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에너지 대전환이 요구되는 가운데 이에 대한 대안으로 ‘히트펌프’가 주목받고 있다.
히트펌프는 겨울에 냉매를 활용해 외부에서 끌어온 열로 실내를 따뜻하게 하거나, 여름에 실내 열을 외부로 보내 냉방하는 기술을 말한다. 열을 만드는 것이 아닌 열을 이동하는 기술로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히트펌프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5대 핵심 기술로 언급하며, 전 세계 히트펌프 수요가 연평균 8.1%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2030년까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5억 톤까지 줄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추정했다.
“탄소중립, 미활용열 사용 필수적”

10월 31일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미활용열 대토론회’가 개최됐다. 참석자들은 산업부문에서 사용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미활용열’을 적극 활용해야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히트펌프 등 친환경 기술 개발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일 한국도시계획가협회장은 토론회에서 “한국은 지난 2020년, 도전적으로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수출에 의존하며 경제발전을 이루는 국가에서 탄소중립 달성이 쉬운 일은 아니”라면서 “아주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탄소배출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지금도 제철소 고로, 원자력 등의 발전소, 변전소, 데이터 센터, 산업단지 등 수많은 곳에서 열이 발생하고 그냥 버려진다”며 “이러한 미활용 열을 활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열에너지는 전 세계 최종 에너지 소비의 절반을 차지하며, 에너지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8%를 차지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의 경우 산업 부문의 에너지 소비의 55%가 열에너지 용도로 활용되고 있으며 건물의 경우 에너지 소비의 약 80%가 열에너지 용도로 활용된다.
유럽에서는 열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각종 폐열이나 수열을 활용한 히트펌프 설비를 갖추고 있다. 독일에서는 2026년부터 모든 신축건물 난방시스템에 재생에너지 사용 목표를 65%로 세우고 바이오매스 기반 난방기나 히트펌프 설치 등을 명시했다.
맥킨지 ‘폐열 회수의 잠재성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회수 가능한 잔재 열량은 3100TWh다. 이를 활용할 경우 약 192조 원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활용열, 도시모델과 연계해야”

발제자로 나선 박문규 세종대 양자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탄소배출 문제를 고려할 때 미활용열 사용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원전의 경수형 원전·화력발전소는 40% 미만의 열효율을 가진다. 60% 이상의 열이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온배수 활용 어업, 온실, 담수화, 휴양시설 등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지만 진전되지는 않고 있다.
박 교수는 도시·공업·농어촌 연계 모델을 통한 미활용열 기술개발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스위스의 경우 베츠나우 원자력 발전소 폐열을 활용해 지역난방시스템을 공급하고 있다. 스웨덴도 원전 폐열을 활용해 인근 지역 난방과 온수 공급에 활용하고 있다. 프랑스와 미국 등에서도 폐열은 대규모 난방 네트워크를 이루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 교수는 “에너지 효율화, 탄소감축 달성을 위해 정부와 공기업의 법적·제도적 지원은 중요하다”면서 “기술 혁신을 통해 탄소중립 도시로 나아가는 미래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영삼 한국지역난방공사 부장은 지역난방의 개념을 확대해 공사가 ‘미활용열 사용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한난은 지난 3월 삼성전자, 산업통상자원부와 ‘반도체 산업 폐열을 활용한 저탄소·친환경 에너지 수급 모델 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발생하는 폐열방류수를 지역난방 열원으로 활용해 산업 부문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열 생산에 소요되는 액화천연가스(LNG) 비용을 절감한다는 목적이다.
한난이 추진하고 있는 에너지 섹터커플링(P2H) 사업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P2H(Power to Heat)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잉여전력을 열로 변환해 저장, 공급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조 부장은 “폐열은 도시 산업 특성에 따라 다르다. 미활용열을 통해 지역의 탄소배출을 줄이고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위한 연구개발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토론자들은 넷제로를 위한 열에너지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대두되고 있으나, 정부 로드맵 및 경제·정책적 지원은 미흡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대안으로 주목받는 히트펌프는 글로벌 시장에서 탄소중립 정책과 함께 확대되고 있다. 코트라에 따르면 미국 히트펌프 수요는 2022년 약 70억 달러에서 연평균 4.5% 성장해 2027년 88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캘리포니아도 히트펌프 수요가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작년 기준 약 150만 개의 히트펌프가 가동, 신규 단독 주택 중 히트펌프 실내 난방기의 점유율은 55%에 달한다.
미국은 IRA를 통해 최대 30%의 세액 공제와 보조금을 제공한다. 주택 냉난방용 히트펌프 설치에 최대 8000달러, 히트펌프 온수기 설치에 최대 1750달러까지 리베이트도 제공한다.
오 박사는 “미활용 열을 어떻게 활성화할 수 있을지는 이미 해외 사례를 통해 제시되고 있다 ”면서 “발생이 예상되는 미활용 열을 파악해 도시 열 소비에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열에너지 부문은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경로”라면서 “열에너지 용도에 따라 대안이 될 수 있는 기술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