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들을 경쾌한 음악 플레이리스트 만들어줘.” “피츠버그 지역의 방 3개짜리 주택 매물을 찾아줘.”

질문을 받은 오픈AI의 ‘챗GPT’가 사용자의 스포티파이 계정과 즉시 연결해 추천 곡을 재생하고, 부동산 플랫폼 질로우(Zillow)를 화면에 띄워 지도를 보여주며 매물 정보를 안내한다. 모든 과정은 챗GPT 대화창을 벗어나지 않고, 별도의 앱을 설치하거나 실행할 필요 없이 ‘대화’만으로 이루어진다.

오픈AI가 인공지능(AI) 챗봇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컴퓨팅 플랫폼의 서막을 열었다. 

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 행사 ‘데브데이 2025(DevDay 2025)’에서 오픈AI는 챗GPT를 단순한 대화형 AI를 넘어 수많은 외부 서비스를 품는 ‘디지털 허브’이자 ‘AI 운영체제(OS)’로 진화시키겠다는 야심 찬 비전을 공개했다. 현장에서 공개된 ‘앱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Apps SDK)’는 챗GPT가 인터넷 서비스의 새로운 관문이 되어 구글과 애플이 양분해 온 앱 생태계의 패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선언으로 평가된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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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곧 실행… 챗GPT, 앱의 경계를 허물다
데브데이의 핵심은 ‘앱과 대화하기(Talking to Apps)’ 기능이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기조연설 무대에서 “이제 사용자는 챗GPT 안에서 앱을 직접 실행하고 대화로 조작할 수 있다”며 “이는 대화형이고, 적응하며, 개인화된 새로운 세대의 앱을 탄생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시연은 충격에 가까웠다. 한 엔지니어가 온라인 교육 플랫폼 ‘코세라(Coursera)’를 연동해 “머신러닝을 배우고 싶다”고 말하자, 챗GPT 대화창 안에 코세라 로그인 화면이 나타나고 즉시 동영상 강의가 재생됐다. 사용자는 영상을 화면 상단에 작은 창으로 띄워둔 채(picture-in-picture), 챗GPT에 “방금 강사가 설명한 개념을 더 자세히 알려줘”라고 질문하며 양방향 학습을 이어갔다.

디자인 플랫폼 ‘캔바(Canva)’와의 연동은 창의성의 영역까지 파고들었다. 사용자가 “반려견 산책 스타트업을 위한 포스터를 만들어줘”라고 요청하자 챗GPT는 즉시 캔바의 템플릿을 불러와 세련된 디자인의 포스터를 완성했다.

사용자가 대화창 안에서 “로고를 좀 더 키워줘”라거나 “배경색을 바꿔줘” 같은 명령으로 디자인을 수정하고 완성된 포스터를 기반으로 “이걸로 발표용 슬라이드를 만들어줘”라고 지시하자 챗GPT가 전체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자동으로 구성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부동산 플랫폼 ‘질로우’ 시연도 흥미진진했다. 챗GPT가 사용자의 이전 대화 맥락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줬다는 평가다. “강아지 산책 사업을 확장하기 좋은 도시는 어디일까?”라는 질문에 챗GPT는 과거 대화 기록을 바탕으로 ‘피츠버그’를 추천했다. 사용자가 곧바로 “질로우에서 그 지역 매물을 보여줘”라고 말하자 대화창 안에는 피츠버그의 지도와 함께 매물 목록이 나타났다. 사용자는 각 매물을 클릭해 상세 정보를 확인하고 가상 투어까지 예약할 수 있었다.

사용자가 여러 앱을 오갈 필요 없이 모든 작업을 챗GPT라는 단일 인터페이스 안에서 대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브래드 라이트캡 오픈AI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개발자들이 챗GPT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앱을 만들 기회가 열렸다”며 “사용자들이 이미 즐겨 쓰는 서비스도 그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스토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다. 사용자가 필요를 느껴 앱을 검색하고, 설치하고, 실행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AI가 사용자의 의도와 맥락을 파악해 가장 적합한 앱의 기능을 ‘알아서’ 불러와 제공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오픈AI는 파일럿 파트너로 스포티파이, 질로우, 캔바 외에도 부킹닷컴, 익스피디아, 피그마 등을 소개했으며 연내에 도어대시(배달), 오픈테이블(식당 예약), 타깃(쇼핑), 우버(차량 공유) 등 11개 주요 서비스로 연동을 확대할 계획이다.

올트먼 오픈AI CEO. 사진=연합뉴스
올트먼 오픈AI CEO. 사진=연합뉴스

“원래 목표는 챗봇이 아니었다”… ‘슈퍼 어시스턴트’를 향한 비전
닉 털리 챗GPT 총괄 책임자는 “우리는 원래 챗봇을 만들려던 게 아니다”라며 “우리의 목표는 ‘슈퍼 어시스턴트(Super Assistant)’였으며, 이제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향후 6개월 안에 챗GPT가 “운영체제에 가까운 플랫폼”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슈퍼 어시스턴트’라는 비전은 챗GPT가 사용자의 모든 디지털 활동의 중심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행 계획을 세우는 대화를 나누면 즉시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하고 업무 회의록을 정리하면 관련자에게 자동으로 이메일을 보내며,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면 디자인 시안과 사업 계획서 초안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챗GPT가 사용자의 개인 비서이자 업무 자동화 도구이며, 창의적 파트너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는 궁극의 AI 플랫폼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생태계 확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개발자를 위한 ‘에이전트킷(AgentKit)’도 공개했다. 이를 활용하면 기업과 개발자들은 복잡한 명령을 자동으로 처리하는 맞춤형 AI 에이전트를 쉽게 개발할 수 있다. 이미 앨버트슨스(유통), 박스(클라우드 저장), 캔바(디자인) 등이 이를 활용해 자사 서비스에 특화된 AI 에이전트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픈AI는 나아가 최신 기술력을 과시하며 개발자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동영상 생성 AI 모델 ‘소라 2’와 차세대 언어 모델 ‘GPT-5 프로’를 개발자용 API로 공개했으며 AI 코딩 비서 ‘코덱스’도 정식 출시했다. 기존 모델보다 사용료를 최대 80%까지 낮춘 소형 모델 ‘GPT 리얼타임 미니(음성)’와 ‘GPT 이미지 1 미니(이미지)’도 출시해 개발의 문턱을 낮췄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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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제국의 기반을 닦다
오픈AI가 보이는 파죽지세의 자신감 배경에는 경이로운 성장세가 있다. 당장 올트먼 CEO는 이날 챗GPT의 주간 활성 사용자 수(WAU)가 8억 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최근 직원 지분 매각을 통해 5000억 달러(약 707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명실상부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스타트업으로 등극했다.

매출 성장세는 더욱 폭발적이다. 사라 프라이어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9월 “올해 매출이 13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지난해 40억 달러의 세 배가 넘는 수치다. 물론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연간 컴퓨팅 비용과 데이터센터 투자로 인해 아직 적자 상태다. 그러나 올트먼 CEO는 “언젠가는 매우 수익성 있는 기업이 되겠지만 지금은 성장과 투자의 시기”라며 “우리는 충분히 인내심 있고 자신감도 있다”고 말했다.

막대한 투자를 뒷받침하기 위해 오픈AI는 반도체 기업들과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행사 전날, AMD는 오픈AI에 연간 수백억 달러 규모의 AI 칩을 공급하는 다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올트먼 CEO는 “이번 파트너십은 AI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컴퓨팅 용량을 구축하는 중요한 진전”이라며 AI 인프라 확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다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강력한 규제의 벽을 넘어야 한다. 당장 이번 앱 SDK 서비스 대상에서 유럽연합(EU)이 제외된 것은 데이터 프라이버시와 반독점 규제에 대한 우려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챗GPT가 사용자의 모든 앱 데이터를 처리하는 ‘중앙 허브’가 될 경우,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보안 문제는 더욱 심각한 쟁점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다.

구글, 애플 등 기존 플랫폼 강자들의 반격도 거셀 것이다. 이들 역시 자체적인 강력한 AI 모델과 방대한 앱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유사한 형태의 AI 기반 플랫폼 경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