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개의 이름이 한 벽면에 새겨져 있다. 이름 하나하나엔 숫자가 적혀 있다. 그 숫자는 곧 149개의 사연이며, 오랜 시간 이어진 헌신의 기록이다. 모두 10,000시간 이상을 봉사에 바친 이들이다. 그들의 이름은 지금,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 1층 ‘명예의 전당’에서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빛나고 있다.
주 20시간씩 1년을 봉사해도 겨우 1,000시간이다. 그 10배인 10,000시간은 1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바쳐야만 채울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시간의 합이 아니다. 이웃을 위해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바쳐 쌓아 올린 ‘거대한 헌신의 탑’이다.
봉사원들은 그 긴 시간 동안 이웃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홀몸 어르신께 직접 만든 밑반찬을 전하며 따뜻한 말벗이 되어 드렸고, 화재, 산불, 수해 등 재난 현장으로 달려가 따뜻한 식사와 구호품을 전하며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눴다. 어르신들의 나들이를 돕고, 명절에는 장보기를 돕는 등 복지 사각지대 곳곳에서 조용한 손길로 희망의 끈을 이어갔다.
오랜 시간 묵묵히 헌신해 온 봉사원들의 이야기는 더 깊은 울림을 준다. 가령, 임영자 봉사원은 43년간 58,000시간을 봉사하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임 봉사원은 “도움을 받은 이웃의 얼굴이 잊히지 않아서 계속하게 됐어요”라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27년 동안 25,000시간 이상을 봉사한 김태순 봉사원은 “젊음을 유지하고 젊게 살 수 있는 비결이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봉사할 수 있게 지지해 준 가족들에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한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이들의 공통점은 특별한 여유나 기술이 아니다. 그저 하루에 1시간이라도, 1주, 1달을 거듭해 묵묵히 쌓아온 시간의 힘이다. 그 시간은 모여 공동체를 변화시켰고, 자신의 삶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늘 바쁘고 지쳐 있다. 하지만, 단 1시간만 내도 누군가에겐 배움의 기회가 되고,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용기가 되며, 결국에는 세상을 바꾸는 작은 불씨가 된다.
지금, 당신의 1시간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당신의 1시간이 누군가에게 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당신의 1시간이 누군가에겐 내일을 버틸 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그 1시간은 다시 당신을 따뜻하게 비춰줄 것이다.
※ 권영규 대한적십자사 서울특별시지사 회장은 1980년부터 서울시 공직을 시작으로 부시장직, 스포츠·국제협력·자원봉사 분야의 행정, KOICA 자문과 저술 활동까지, 다양한 공공 영역에서 세상을 따뜻하게 디자인해 온 행정가 출신이다. 2023년부터는 대한적십자사 서울특별시지사에서 ‘나눔이 일상화된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ER 이코노믹리뷰 연재 칼럼 ‘나눔이 일상인 사회’는 기부·나눔·자원봉사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현장에서 경험한 동화 같은 진짜 따뜻한 이야기들을 통해,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디자인해 가는 길을 독자와 함께 찾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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