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가 보호무역주의의 거센 파고와 인공지능(AI)이라는 기술 혁신의 기대감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관세 장벽이 높아지며 교역 비용이 상승하는 하방 압력도 커지는 가운데 기업들의 공급망 재편 노력과 AI 관련 설비 투자가 이를 상쇄하며 경기의 급락을 막아내는 분위기다. 하지만 국가별 기초체력(Fundamental)에 따른 성장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보여 2026년은 그 어느 때보다 '비대칭성(Asymmetry)'이 두드러지는 해가 될 전망이다.
이코노믹리뷰가 20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 루비홀에서 '기업 희망포럼 - 2026년 경제·산업 전망'을 연 가운데 김효상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국제거시금융실 연구위원은 '2026년 세계경제 전망'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내년도 글로벌 경제의 핵심 키워드로 '완충된 둔화(Buffered Slowdown)'와 '비대칭의 시대'를 제시했다.
김 위원은 방대한 데이터와 분석을 통해 무역 질서의 재편, 주요국의 통화정책 전환, 지정학적 리스크가 얽히고설킨 복합적인 경제 지형도를 그려냈다.

2026년 세계경제 성장률 3.0%… "저성장 고착화 속 '버티기' 국면"
김효상 연구위원은 2026년 세계경제 성장률을 3.0%로 전망했다. 2025년 전망치와 동일한 수준이다. 과거 2000년대의 고성장기와 비교하면 확연히 낮아진 수치묘 팬데믹 이전의 장기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는 지난 5월 전망치보다는 소폭 상향 조정된 것으로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는 글로벌 경제가 선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은 "2026년 세계경제는 구조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미국 등 주요국의 견조했던 성장세와 예상보다 제한적이었던 관세 충격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가 제시한 완충된 둔화는 세계 경제가 둔화 국면에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경제 주체들의 대응 기제가 작동하며 충격을 흡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평균 실효 관세율이 급등하며 무역 장벽이 높아졌지만 동시에 전 세계적인 AI 관련 민간 투자가 급증하면서 제조업 생산과 교역 감소분을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은 "기업들은 공급망 재편, 수출시장 다변화, 마진 축소 등을 통해 경기 하방 압력을 지지하고 있다"면서 "세계 경제의 둔화 추세 속에서도 이러한 조정과 완충 기제가 작용해 경기가 급락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중 관세 휴전에도 꺼지지 않는 무역 전쟁 불씨
최근 미국과 중국의 관세 유예 합의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도 이어졌다.
최근 미·중 양국은 정상회담을 통해 상호 보복관세 부과를 1년간 유예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은 이른바 '펜타닐 관세'를 기존 20%에서 10%로 인하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평균 대중국 관세율은 57%에서 47%로 소폭 낮아졌다. 그러나 김 위원은 이러한 '일시적 휴전'에도 불구하고 '신(新)관세 무역 질서'의 급변 가능성을 2026년 경제의 최대 리스크 요인으로 꼽았다.
김 위원은 "최근 미·중 간 협의로 상황이 다소 완화된 측면은 있으나 상호 관세 인상과 보복의 악순환이 재점화될 불씨는 여전하다"며 "글로벌 무역 전쟁이 본격화된다면 세계 교역과 투자가 급격히 위축될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관세가 다시 오를 경우 수입 물가가 상승하고 이는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시점을 늦추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전 세계 수요 회복을 억누르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미국 연방대법원이 상무부의 관세 부과 권한 등에 대해 제동을 거는 판결을 내릴 경우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빚더미 앉은 정부, 위기 대응력 바닥"… 재정 리스크 경고
김 위원은 팬데믹 이후 급증한 각국의 정부 부채 문제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주요국들의 정부 부채 비율이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한 상황에서 방위비 지출, 고령화 대응, 산업 전환 등 재정 소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2026회계연도 미국의 재정적자가 1조 8650억 달러(약 26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김 위원은 "정부의 재정 여력이 바닥난 상황에서 향후 경제 위기가 발생할 경우 각국 정부의 대응 능력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경기 침체가 오더라도 과거처럼 적극적인 재정 부양이나 금융시장 안정 조치를 시행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부채 수준이 높은 국가의 경우 위기 시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어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자금 조달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재정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암울한 시나리오도 제기됐다.
AI 투자 쏠림의 양면성… 구원투수인가 시한폭탄인가
AI를 필두로 한 기술 투자는 현재 글로벌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축이지만 동시에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는 리스크 요인이기도 하다. 실제로 김 위원은 '기술 투자 쏠림과 금융시장 변동 리스크'를 세 번째 위험 요인으로 지목했다.
김 위원은 "최근 수년간 AI 기술 투자 열풍으로 관련 기업 주가가 급등했고 미국에서는 이에 따른 자산 효과(Wealth Effect)로 소비가 견조하게 유지되는 선순환이 나타났다"면서 "미국 증시 상위 10대 기업이 전 세계 주식시장 가치의 22%를 차지할 정도로 소수 빅테크 기업에 자금이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쏠림 현상이 기업 이익 증가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면 긍정적이지만, 작은 충격에도 시장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산 가격의 조정이 실물 투자와 소비 위축으로 전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달러 약세, 유가 하락… 불확실성은 여전"
국제 금융시장 전망과 관련해 김 위원은 미국 국채 금리의 높은 변동성을 예고했다. 미 연준(Fed)의 금리 인하 기조에도 불구하고 관세 정책 불확실성, 인플레이션 재발 우려, 재정 적자 확대 등이 금리 상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김 위원은 "상반된 힘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미국 국채 금리는 완만한 하강 추세를 보이겠지만 상당 기간 방향성이 엇갈리는 등 높은 변동성을 나타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럽은 보합세, 일본은 장기 금리의 지속적 상승 가능성이 점쳐졌다. 또 환율의 경우 달러화는 미국 경제 둔화와 금리 인하로 점진적인 약세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원·달러 환율 역시 완만한 하락세가 전망되지만 낙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은 "우리나라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효과와 반도체 수출 회복 등은 원화 강세 요인이지만, 개인과 기관의 해외 증권 투자 확대는 원화 약세 요인"이라며 "상반된 요인이 맞물려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더라도 그 폭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국제 유가는 공급 확대와 수요 둔화가 겹치며 하향 안정화될 전망이다. OPEC+의 감산 축소와 미국의 사상 최대 원유 생산으로 공급은 늘어나는 반면, 중국의 성장 둔화로 수요는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여전히 유가를 자극할 수 있는 변수다.
미국 AI 주도 성장, 중국 구조적 한계 봉착
김 위원은 2026년 각국의 경제 전망을 상세히 짚으며 국가별 비대칭성을 강조했다.
먼저 미국(성장률 1.6%)이다. 고용 시장 둔화와 소비 위축으로 2025년(성장률 1.8%)보다 성장세가 꺾일 전망이다. 김 위원은 "고용 지표 부진과 관세 부과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이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며 "다만 AI와 데이터센터 등 민간 투자가 성장을 떠받치는 버팀목 역할을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로 지역(성장률 1.1%)은 물가 안정과 ECB의 금리 인하로 소비와 투자가 소폭 회복되겠으나, 정치적 불확실성과 대외 수요 부진이 발목을 잡으며 저성장 기조(1.1%)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일본(성장률 0.6%)은 2025년(1.1%) 대비 성장률이 반토막 날 위기다. 미국의 대일(對日) 관세 압박과 실질 임금 감소에 따른 소비 부진이 주원인이다. 김 위원은 "일본은 완전 고용 상태임에도 가계 구매력이 떨어져 소비가 늘지 않고 있다"며 "정부의 확장적 재정 정책도 국가 채무 부담 탓에 민간 활력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성장률 4.2%)은 올해(4.8%)보다 둔화된 4% 초반대 성장이 예상된다. 김 위원은 "부동산 부문의 부진과 지방 정부 부채 등 구조적 문제들이 경기 부양책의 효과를 상쇄하고 있다"며 "미·중 갈등 등 대외 불확실성도 중국 성장을 제약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인도(성장률 6.5%)는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서도 독보적인 고성장을 이어갈 전망이다. 탄탄한 내수 시장과 정부의 인프라 투자가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특히 인도는 대미 수출 비중이 GDP의 2%에 불과해 미국의 통상 압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이 강점이다. 나아가 아세안 5개국(성장률 4.7%)은 전자제품 등 제조업 수출이 통상 환경 악화의 영향을 받겠지만, 견조한 민간 소비와 투자가 성장을 뒷받침하며 안정적인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측됐다.
러시아(성장률 1.0%)·브라질(성장률 1.8%)도 눈길을 끈다. 러시아는 고금리와 서방의 제재, 노동력 부족 등으로 1%대 저성장이 고착화될 전망이다. 브라질 역시 15%에 달하는 살인적인 기준금리가 내수를 짓누르며 1% 후반대 성장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각자도생의 시대, 정교한 리스크 관리 필수"
김효상 연구위원은 발표를 마무리하며 2026년이 '상수(constant)가 된 불확실성'의 시기임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2026년 세계경제는 완충된 둔화 국면 속에서 국가별, 부문별로 성장의 양상이 엇갈리는 비대칭성이 심화될 것"이라고 총평했다. 이어 "각국 정책 당국의 대응 여력이 제한된 만큼 기업 차원에서는 위기 예방을 위한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대외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공급망 분절화는 한국 기업들에게 거대한 도전이자 기회다. 김 위원의 분석처럼 기업들이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공급망 다변화와 기술 투자를 통해 '완충력'을 확보하는 것이 2026년 생존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