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이 건조한 고정식 원유생산설비가 카타르 알샤힌 유전지역으로 출항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사진=한화
한화오션이 건조한 고정식 원유생산설비가 카타르 알샤힌 유전지역으로 출항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사진=한화

한화의 인수합병(M&A) DNA가 다시 한 번 꿈틀 거린다. 한화는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데에 이어 올해 미국 ‘필리 조선소’를 매수하고, 싱가포르 ‘다이나맥 홀딩스’의 경영권까지 노리고 있다. 이를 통해 일반 상선은 물론 특수선과 해양 플랜트 사업 전반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인수로 그룹 시작, 성장도 M&A로

한화의 역사는 곧 인수합병의 역사다. 미군정 당시 한화 그룹의 창업주인 고 김종희 회장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화약 판매를 독점하던 조선화약공판을 낙찰받으면서 그룹 시작을 알렸다. 

이후 국내에서 인수합병이란 개념도 생소하던 1960년대 베어링 제조사인 신한베어링을 인수하면서 몸집을 부풀렸다. 자동차와 산업기계에 들어가는 필수 부품인 베어링을 국산화하는데 성공하면서, 수입에 의존하던 국내 제조업체에서 국산화의 길을 열었다. 

한화는 인수합병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1982년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을 인수해 대기업 발열에 올라섰고,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증권사와 보험사를 사들이며 금융업으로 확장했으며, 2010년대에는 삼성과의 ‘빅딜’을 통해 차세대 성장동력을 확보했다. 

김승연 회장은 취임 직후 화학산업의 수직계열화를 위해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을 인수했다. 당시 1970년대말 불어닥친 ‘제2차 오일쇼크’로 석유화학 경기가 크게 위축되면서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은 각각 75억원, 430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었다. 석유화학산업의 전망이 불투명한 시절, 김승연 회장은 간부들의 만류에도 인수를 단행했다. 

폴리염화비닐(PVC)을 생산하는 한화가 한양화학을 인수하면 원료확보가 용이해져 가격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김승연 회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1년 만에 작자던 회사가 흑자를 기록했다. 여기에는 전 세계 석유화학 경기가 살아난 영향도 있었지만 김승연 회장의 과감한 결단이 맞물리면서 한화 그룹은 한 차례 점프업할 수 있게 된다. 

외환위기에는 선제적 구조조정으로 1조원의 여유자금을 확보한 한화는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을 인수한다. 대한생명은 대주주의 전횡과 계열사에 대한 부실 대출로 금융감독원의 특별 감사를 받고 있었다. 누적 결손금이 3조원에 달했고, 핵심인 영업 조직은 붕괴 직전이었다. 

김승연 회장은 2002년 대한생명 인수와 동시에 조직과 경영을 안정시키는 데 주력했다. 당시 맡고 있던 그룹 내 계열사 대표이사직을 모두 내려놓고, 무보수로 대한생명 대표이사에만 2년 동안 전념했다. 김승연 회장의 노력으로 대한생명은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 이후 2008년 제일화재와 2011년 푸르덴셜증권을 차례차례 인수하며 금융업 부문을 강화했다. 

인수합병을 통한 사업 확장의 성공은 2014년 삼성그룹과의 ‘빅딜’로 이어졌다. 김승연 회장은 2014년 삼성테크원(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삼성의 방산·화학 4개 계열사를 약 2조원에 인수하며 그룹 핵심 사업의 경쟁력으로 키웠다. 

삼성그룹 유화 부문 인수엔 규모의 경제·시너지에 집중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화케미칼이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을 인수해 한화종합화학과 한화토탈로 출범하면서 한화그룹은 석유화학 기초 원료인 에틸렌 생산 규모가 세계 9위 수준인 300만t까지 늘어났다. 이에 따라 원료인 나프타 대량 공동구매가 가능해져 원가가 절감됐다.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를 인수하며 항공기 엔진, 자주포 등 지상 장비 플랫폼과 항공전자, 레이더 등 방위 사업에 진출한 한화는 2016년에는 두산DST를 인수하며 기동·대공무기체계, 미사일 발사체계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이어 한화는 2023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아래 계열사들을 통합하고 대우조선해양까지 인수해 한화오션으로 출범시키며 육해공 모두를 아우르는 방산 대기업으로 거듭났다.  

海 노리는 한화

이제 한화의 다음 목표는 해양 인프라 사업 전반이다. 한화는 한화오션을 통해 확보한 해양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기 위해 올해 6월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 조선소 지분 100%를 인수했다. 인수금액은 1억달러다. 

이번 인수를 통해 한화는 미국 방산 시장 진출을 위한 교도부를 확보하고, 일반 상선·특수선·선박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 

필리 조선소는 1997년 미 해군 필라델피아 국영 조선소 부지에 설립된 이후 미국에서 건조된 석유화학제품운반선(PC선), 컨테이너선 등 대형 상선의 약 50%를 공급해오고 있다. 미 교통부 해사청(MARAD)의 대형 다목적 훈련함 건조 등 상선뿐만 아니라 해양풍력설치선, 관공선 등 다양한 분야의 선박 건조 실적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해군 수송함의 수리∙개조 사업도 핵심 사업 영역 중 하나다. 지난해 7월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해상풍력설치선 철강 절단식에 참석하기 위해 필리 조선소를 찾기도 했다.

한화시스템은 자율운항이 가능한 민간 상선 개발에 있어 공조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상선 및 함정 시스템 관련 스마트십 솔루션인 ECS(통합제어장치)‧IAS(선박 자동제어 시스템) 등 최고 수준의 해양시스템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상선 라인업과 시너지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상선에서 무인수상정‧함정 등 특수선 시장까지 빠르게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또 필리 조선소가 보유한 미국 내 최대 규모 도크는 향후 한화시스템과 한화오션의 미국 함정시장 진입 시 함정 건조 및 MRO 수행을 위한 효과적 사업장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화는 전날 싱가포르의 부유식 해양 설비 전문 제조업체인 다이나맥 홀딩스 지분에 대한 공개 매수에 나선다고 밝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오션은 싱가포르 현지 SPC(특수목적법인)를 통해 공개 매수를 진행할 계획이다. 매수가는 1주당 0.6싱가포르달러로 설정했다. 공개 매수를 위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오션은 약 6000억원(지분 100% 확보시)을 투자할 예정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오션은 지난 5월까지 이미 1158억 원을 투자해 다이나맥의 지분 25.4%를 확보했다.

다이나맥은 1990년 설립된 해양플랜트 상부구조물 전문회사로 싱가포르 현지에 두 곳의 생산거점을 보유하고 있다.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설비(FPSO)’와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설비(FLNG)’ 등 핵심 제품들에 대한 탁월한 건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같은 건조능력을 바탕으로 올해 상반기에만 약 2666억원의 매출과 약 398억원의 순이익을 거둬 이익률이 15%에 육박한다.

전 세계적으로 향후 2030년까지 83기의 FPSO 발주가 예상되는 등 부유식 해양 플랜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다이나맥 경영권을 확보하게 될 경우, 한화오션은 해양 사업분야 생산 기지를 확대하는 멀티 야드 전략을 통해 글로벌 시장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또 경쟁사 대비 높은 품질과 원가 경쟁력을 통해 해양플랜트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한화는 “공개 매수 절차는 싱가포르 증권거래소에 공시 후 이날 시작돼 오는 12월 중으로 최종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