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설화 큐레이터는 감각을 지식보다, 질문을 정답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ER 이코노믹리뷰 연재 칼럼 ‘미술관 가는 길을 찾다’는 그가 현장에서 매일 마주하는 경험을 바탕으로, 관람객이 미술관을 더 쉽게 찾는 길을 안내하는 실용 가이드다. 미술 작품 앞에서 멈춰 선 순간부터 시작되는 감상법을 제시한다.
김설화 큐레이터는 감각을 지식보다, 질문을 정답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ER 이코노믹리뷰 연재 칼럼 ‘미술관 가는 길을 찾다’는 그가 현장에서 매일 마주하는 경험을 바탕으로, 관람객이 미술관을 더 쉽게 찾는 길을 안내하는 실용 가이드다. 미술 작품 앞에서 멈춰 선 순간부터 시작되는 감상법을 제시한다.

미술 작품, 다시 보는 방법에 대하여

지난 칼럼에서 강조했듯 미술 작품은 정답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난제’도 아닙니다.

전시장에서는 흔히 이런 광경을 봅니다. 관람객이 작품 앞에 잠시 멈춰 서는가 싶더니, 이내 설명문을 확인하고는, 다음 작품으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 작품은 과연 무엇을 남겼을까요.

작가의 의도나 타인의 해석은 길잡이일 뿐입니다. 내 시선만이 내 삶과 공명하는 답에 닿습니다. 이론을 학습하는 것보다 감각을 섬세하게 조율하는 연습이 더 중요합니다.

또한 설명문은 이해의 폭을 넓혀주지만 동시에 시야를 제한할 수도 있습니다. 작품은 설명문보다 색채로, 형태로, 때로는 침묵으로 말을 걸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시간을 넉넉히 쓰는 편이 좋습니다. 한 바퀴는 가볍게 거닐며 전체 흐름을 익히고, 섹션의 연결과 작품 사이의 기류를 천천히 읽어보세요. 마지막에는 마음에 남은 작품 앞에 머무르며 관람자 자신만의 서사를 완성하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작품 앞에서 더 오래, 더 깊이 머무를 수 있을까요? 3-3-3 루틴으로 9분의 시간을 가져보시길 권합니다.

첫 3분 : 색을 따라가세요

첫 3분은 판단을 멈추고 전체를 받아들이는 시간입니다. ‘좋다’, ‘이상하다’ 같은 즉각적인 평가는 내려두고, 화면 전체의 덩어리와 리듬, 여백의 호흡을 몸으로 느껴보세요.

화면 전체를 한 번에 붙잡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색 하나를 고르십시오. 그 색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잦아드는지, 어느 지점에서 다른 색과 만나 긴장을 만들고, 또 어디에서 가까운 색들과 결을 이루며 흐름을 넓히는지 천천히 더듬어 봅니다. 그렇게 바라보다 보면, 인접한 색과 충돌과 화해, 그리고 서로 다른 색들 사이에 오가는 미묘한 대화가 서서히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색의 농담은 작가의 호흡이 되고, 분포의 간격은 화면의 문법을 드러냅니다. 색채의 중첩과 촉각적 밀도는 화면 위에 이야기를 그리는 대신 감정의 지층을 쌓습니다. 색채는 감정의 온도계이자 작가의 의식이 흘러간 경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서 노란색만을 따라가 보면, 별에서 시작된 빛이 밤하늘의 소용돌이를 지나 달로 이어지고, 마을의 작은 창문 속으로 스며들며 온기를 전합니다. 주변부의 아주 작은 점 하나가 전체의 균형을 붙들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흩어져 보이던 요소들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며 하나의 흐름으로 정돈됩니다.

다음 3분: 잔상을 따라 나만의 그림을 찾으세요

다음 3분은 눈을 감고 어둠 속의 잔상을 확인합니다. 어떤 색은 짙게 남고, 어떤 형태는 희미해집니다. 기억은 감정이 향하는 쪽으로 화면을 다시 정렬합니다.

잔상에 남은 과장과 생략이야말로 개별 관람자의 시선으로 재구성된 작품을 탄생시킵니다. 마음을 깊이 건드린 대목은 더욱 또렷이 각인되고, 어떤 요소들은 자연스레 걸러져 희미해집니다. 그렇게 선별되어 남은 흔적이 오늘의 감상 좌표가 됩니다. 잔상은 작품이 남긴 자취이면서 동시에 내 안에서 재구성된 고유한 그림입니다.

마지막 3분 : 처음과 끝을 비교하세요

마지막 3분은 처음 주목한 요소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시작점과 다른 색과 부딪히는 자리, 가라앉는 자리를 다시 마음속에 표시하듯 따라가 보세요.

작품 앞에 서서 첫눈에 들어온 요소와, 충분한 감상 뒤 마지막에 남는 요소를 비교해보세요.

처음엔 보통 가장 강렬하거나 큰 요소에 끌립니다. 선명한 색, 큰 형태, 강한 대비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디테일, 미묘한 색의 변화, 여백의 의미가 서서히 부각됩니다.

시간은 작품의 무게중심을 재배치하며, 표면의 충격이 가라앉으면서 더 깊은 층위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라옵니다. 시간은 의미의 무게중심을 이동시킵니다. 표면의 인상이 뒤로 물러나고, 관계의 문법이 전경을 차지합니다.

처음과 마지막에 남은 인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 차이를 스스로 확인해보세요. 두 지점의 차이가 바로 작품이 나에게 던진 물음이며, 감상의 깊이를 드러내는 척도가 됩니다. 무엇이 사라졌고 무엇이 새로 등장했는가. 이 변위의 폭은 작품의 밀도를 가늠하게 하며, 시선은 대상에서 관계로, 인상에서 구조로 옮겨갑니다.

추가 1분 : 한 문장으로 기록하세요.

3-3-3 루틴을 정리하면, 첫 3분은 전체를 받아들입니다. 그 다음 3분은 눈을 감고 잔상을 확인합니다. 마지막 3분은 색 하나를 따라가며 시작과 끝을 비교합니다.

그리고 추가로 1분을 더 써보세요. 시작과 끝의 핵심 인상을 한 문장씩 적어두는 겁니다. 그 문장들이 곧 나만의 감상 기록이 됩니다.

미술 감상은 삶을 가다듬는 연습

미술 감상은 매번 새로 쓰이는 대화입니다. 천천히 보고, 오래 확인하고, 간결하게 기록하세요. 화면은 깊어지고, 내 감각은 정밀해지며, 정답의 강박은 자연스레 잦아듭니다.

오늘 한 작품 앞에서 보낸 9분의 집중은 내일의 시선을 바꾸는 동력이 됩니다. 작품이 나의 무뎌진 감각을 깨우고 삶의 방향을 밝혀주는 나침반이 되어, 평범한 일상까지도 깊은 감응으로 채워줄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남는 것은 작품이 던지 질문을 품고 사유하는 고요한 평정, 그리고 예술과 다시 마주서려는 의지입니다. 그 평정과 의지가 차곡차곡 쌓일 때, 미술 감상은 일상의 삶을 가다듬는 연습이 됩니다.


※ 김설화 큐레이터는 서양화·미술경영을 전공했다. 청담 보자르갤러리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국내외 아트페어 참여, 전시 기획과 작가 연구, 도슨트와 홍보 등 매일 현장에서 미술 작품과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