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넓은 통창과 고객 요청에 따른 맞춤형 청소와 빨래 서비스. 그리고 전문 의료기관과 연계한 건강관리까지.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해주는 곳이 있다. 바로 미래 먹거리로 급부상하고 있는 ‘시니어 레지던스’이다. 노인 1000만명 시대에 접어든 한국에서 노인 인구를 고객으로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특히 지난해 면세업 부진으로 불황을 겪은 호텔업계는 앞다퉈 해당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시니어 시장, 블루오션으로 떠올라

호텔업계가 '시니어 주거 사업'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사진=셔터스톡
호텔업계가 '시니어 주거 사업'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사진=셔터스톡

11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국내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수는 1024만4550명으로 집계됐다. 한국은 이제 노인 인구가 전체 주민등록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됐다.

다만 경제력을 갖춘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가 은퇴하며 우리 사회에서 노인의 이미지는 빠르게 바뀌고 있다. 기존 가난하거나 돌봄의 대상으로 인식됐던 것과 달리 이제는 높은 경제력을 기반으로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를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주체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호텔업계는 빨라지는 인구 고령화와 변화하는 노인 세대의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신사업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실제 베이비붐 세대는 ‘단군 이래 가장 부유한 세대’로 불린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내놓은 ‘2024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가구주 연령대별 순자산 보유액은 60세 이상 가구가 5억1922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증감률 또한 60세 이상 가구가 6.8%로 가장 높았으며 부채 비율도 지난해 3월 말 기준으로 전년 대비 0.5% 감소한 16.9%로 집계됐다. 한편, 같은 기간 39세 이하의 순자산은 되레 6.4% 감소했다.

정지윤 LG 경영연구원 연구원은 “최근 다른 시장에 비해 액티브 시니어(활동적인 장년) 시장이 빠르게 성장한 것은 이들의 높아진 구매력과 인구 증가에 힘입어 나타난 결과로 불 수 있다”라며 “앞으로 전체 인구 중 액티브 시니어의 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액티브 시니어 시장의 중요도는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해 호텔업계에 닥친 면세업의 불황도 신사업 추진의 배경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중국인 관광객 감소, 내수 경기 침체로 지난해 면세업계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호텔신라가 운영하는 신라면세점은 지난해 매출 3조281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9% 증가했으나 영업손실 697억원을 기록하며 적자로 전환했다.

롯데호텔도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64% 줄었다. 호텔 부문의 이익이 증가했지만, 면세점이 460억원의 영업 손실을 내며 전체 이익이 감소했다.

이외에도 인천국제공항의 임대료 부담과 높은 특허권 수수료 그리고 업계 큰손 ‘다이궁(중국인 보따리상)’과의 결별 등 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한 만큼 새로운 사업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시니어 주거 사업’ 어디까지 왔나?

서울 마곡지구에 위치한 'VL 르웨스트' 전경. 사진=롯데호텔
서울 마곡지구에 위치한 'VL 르웨스트' 전경. 사진=롯데호텔

신사업 진출은 시장 선점이 중요한 만큼 국내 주요 기업들은 시니어 주거 사업에 서둘러 진출하는 모습이다. 시작을 끊은 건 롯데호텔이다.

롯데호텔은 올해 프리미엄 시니어 레지던스 브랜드인 VL(Vitality & Liberty)을 선보인다. 회사 측에 따르면 부산 기장군 오시리아 관광단지(구 동부산관광단지)에 위치한 ‘VL 라우어’는 상반기 중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대지 면적 6만1031㎡(약 1만8461평)에 574가구의 고급 레지던스와 한방병원, 메디컬센터, 상업 시설 등을 조성한다. 이어 하반기에는 서울 마곡지구에 위치한 ‘VL 르웨스트’가 문을 연다.

해당 시설의 차별점은 호텔식 입주민 서비스다. 레지던스 입주민에게는 각종 업무 지원과 대행 서비스를 아우르는 컨시어지 서비스 그리고 세대 내 청소·정리 수납 등을 비롯해 하우스키핑 서비스가 제공된다. 아울러 호텔 셰프의 맞춤 식단 등 특급호텔의 고품격 서비스도 일상 영역에서 제공될 예정이다. 여가∙문화 서비스도 강화한다. 입주자 간 네트워킹 프로그램은 물론 롯데JTB와 연계한 여행 서비스와 같은 VL 특화 상품과 혜택도 준비 중이다. 이외에도 인프라 시설에 대한 고려를 우선해 병원 등 의료 시설 접근성이 좋은 지역으로 진출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롯데호텔앤리조트가 50년간 축적한 호스피탈리티 서비스 노하우를 주거 영역에 접목해 고급화∙전문화된 서비스를 표방한다”라고 강조했다.

호텔신라는 내달 20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정관 사업 목적에 ‘노인주거·여가복지 설치와 운영사업’을 비롯해 ‘종합휴양업’과 ‘콘도미니엄 분양·운영업’을 추가한다. 호텔 신라 관계자는 “향후 다양한 사업 기회 확보를 위해 선제적으로 정관에 사업 목적을 확대해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신세계그룹의 조선호텔앤리조트도 관련 사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지난해 ‘시니어 레지던스 서비스기획’ 부문의 채용을 진행한 데 더해 최근에는 시니어 사업을 위한 TF팀을 꾸린 것으로 알려진다.

시니어 주거 사업에 대한 호텔업계의 경쟁은 향후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 호텔업계 관계자는 “국내 사회가 초고령화 시대에 진입함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서 시니어 주거 사업에 적극 진출하는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호텔이라는 곳 자체가 서비스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진행하는 곳인데, 시니어 레지던스 사업의 경우 잘하는 것을 특화해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라며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막강한 경제력을 갖춘 6070세대가 주요 고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