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 500년 전, 조선은 동아시아 굴지의 천문강국이었다. 관상감을 설치해 영의정을 최고직으로 앉히고 과거 시험인 음양과를 통해 중인을 대거 등용했다. 관상감에는 200명이 넘는 인력이 상주했다. 세종 대에는 혼천의를 자체 제작했으며, 대표적 과학자 이순지는 조선만의 독자적 역법인 칠정산내편·외편을 편찬하기도 했다. 세종 시기 개발한 29개의 과학기구 중 20개는 천문기구였다. 영조 시기에 와선 핼리 혜성의 모양과 크기, 북극으로부터의 각도까지 관측하고 기록했다.
이런 천문강국 조선의 역사는 21세기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 식민지배와 전쟁 후 타국보다 늦게 우주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음에도, 2023년 자체적으로 발사체와 위성을 개발해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다.
국내 최초 국산 상용 지구관측 위성 궤도 올라
대한민국군은 이달 4일 제주도 남쪽 해상에서 고체연료 우주발사체의 3차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을 주도했다. 1단부터 3단까지는 고체연료, 4단은 액체연료를 사용한다.
이번 발사는 지난해 3월과 12월 두 차례 시험 발사한 이후 세 번째 시도다. 2차 발사 당시엔 1단 추진체 없이 2, 3단 발사체만 발사해 450km 상공으로 보내는 데 성공했다. 이번 발사엔 최종 개발단계에 해당하는 1단 추진체를 더해 1, 3, 4단 추진체를 갖추고 발사했다. 1~4단 추진체를 모두 갖춘 최종 발사는 2025년 예정이다.
눈여겨볼 점은 탑재 위성이다. 지난해 12월 2차 발사 당시엔 모형 위성을 탑재해 발사했지만, 이번엔 실제 지구관측용 민간 소형 위성을 실었다. 한화시스템이 자체개발·제작한 ‘소형 SAR 위성’이다.
SAR(합성개구레이다)은 공중에서 지상 및 해양에 레이다파를 순차적으로 쏜 후 레이다파가 굴곡면에 반사되어 돌아오는 미세한 시간차를 선착순으로 합성해 지상 지형도를 만들어 내는 레이다 시스템이다. SAR을 장착한 위성은 야간 및 악천후에도 영상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 자원 모니터링, 재해·재난 감시, 기후환경 감시, 안보 분야 등 활용도가 높다.
해당 위성은 국내 최초 ‘순수 국산 기술’로 개발된 상용 지구관측 위성이다. 4일 오후 2시 발사 후 우주 궤도에 안착, 오후 5시 38분에 지상관제센터와 교신을 성공했다. 대한민국의 고체 발사체 개발 기술과 민간 위성 제작 기술이 성공 궤도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이번에 발사한 소형 SAR 위성을 통해 ▲고해상도 위성 이미지 분석을 통한 환경 모니터링 ▲GIS 지도 제작을 위한 데이터 분석 ▲위성 영상 정보의 자동 융합·분석 등 다양한 부가 가치를 창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관·군 협력 빛난 차세대 우주 사업
한편 지난 2일엔 KAI(한국항공우주산업)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협업해 제작한 ‘425 EO/IR(광학/적외선) 위성’이 미국 스페이스 X사의 발사체에 실려 우주로 날아갔다. 우리 군의 정찰위성 1호기다. 내년부터 순차발사 예정인 정찰위성 2호기에는 SAR 탑재체도 장착될 예정이다.
국방과학연구소와 항공우주연구원, KAI는 지난 2018년부터 꾸준히 EO/IR·SAR 군용 정찰위성 개발을 이어오고 있다. 정찰위성 체계개발이 완료되면 대한민국군은 주요 관심지역의 관측자료를 수 시간 수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9.19 군사합의 파기와 함께 높아진 안보위기에 맞서 북한의 대남 도발을 확실히 견제·응징할 수 있는 ‘킬체인’의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항공우주방산업체 KAI의 적극적 참여가 개발 기간 단축에 기여했다. KAI는 다목적실용위성 1호부터 7호까지 개발에 참여했다. 차세대중형위성, 정지궤도복합위성,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 등 지난 30년간 정부가 추진해온 우주사업에 참여하며 국내 민간 우주 사업화를 주도해왔다.
이처럼 우리 군과 민간업체들은 협력을 통해 발사체와 위성의 국산화에 힘쓰고 있다.
올해 5월 3차 발사에 성공한 ‘누리호’ 역시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합작품이다. 누리호는 대한민국 최초의 저궤도 실용 위성 발사용 로켓이다. 누리호의 발사로 대한민국은 세계 10번째 자력 우주로켓 발사국에 올랐다. 또한 1톤 이상 실용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킬 수 있는 7개국 안에 들었다. 지난 1996년 국가우주개발 중장기계획을 수립하며 한국형 우주발사체 자력 개발의 꿈을 키운 이래로 거둔 가장 큰 성과다. 4차 발사부터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항공우주연구원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아 제작을 총괄한다.
누리호 발사가 성공하자 윤석열 대통령은 “우주강국 G7에 들어갔음을 선언하는, 산업과 과학기술계의 대단한 쾌거”라며 향후 우주 사업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을 시사했다.
대한민국은 2030년 이후엔 한국형 중궤도 및 정지궤도 발사체(KSLV-Ⅲ)의 개발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KSLV-Ⅲ을 통해 유인우주선 발사체 개발과 1단 로켓 재사용 개량 등으로 연결하는 게 목표다. 한국형 소형발사체(KSLV-s)의 개발 계획도 잡혀있다. 급속 성장 중인 소형위성 시장에 대응해 소형 발사체를 조속히 확보한다는 내용이다. 해당 사업들에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한항공 등 민간 업체들이 대거 참여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