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픈AI 샘 올트먼 대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과 AI 협력 확대 방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픈AI 샘 올트먼 대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과 AI 협력 확대 방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금산분리 규제 완화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금융과 산업을 가로막아온 43년 규제가 대전환의 분깃점에 섰다.

2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방한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1일 만난 직후 AI와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필요한 대규모 투자 재원 마련을 강조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독점 폐해를 차단할 안전장치를 전제로 금산분리 완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발언은 국민성장펀드 운용과 맞물리며 은행과 금융사가 이자수익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모험자본 공급자로 나설 수 있을지 여부를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 43년간 이어진 규제, 변화의 물꼬 트일까

금산분리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일정 지분 이상 상호 소유하지 못하도록 한 규제다.

1982년 도입된 이 제도는 재벌이 금융사를 사금고화하거나 무분별한 확장을 하는 폐해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산업자본은 은행 지분을 4%까지만 보유할 수 있고, 은행은 비금융 기업 지분을 15% 이상 취득할 수 없다. 금융지주회사는 비금융 자회사 지분을 5% 이상 가질 수 없도록 제한된다.

이 같은 규제는 산업과 금융을 인위적으로 차단해온 결과, 신성장 산업에 필요한 자금 공급을 가로막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AI와 반도체 등 대규모 장치산업이나 첨단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제한되면서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일 오픈AI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을 요청한 사례를 언급하며 "막대한 투자 재원을 조달해야 할 텐데 규모가 워낙 크다"며 "투자 재원 조달 시 독점의 폐해가 없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범위 내에서 금산분리 규제 등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같은 날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와의 면담에서도 "독점의 폐해가 나타나지 않고 다른 영역으로 번지지 않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범위 내에서 현행 금산분리 규제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이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와 협의를 예고하며 제도 개편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여당이 금산분리에 원칙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AI와 반도체 같은 전략 산업 육성 필요성이 커지면서 논의는 본격화될 전망이다.

◆ 은행·금융권 "모험자본 길 열려야"

은행권은 이번 흐름을 반기고 있다. 현행 규제 아래서는 유망 스타트업이나 첨단산업 기업에 투자하고 싶어도 지분 15% 제한에 걸려 참여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이 같은 흐름이 좋은 기회이긴 하다"며 "은행들과 논의해 적절한 시기에 정부에 규제 완화를 제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지난달 국민성장펀드 보고대회에서 대통령에게 직접 "CVC(기업형 벤처캐피탈)를 금산분리 규제에서 제외하면 은행도 모험자본 투자에 보다 적극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건의했다.

같은 행사에서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GP(운용사) 허용을 안 해도 Co-GP(공동 운용)만 허용해줘도 지금 펀드를 1조원까지 키울 수 있다"며 "우리나라 대기업이 후배 양성시키면 50대 대기업이 한 회사당 30개 정도 후배를 양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권은 업종 간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금산분리가 새로운 사업 모델 도입과 수익 다변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일부 부수업무 허용이나 샌드박스 제도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민성장펀드 역시 150조원 중 30조원을 AI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 경우 은행을 포함한 금융사가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여지가 필요하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굉장히 논쟁적이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도 "다른 나라를 보면 우리 통념과 다른 정책이 많이 있다. 시대 환경에 맞춰서 제도도 재검토해야 한다. 국민성장펀드와 조인트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세부적 규제 완화 방향으로는 지주회사의 CVC 규제 완화, 기업 펀드 운용사(GP) 허용 방안 등이 거론된다.

현재 지주사 CVC는 100% 자회사 형태로만 설립할 수 있고 외부 자금 조달도 총출자액의 40%로 제한돼 있어 대규모 투자에 한계가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기업 GP를 금융업으로 간주해 기업이 주도적으로 펀드를 운용하는 것도 막고 있다.

금융당국 안팎에서는 "은행은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있으나 선구안이 부족한데 기업의 GP가 허용되면 기업의 선구안을 보고 유망 스타트업이나 신산업 등에 투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 평가가 나온다.

학계에서도 "AI 생태계에 빠르게 편입되기 위해서는 투자 관련 규제에 제한이 없어야 한다, CVC 관련 총액이나 지분 측면에서 대기업이 과감히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 공정거래법 개정 '관건'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위해서는 공정거래법 손질이 필수다. 현재 관련 규정은 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보험업법 등 여러 법률에 분산돼 있지만 핵심은 공정거래법에 담겨 있다.

공정위가 먼저 규제 개편에 나서야 실질적 완화가 가능하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금융위는 대통령 발언 직후 "은행의 산업 지분 보유 제한 완화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으나, 공정거래법 개정이 이뤄지면 연동된 자본시장법과 금융 관련 법률 조정을 통해 변화가 가능하다.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도 규제 완화 논의의 촉매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당을 중심으로 비금융사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허용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핀테크 외 대기업에도 발행사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선 금산분리 규제 완화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43년간 지속돼온 금산분리의 빗장을 완전히 풀지는 않더라도, AI와 같은 특정 분야에서 예외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변화가 시작될 가능성은 크다.

첨단산업 투자와 혁신금융의 전환점에 서 있는 은행과 금융권이 이번 기회를 통해 단순 예대마진 구조에서 벗어나 진정한 생산적 금융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