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새 버릇이 생겼습니다. 평소 퇴근하면 곧장 차를 몰고 집으로 가는데, 요즘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구름이 예술이면 잠시 딴 길로 갑니다.

수목원 근처 좀 높은 언덕에 스포츠 종합 단지가 있는데, 사방이 탁 트인 위치에 있습니다. 구름이 볼만하면 거기 주차장을 들러 하늘을 봅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지난 여름부터 공기가 맑고 하늘의 구름이 옛날 어린 시절 고향의 뒷동산에 올라 보던 구름 모습이 많이 보였습니다. 뭉게구름, 양떼구름, 새털구름, 비늘구름...

게다가 그런 날이면 일몰의 하늘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주 더울 때는 엄두를 못 내고 그저 집에 가기 바빴는데 요즘은 거기서 구름을 쳐다보다가 집으로 향합니다. 특히 여러 양태의 구름이 있다가도 저녁 노을이 다가오면 한 가지 붉은 색으로 수렴되는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특별한 감회를 주었습니다. 인생 늦으막의 사는 자세에 무언가를 말해주는 듯한...

이런 여유가 생긴 것은 기실 더위가 조금씩 물러가기 때문이겠지요. 더위가 이제는 확실히 꺽인 것이겠지요? 올해 더위에 하도 데어서 이런 말 함부로 하면 다시 더위가 올듯한 마음에 이렇게 말하기가 조심스럽기까지 합니다.

얼마 전 친구와 만나 ‘올해는 여름 나기가 너무 힘들어 비를 간절히 기다리게 되더라. 또 땀을 하도 많이 흘려서 세탁을 하고 개킨 옷을 보면 겉옷 개수보다 땀 닦는 손수건이 더 많은 것도 새삼스럽더라’ 이런 말을 하며 역대급 더위에 투덜거렸습니다.

그러자 ‘겨울되면 더위는 견딜 수 있는데, 추위는 너무 힘들어’하면서 또 투덜거릴 것 아니냐는 친구의 핀잔이 돌아왔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잘 아시다시피 올해는 더워도 너무 더웠습니다. 더위의 여러 기록이 깨졌다고 하지요. 내 개인적으로도 여러 기록이 만들어졌습니다. 더위 넘기기가 힘들어 7년 만에 대상포진을 다시 앓았으니 엄살만은 아니었지요.

석양 무렵의 구름 모습.  마치 커다란 새가 다가오는 붉은 노을을 남겨 두고 더 큰 비상을 하는 듯했습니다.
석양 무렵의 구름 모습. 마치 커다란 새가 다가오는 붉은 노을을 남겨 두고 더 큰 비상을 하는 듯했습니다.

더위와 고투 속에서도 한 자리에 붙박이로 서서 여름을 넘어가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봄이 거울이었습니다.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온통 여름 더위를 맞이했을 나무들의 고통은 도대체 얼마나 컸을까요? 줄기와 잎에 난 많은 상처들이 그걸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찬 바람이 불며 가장 먼저 생각되는 헤르만 헤세의 글이 생각났습니다. ‘저녁이 따스하게 감싸주지 않은 힘겹고 뜨겁기만 한 낮은 없다’ 왜 이 말이 그리 위로가 되는지! 마치 목표지점은 저만큼 거리에 있었는데 그를 바라보지 않고 그저 조바심만을 낸 것 같았습니다. 낮이 짧아졌고, 아침 최저 기온이 이십도 이하가 되었으며, 아침 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 이런 가을로 가는 미세한 변화 모든 것이 새삼스럽고,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내년에 또 내후년, 그 이후에도 지금보다 더 혹독한 더위가 나타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이 선명한 마음 간직하고 기억하면 더 덥거나 추운 날들도 잘 넘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