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솔루션 석유화학 계열사인 여천NCC 제2사업장 전경. 사진=여천NCC
한화솔루션 석유화학 계열사인 여천NCC 제2사업장 전경. 사진=여천NCC

최근 글로벌 공급과잉과 수요둔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석유화학과 정유산업의 탈탄소 돌파구 모색을 위해 산업계와 정부가 머리를 맞댔다. 이들 산업은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 특성상 탄소중립 달성이 어려운 대표적인 업종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1일 상의 회관에서 산업통상자원부와 공동으로 제2차 ‘산업부문 탄소중립 정책협의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석유화학·정유산업은 석유를 원재료로 하는 특성상 제품생산과 연료연소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이 많은 산업으로 꼽힌다. 석유화학산업과 정유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각각 4690만 톤(2위)과 1590만 톤(4위)으로 산업 부문의 24%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수출주력산업인 두 산업은 주요국 탄소규제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은 현재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6개 품목에만 적용되지만 유기화학, 플라스틱 등 석유화학제품과 원유정제 분야로 확대 논의 중이다.

향후 도입 가능성이 높은 미국의 청정경쟁법(CCA) 역시 탄소조정세 부과대상으로 화학제품·화학비료, 석유정제품, 에탄올 등 12개 품목을 정조준하고 있다.

업종별 온실가스 배출량(단위=백만톤, 2018년 기준). 사진=대한상공회의소, 에너지경제연구원
업종별 온실가스 배출량(단위=백만톤, 2018년 기준). 사진=대한상공회의소, 에너지경제연구원

업계에서는 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기술 상용화, 재생에너지 도입 확대, 저탄소·고기능 소재 기술개발 지원 등 구체적인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특히 탄소감축 투자의 경제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회의에 참석한 이상준 서울과기대 교수는 “국내 석유화학·정유산업은 주요국의 탄소규제에 발맞추지 못하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며 “여러 대안을 함께 모색하면서 성공적인 대안으로 좁혀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첫 발제에 나선 박인철 롯데케미칼 부문장은 “석유화학은 업종 특성상 탄소 경쟁력이 취약하지만 태양광, 풍력, 전기·수소차 등 친환경 사업이 모두 석유화학제품에 의존하고 있어 제품 수요는 2060년까지 3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수소, 재생에너지, CCUS 등 인프라를 구축해 연·원료 대체와 간접배출 감소 등을 지원하고 탄소차액계약제도 등 기업들이 탄소감축에 더 적극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달라”고 건의했다.

정유업계는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2035 NDC)가 산업의 구조적 한계와 기술적 어려움을 고려해 현실적인 목표가 돼야 하고, 탄소감축기술의 상용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발제에 나선 안국헌 대한석유협회 실장은 “정유산업은 원료와 제품이 모두 탄소 기반이라 감축 기술이 매우 제한적”이라며 “업계가 지속가능항공유(SAF), CCUS, 합성연료(e-fuel) 등 감축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경제성이 낮고 초기 단계에 있어 널리 적용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어 “정부가 국가과제로 감축 기술 개발 및 상용화, 대체원료 공급체계 마련 등 정책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유연백 대한석유협회 상근부회장도 “탄소중립정책이 단기적인 감축성과에만 치중되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산업의 실질적인 전환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2035 NDC 수립 및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석유화학·정유 업계의 노력을 당부하면서 다배출업종의 탄소감축을 위한 제도적 지원과 무탄소 에너지 확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강감찬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관은 “직접배출(Scope1) 감축이 어려운 업종 특성을 고려할 때, CCUS를 통한 감축, 공정 전기화 등을 주요 감축수단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정부는 ‘CCUS법’ 하위법령을 차질 없이 마련해 R&D·규제개선·표준 등 지원이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업계투자를 뒷받침하고, 무탄소 에너지를 확대해 공정 전기화에 따른 탄소감축효과가 증대되도록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석유화학과 정유산업은 탄소감축이 구조적으로 매우 어려워 기업 혼자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만큼, 민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제도적 지원을 적시에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