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대개편을 향한 이용자의 원성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다만 그 이면에는 대한민국 인터넷 역사상 가장 성공한 서비스가 마주한 '성공의 역설'과 '존재론적 위기'라는 절박한 현실이 웅크리고 있다.
무료로 서비스를 사용하는 우리의 눈에는 차마 보이지 않는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만년 메신저'라는 화려한 감옥에 갇혀 서서히 고사할 수 있다는 공포, 그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카카오의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사실 '국민 메신저'라는 왕관의 무게는 역설적으로 카카오의 발목을 잡는 족쇄였다. 압도적인 트래픽은 그 자체로 거대한 자산이었지만, 동시에 '독이 든 성배'였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일이다. 카카오톡의 본질은 메시지를 주고받는 '통로'였지 사용자들이 머무르고 탐색하며 시간을 보내는 '광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용자들은 목적을 달성하는 즉시 앱을 떠났으며 이는 막대한 트래픽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당 평균 수익(ARPU)이나 생애 가치(LTV)가 인스타그램,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 강자들에 비해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의미했다. 카카오는 거대한 고속도로를 소유했지만, 정작 통행료 외에는 돈을 벌지 못하는 기이한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는 죽음이 찾아올 것이 '분명'했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개편이 전격 단행됐다. 크게 플랫폼 및 소셜 커머스로의 진화라는 키워드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플랫폼’을 향한 끈질긴, 그러나 미완의 도전
지난 10여 년간 카카오는 메신저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몸부림쳐왔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를 연상시켰던 '카카오스토리'는 반짝 성공을 거두는 듯했으나 결국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밀리고 말았다.
채팅창에 도입된 '#검색'은 네이버와 구글의 아성을 넘지 못했고, 야심 차게 시작한 '톡스토어'는 '선물하기'라는 특수한 성공 사례를 제외하면 이커머스 시장에서 유의미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실패의 역사는 카카오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단순한 기능 추가나 어설픈 서비스 연동만으로는 사용자의 깊게 뿌리내린 '메신저'라는 인식을 바꿀 수 없다는 것.
사용자의 행동 패턴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앱 내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유인할 강력한 '광장'을 만들지 못하면 결국 본질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카카오 개발 관련 관계자는 "카카오톡이 압도적인 트래픽으로 카카오모빌리티 등 다양한 서비스로의 확장을 잘 끌어냈지만 결국 핵심은 메신저의 진화이자 한계"라며 "내부에서 엄청난 고민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성장 정체의 위기감에 기름을 부은 것은 미래의 핵심 사용자인 'Z세대'의 이탈이었다. 이제 10대, 20대들은 더 이상 카카오톡을 '힙한' 소통 도구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에게 카카오톡은 부모님과 선생님이 사용하는, 딱딱하고 기능적인 '공식' 메신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반면 인스타그램은 스토리, 릴스, DM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시각적이고 유희적인 방식으로 소통하는 '그들만의 놀이터'였다.
친구들과의 핵심적인 소통이 인스타그램 DM으로 넘어가면서 카카오톡을 지탱해온 가장 강력한 무기인 '네트워크 효과'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단순한 세대교체 문제를 넘어 플랫폼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적색경보'다. 오늘 Z세대를 잃는 것은, 내일의 대한민국을 잃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카카오에게는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젊은 층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면 그들이 열광하는 인스타그램과 틱톡의 문법을 수용하는 것을 넘어, 카카오톡 자체를 그들의 놀이터로 재창조해야만 했다. 이번 개편의 핵심 동력이다.
여기에 광고 콘텐츠를 삽입해 수익 극대화를 노린다는 것이 카카오의 복안으로 보인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광장형 SNS를 만들어, 또 인스타그램같은 광고까지 선보이며 수익을 올리는 전략이다.

콘텐츠와 관계를 녹여낸 '소셜 커머스' 제국
카카오는 개편을 통해 플랫폼 전략을 구사하는 한편 소셜 커머스로의 다양한 가능성 타진도 나서는 분위기다.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것을 넘어, 콘텐츠와 관계망 속에서 자연스럽게 소비가 일어나도록 생태계 전체를 재설계하는 구상이다.
먼저 친구 탭 (인스타그램 모델)이다. 관계 기반의 발견형 커머스를 지향한다.
새롭게 바뀐 친구 탭은 단순한 소셜 피드가 아니다. 사용자의 잠재된 욕망을 자극하고 소비로 연결하는 '발견의 장'이다. 친구가 올린 새로운 운동화 사진, 주말에 방문한 감성 카페의 풍경은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광고 콘텐츠가 된다. 카카오는 이 관계 기반의 신뢰도를 바탕으로, 과거 톡스토어가 실패했던 '발견형 커머스'를 완성하려 한다.
지금 탭은 일종의 틱톡 모델이다. 콘텐츠 기반의 수익화 생태계로 볼 수 있다.
'지금 탭'의 숏폼 피드는 '크리에이터 경제'를 카카오톡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다. '어필리에이트 프로그램'을 통해 크리에이터는 자신의 콘텐츠로 '선물하기' 상품을 홍보하고 직접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된다.
네이버, 쿠팡, 유튜브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크리에이터들을 카카오톡 생태계로 유인하는 강력한 미끼가 된다. 그리고 카카오는 메신저의 압도적인 공유·확산 기능을 무기로, 크리에이터들에게 다른 플랫폼이 제공할 수 없는 '바이럴 파워'를 약속하고 있다.
오픈채팅은 커뮤니티 모델이다. 신뢰 기반의 공동구매 커머스 가능성을 보여준다. 실제로 '오늘공구'로 대표되는 공동구매 서비스는 카카오톡의 핵심 자산인 '커뮤니티'와 '신뢰 네트워크'를 수익으로 직결시키는 모델이다. 취향과 관심사를 기반으로 모인 오픈채팅방은 공동구매를 위한 최적의 환경이다. 이는 네이버 카페 등 전통적인 커뮤니티 커머스에 대한 카카오의 본격적인 도전장이라 할 수 있다.

'카나나'가 꿈꾸는 에이전트 시대
카카오톡 개편의 심장이자 선봉장, 혹은 두뇌는 바로 인공지능(AI) '카나나'다. 카카오에게 AI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파편화된 서비스들을 하나로 꿰고, 메신저의 한계를 뛰어넘어 진정한 '슈퍼앱'으로 도약하기 위한 유일한 열쇠가 될 전망이다.
정신아 대표의 “‘카톡해’는 ‘나를 위해 실행해줘’라는 의미가 될 것”이라는 선언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카카오가 꿈꾸는 궁극의 미래, 즉 '에이전틱 AI(Agentic AI)' 시대를 향한 출사표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더 이상 앱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과업을 수행할 필요가 없어지는 세상을 의미한다. 실제로 친구들과 "다음 달 부산 여행 갈까?"라고 대화하면, AI 비서 '카나나'가 대화에 참여해 "세 분이 가실 KTX 최저가 좌석을 찾아 예약해 드릴까요? 해운대 근처 평점 좋은 숙소 목록도 보내드립니다"라고 먼저 제안하는 식이다. 이 순간 카카오톡은 단순한 메신저에서 벗어나, 교통, 숙박, 맛집, 쇼핑 등 삶의 모든 서비스를 아우르는 '만능 개인 비서'로 거듭난다.
글로벌 트렌드에 부합된다. 퀄컴이 최근 미국 하와이에서 '스냅드래곤 서밋 2025'를 연 가운데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CEO는 "AI가 새로운 UI(사용자 인터페이스)"라고 정의하며 스마트폰 화면에 나열된 아이콘을 눌러 앱을 실행하던 기존 방식과의 완전한 결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상황과 의도를 파악한 AI 에이전트가 모든 기기를 넘나들며 필요한 작업을 선제적으로 수행하는 '에이전틱 경험(Agentic experience)'이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과거에는 레스토랑 예약을 위해 지도 앱을 열어 식당을 찾고 예약 앱을 다시 실행해 시간을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퀄컴이 제시한 미래에서는 AI 에이전트가 사용자의 일정, 위치, 과거 선호도를 파악해 "근처 단골 레스토랑에 자리가 났는데 예약해 드릴까요?"라고 먼저 제안한다. 그리고 사용자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간단히 "응"이라고 대답하는 것만으로 모든 과정을 끝낼 수 있다. 이는 기계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하던 '수동적' 방식에서, AI가 나를 이해하고 먼저 움직이는 '능동적' 방식으로의 근본적인 변화다.
아몬 CEO는 "이는 더 이상 앱을 실행하고 멈추는 방식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경험"이라며 "마치 길을 걷다 내가 못 본 지인을 옆 사람이 '저기 아는 사람이 있네'라고 알려주는 것과 같은 존재가 바로 AI 에이전트"라고 설명했다. 정신아 대표의 선언과 비교하면 그 결과 맥락이 정확히 일치한다.
한편 카카오는 AI 에이전틱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픈AI와의 협력을 강조했다. GPT-5를 탑재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확보하는 동시에, 프라이버시에 특화된 자체 온디바이스 AI '카나나 나노'를 개발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한다. 이는 성능과 보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의지다.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
카카오톡 대개편은 생존의 기로에 선 거인의 절박한 외침이다. 메신저라는 안락한 과거와 결별하고 소셜과 커머스, AI가 융합된 복잡하고 위험한 미래로 뛰어드는 결단이기 때문이다.
이용자들의 거센 반발은 이 험난한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일 뿐이다. 카카오는 지금의 혼란과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거대한 전환을 성공시켜야만 하는 역사적 과제 앞에 서 있다. 비판은 상당하지만, 이 길이 옳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