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 1도크 전경.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 1도크 전경.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한화)이 호주 방산업체 ‘오스탈’ 인수를 중단했다. 실사 수수료 선납 요구 등 통상적이지 않은 조건 제시에 여러 이견이 발생한 결과다. 

한화오션은 호주를 포함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지속적으로 모색할 방침이다.

“실사 원하면 선납 수수료 내라”…비협조적 태도 보인 오스탈

한화오션은 “호주 조선·방산업체인 오스탈의 경영진 및 이사회와 인수 관련 협의를 2024년 9월 25일 기점으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며 “오스탈 측에도 중단 의향을 통보했다”고 26일 밝혔다.

한화오션에 따르면, 한화는 지난 1년 동안 오스탈에 세 번의 명확한 인수 조건을 제시하면서 지속적인 협의를 이어왔다. 하지만 오스탈이 ‘전례 없는’ 입장을 고수하며 비협조적인 태도를 견지해 왔다는 설명이다.

오스탈은 지난 6월부터 한화오션에게 실사를 위해 수수료 500만달러(약 66억원)을 납부해야 하고, 미국이나 호주가 인수 승인에 부정적일 경우 한화에 수수료를 돌려주지 않겠다고 주장해왔다. 약 9300억원에 달하는 큰 인수전에 뛰어드는 한화로서는 리스크 최소화를 하기 위해 실사가 필수적이지만, 오스탈이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제시한 셈이다.

당초 오스탈은 한화에 꾸준히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호주 현지 언론 ‘디 오스트레일리안 파이낸셜 리뷰(AFR)’, ‘디 오스트레일리안’ 등에 따르면, 오스탈은 지난 3월부터 한화의 현장 실사를 예정일 하루 전날에 취소하는 등의 태도를 고수했다. 4월에는 호주 규제당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FIRB)’의 승인 불투명성을 이유로 또다시 인수를 반대했다. 이번 오스탈이 한화에게 요구한 실사 수수료의 명목은 ‘실사로 인한 휴업 수당’이었다.

한화는 “호주 정부 및 국방 고위 관계자들과 협의한 결과, 한화의 오스탈 인수에 대한 규제 리스크가 극히 낮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며 “이러한 내용을 오스탈 측에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인수를 위해 세 번의 협상안을 제안하고 12개월의 유예에 동의했으며, 미국과 호주 규제 당국의 예비 승인 검토까지 거치며 충분한 신뢰를 심어줬다는 입장이다. FIRB 승인 역시 이미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리차드 마를스 호주 국방부 장관은 지난 5월 초 “민감한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안보 협정만 뒷받침된다면 한화의 오스탈 인수 우려점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한화가 호주에 레드백 장갑차를 수출하는 등 호주 방산 기반 투자 실적을 입증하고, 다수의 무기체계 공급 계약을 체결한 이력이 있어 규제 가능성이 낮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오스탈 이사회에서 마지막까지 미온적인 태도를 고수했고, 결국 한화는 오스탈이 협상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중단을 통지했다.

오스탈 인수 중단, 마침표 아닌 쉼표

오스탈은 미국 앨라배마 조선소를 소유하고 있다. 미국·영국·호주가 체결한 인도태평양지역 안보협력 ‘오커스’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지난해 12월 미 해군과 3척의 의료선을 건조하는 13억달러 규모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번 인수 중단으로 필리조선소에 이어 앨라배마 거점까지 확보하며 미국 함정 사업에 진출하고자 했던 한화오션의 중장기 전략이 다소 수정될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한화는 당분간 지난 6월 인수한 필리조선소의 노화 설비를 보수하고, 재무 상태를 개선하는 등 인수 마무리 작업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인수 중단이 한화오션의 막심한 타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미 4만톤 규모의 미해군 군수지원함 창정비 사업을 수주하는 등 미국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기 때문이다.

미국 필리조선소 전경. 사진=한화오션
미국 필리조선소 전경. 사진=한화오션

미국은 중국과의 남중국해 패권 다툼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해군력 증강이 절실하다. 현재 미국 내 조선소는 자생 능력을 거의 잃은 상황으로, 우방국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카를로스 델 토로 미 해군 장관은 지난 2월 직접 한국 조선소를 방문하면서 한국 업체들의 MRO 시장 참여를 독려한 바 있다. 이후 미국은 한화오션이 필리조선소를 인수하며 현지 생산·MRO 거점을 확보하자 “새로운 해양치국 판도를 바꾸는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환영하기도 했다.

또한 MRO 사업은 단순 MRO에서만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 회계감사원의 2022년 5월 보고서에 따르면, 미 해군은 2025년부터 2029년까지 5년에 걸쳐 컬럼비아급 잠수함 5척, 버지니아급 잠수함 9척, 알레이버크급 구축함 10척, 컨스텔레이션급 유도 미사일 호위함 7척을 포함해 수많은 전함을 건조할 계획이다. 자국 조선산업만으론 물량을 온전히 소화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따른다. 한국 조선업계에도 기회가 될 수 있다.

한화오션도 더 멀리 내다보겠다는 계획이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오스탈 인수 검토는 중단하지만, 호주를 포함해 국내외에서의 새로운 사업 기회를 지속적으로 모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당분간 독자노선을 걷게 된 오스탈 역시 많은 변화를 맞닥뜨릴 예정이다. 피터 로버츠 전 AFR 칼럼니스트 겸 호주 비즈니스 재단 이사는 “오스탈이 호주 국영 방산업체 ‘호주잠수함공사(ASC)’와 합병할 수도 있다”고 논평했다. 오스탈이 미국 정부와 미 ‘제너럴 다이내믹스 보트’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미국내 잠수함 부품 제작 설비에 투자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