숲체원이 깊은 산속에 있는 데다 비까지 쏟아져 거기에 있던 이틀 동안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습니다. 비가 와서 나무 향기가 더 나는 걸 만끽하며 나무를 자르고, 깍고, 끌로 구석을 파내며 열 시간을 나무와 놀았습니다. 결과물로 연필꽂이와 작은 나무 책장을 만들었습니다. 집 근처 다이소 가면 이들 연필꽂이나 책장을 더 싸고 견고한 것으로 구할 수도 있을 터인데 왜 이렇게 무용한 짓을 하지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집사람과 연애 시절, 아이들 키울 때 가끔 해보았던 상대의 장점 열 가지 적어보기처럼 목공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너무 쉽게 열 가지 이상을 적을 수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우선 죽은 피해목에 다시 생명을 줄 수 있었고, 또 실제적으로 지구온난화가 문제 되고 있는 시점에 탄소를 배출하며 만들었을 프라스틱 소품 대신 나무를 재활용함으로서 원래 나무가 품고 있던 탄소를 잡아 두어 탄소 발생을 없앨 수 있다는 대의에 동참하는 것. 그 외도 집중력 부재의 시대에 목공에 푹 빠져 보낸 시간, 방안에 나무 냄새가 은은히 나는 소품을 들일 수 있고, 어린 손자에게 동물 모형을 나무로 만들어 줄 자신감이 생긴 것 등... 집에 와서도 나무 냄새와 그곳이 생각났습니다.

텔레비전이 없고 와이파이가 안되니 일찍 잠자리에 들어 밤새 빗소리를 들은 것. 숲체원을 소개하며 피톤치드 발생량을 비교해 놓았는데, 광화문의 발생량과 비교해 서울숲이 2.7배 많은 데 비해, 거기는 7.7배 많아서 그런지 공기가 달았던 것. 이틀을 세상과 제대로 절연(絶緣)하다가 돌아왔습니다. 휴가, 휴식이 이러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