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명의 사망자를 낳은 1997년 괌에서의 대한항공 추락사고와 1993년 7월 아시아나 항공편의 목포공항 추락 참사, 그리고 지난해 12월 29일 무안공항에서의 있어선 안되는 참사까지 비행기 사고는 안타까운 인명피해를 일으키는 대표적 참사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은 재발 방지를 위해서, 나아가 앞으로의 비행을 위해서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았었던 한국민간조종사협회도 마찬가지다.

18일 서울 강서구 한국민간조종사협회에서 이충섭 한국민간조종사협회장이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사진=한국민간조종사협회
18일 서울 강서구 한국민간조종사협회에서 이충섭 한국민간조종사협회장이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사진=한국민간조종사협회

25년의 비행 경력을 가진 이충섭 한국민간조종사협회장은 특히 정책 수립의 전문성에 주목했다. 그는 "정책을 결정하는 기관에서 자리 이동이 잦은 현재 시스템에선 올바른 전문가 중심의 정책 구성이 꾸려지기 힘들다”며 “항공 전문가들이 모여서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상설위원회조차 없는 상황에서 항공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의견을 내놨다.

관련 정책 수립에 전문가들이 전면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18일 이충섭 한국민간조종사협회장을 서울 강서구 한국민간조종사협회에서 만났다.

“조종사, 정비사 관리대상 아닌 현장 안전의 참여자로 인식해달라”

이충섭 협회장은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인식이 조종사와 정비사들을 관리 대상으로 여기는 현실이 매우 유감스럽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항공 산업은 매우 까다로운 전문 산업이기에 현장에서 느끼는 애로사항이 곧 바로 안전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장의 현실과 정책이 따로 만들어져왔기 때문에 지금의 문제들이 터져나왔다는 것이 이 협회장의 주장이다.

대한항공 B787-10. 사진=대한항공
대한항공 B787-10. 사진=대한항공

이 협회장은 “항공 안전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형성돼야 하고 소통라인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전문가들로 꾸려진 항공안전청 설립과 국토교통부로부터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독립이 이뤄졌어야 했는데 지난 4월 국토부에서 발표한 항공안전 혁신 방안에서 이러한 내용이 빠진 것이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 4월 30일 ▲방위각 시설 개선 ▲활주로 운영성능 개선 ▲보안검색장비 및 안티드론 시스템 확충 ▲조류충돌 예방활동 강화 ▲항공사 정비 역량 및 기준 강화 ▲항공기 보유 대수 확대 시 AOC 재평가 등을 담은 항공안전 혁신 방안을 발표 한 바 있다. 이 협회장은 이에 대해 현장의 사람들이 느끼기엔 미흡한 부분이 다소 있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 협회장은 “조류 충돌 예방 활동을 강화한다고 했는데 기장의 입장에서 조류는 통제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라며 “제일 중요한 것은 새가 없는 곳에 공항을 짓는 것이고 불가피하게 (공항을) 지을 경우 조류 전문가들이 항시 공항에 상주해 새 떼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항공기 운항에 차질이 없도록 (정책을) 바로 시행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항공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선 항공 전문가들이 안전 라인에 배치돼야 하고 이를 위해선 여러 항공 전문가들이 모여 전문성을 담보로 한 항공안전청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협회장의 생각이다. 현재 한국은 일본, 캐나다와 함께 별도의 독립 항공안전청을 두지 않는 국가 중 하나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이 협회장은 “항공 안전 정책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의 인사인동이 잦은데 저희가 바라보기엔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보인다”며 “항철위의 존재이유도 사후 조사를 해서 다시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목적도 있어 전문성이 필요한데 그런 부분들이 결여된 것이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국토부는 정책 라인인만큼 정책과 안전은 분리되는 것이 맞다”며 “안전이 별도로 독립돼야 객관적인 조사가 이뤄질 수 있고 조화, 상생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어필했다.

현장 기장들 매번 사력 다하고 있어… 항공 염가로 탈 수 있는 교통 아닌 것 인식해달라

18일 서울 강서구 한국민간조종사협회에서 이충섭 한국민간조종사협회장이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사진=한국민간조종사협회
18일 서울 강서구 한국민간조종사협회에서 이충섭 한국민간조종사협회장이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사진=한국민간조종사협회

이 협회장은 “항공은 염가로 탈 수 있는 교통이 아니고 시간을 속도로 사는 투자”라며 “항공 안전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에 현재 항공사가 13개나 된다며 저비용 항공사(LCC)들이 탄생하기엔 다소 어려운 구석들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항공사가 양산됐다는 비판이다.

무슨 의미일까. 항공대 박사 출신인 이 협회장은 학술적으로 LCC는 대행항공사(FSC)에 비해 유류비, 공항 이착륙 비용, 착륙 공항, 기내식, 좌석 클래스 등에서 최소 2가지 이상의 결여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영국 라이언에어가 런던 착륙 시 히스로 공항이 아니라 루턴 공항에 착륙 하는 것이 대표적이나 한국은 LCC들이 김포, 인천, 제주 등에 문제 없이 착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협회장은 “이착륙 공항 등에서 LCC와 FSC가 차이가 없고 이들도 똑같이 공항에 착륙료, 정류료, 공항이용료 등을 내고 있다”며 “결국 LCC가 줄일 수 있는 건 인건비이고 이것이 안전과 직결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무안공항 참사 당시 일부 언론에서 보도됐던 기종 혹사 논란에 대해선 항공사들도 국토부가 정해둔 규정 안에서 운항을 하고 있으며 LCC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LCC가 정착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LCC가 탄생한 환경에 언론과 업계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 협회장은 “예를 들어 손님을 내리고 기내 청소를 완료하고 다시 손님을 태워 출발하는데 필요한 ‘턴어라운드 타임’이라는 것이 있다. 저비용항공사의 경우 항공기 운영시간을 최대화 하기 위하여 이 시간을 조밀하고 운영해 지연이 자주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며 경제적인 측면과 운항안전 측면의 조화를 위해 전문가들의 참여하는 항공 안전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비용항공사들은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을 하는 중이고 현장의 이야기를 발췌해서 들으려면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전문성이 필요한 데 이러한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정확히 해석할 항공청이 필요하단 의미다.

이어 현장에선 LCC, FSC 할 것 없이 운항승무원, 객실승무원, 정비사 등 직원들은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고 국토부가 감찰을 안한 것도 아니라며 규정 자체가 충분했는가, 법적 테두리를 얼마나 잘 만들었는가, 밀도의 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항공 산업 경쟁력 기반은 충분한가 등 에 대한 항공산업 전반에 걸친 진지한 숙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민간조종사협회. 사진=양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한국민간조종사협회. 사진=양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한편 한국민간조종사협회는 지난 1999년 설립돼 현재 약 5500명의 기장·부기장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협회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한국항공우주의학협회, 항공우주산학융합원, 항공대학교, 한서대학교 등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협회원인 기장들의 권익보호와 항공 유관 기관과의 정책 조율 및 제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끝으로 이 협회장은 “항공 산업의 발전을 위해선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젊은 전문가 양성이 이른 시점부터 필요하다”며 “한국은 인천국제공항을 비롯해 좋은 기체, 좋은 터미널 등이 있는 우수한 국가이고 외형 성장은 성공한 만큼 이젠 안전과 내적 발전을 다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