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C녹십자가 허은철 대표 체제에서 전환점을 맞고 있다. 내수에 머물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내면서 수익성을 개선, 기업 체질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허 대표의 리더십이 GC녹십자의 글로벌 도약을 가능케 한 동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허은철 대표는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주의 손자이자 허영섭 GC녹십자 전 회장의 차남이다. 1972년생인 허 대표는 미국 코넬대에서 식품공학과 박사과정을 마치고 목암생명과학 연구소와 GC녹십자 R&D 기획실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2009년 CTO와 영업과 생산, 연구개발 등을 총괄하는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하며 경영 전문성뿐만 아니라 연구개발 부문의 경험을 쌓았다. 이후 지난 2015년 대표이사에 취임하며 당시 조순태 부회장과 함께 공동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하다가 지난 2016년부터는 단독 대표로 GC녹십자를 이끌고 있다.
허 대표가 단독 경영권을 잡은 후 GC녹십자는 실적 상승세를 보였다. ▲2016년 1조1979억원 ▲2017년 1조2879억원 ▲2018년 1조3349억원 ▲2019년 1조3571억원 ▲2020년 1조5041억원 ▲2021년 1조5378억원을 기록했으며 2022년에는 1조7113억원의 역대 최대 매출을 갈아치우며 점프업했다. 하지만 2023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헌터라제 수출이 감소하면서 외형이 줄어들고 영업이익이 하락하는 부침을 겪었다.
세 번의 고배 마신 끝에 맺은 결실 ‘알리글로’
그러나 허 대표는 최근 혈액제제 ‘알리글로’를 통해 실적 반등세를 이끌어냈다. 정맥주사형 면역글로불린 혈액제제인 알리글로는 2023년 12월, 국산 혈액제제로는 처음으로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았다. 알리글로는 선천성 면역결핍증이나 면역성 혈소판감소증 같은 1차성 면역결핍 질환 치료에 쓰이는 약물로 미국 면역글로불린 시장은 약 16조원(116억달러)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알리글로는 허 대표의 뚝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품목이다. 이 혈액제제는 허 대표가 취임부터 직접 개발과정에까지 공을 들여온 작품이다. 알리글로가 미국에서 품목 허가를 받기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개발과정에서 2016년 FDA로부터 제조 공정 자료 보완을 지적받은 데 이어 이후 알리글로에 관한 최종보완요구서까지 요구받으며 두 차례에 걸쳐 실패라는 좌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세 번째 도전에서 액상형 면역글로불린 제제 허가 승인에 성공했다. 이후 녹십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알리글로를 본격적으로 판매하며 실적을 끌어올리고 있다.
알리글로 美 시장 순항…녹십자, ‘턴어라운드’ 진입
실제로 녹십자의 혈액제제 사업 성장세는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알리글로의 미국 판매가 시작된 후 지난해 4분기 이 회사의 혈액제제 수출액만 81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93.4% 급증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전체 혈액제제 판매량도 4783억원을 기록하며 두 자릿수(12.3%) 증가율을 달성했다.
이 같은 성장세는 이 회사의 수출 판매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녹십자의 지난해 혈액제제류의 수출액은 2173억원으로 전년동기(1139억원)보다 90.8% 수직 상승했다.
알리글로의 상승세는 향후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알리글로가 미국 주요 보험사(PBM) 3곳의 처방집에 등재됐고 환자 투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시장에 순조롭게 안착했기 때문이다. PBM은 미국 의료보험 체계에서 의약품 유통과 처방 관리의 핵심 축을 담당하고 있다. 처방집에 알리글로가 등재된 것은 ‘실제 시장성’을 확보했다는 의미로 판매고가 더욱 늘어날 것을 사실상 예고한 셈이다.
투여방식 변경한 ICV제형 헌터증후군 치료제 상업화 ‘성공’
허 대표의 리더십이 빛나는 대목은 이뿐만이 아니다. 희귀질환 치료제의 상용화도 허 대표의 대표적 작품이다. 공급이 제한적인 희귀의약품의 독점적 시장에 진입해 기존 다국적 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시장을 침투한다는 경영 전략을 발휘한 것이다.
허 대표는 올해 신년사에서도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제약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선도하는 것”이라며 “제2, 제3의 신약이 연이어 해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전 세계가 우리의 일터가 되고, 마침내 선진 글로벌 제약사로 자리매김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전성 희귀질환인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도 글로벌 시장 공략에 여념이 없다.
녹십자는 헌터라제 투여경로를 기존 정맥주사에서 뇌실내 직접투여로 변경한 ICV제형의 헌터증후군 치료제 상업화에 성공했다. 특히 ‘헌터라제ICV’는 2021년 일본에 허가를 획득하며 판매되고 있으며 지난해는 러시아에서 품목허가를 획득해 주목받았다. 러시아에서 중증형 헌터증후군 치료제 품목 허가는 이번이 최초다.
여기에 지난 2월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국내 희귀의약품지정을 받았다. 헌터라제를 포함한 일반제제류의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1979억원으로 회사 전체 매출의 28.8%를 차지하고 있다.
녹십자는 “헌터증후군 치료제는 전 세계적으로 제조사가 한 곳 밖에 없어 공급이 중단되면 환자 치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새로운 치료제 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라며 “헌터라제와 헌터라제 ICV는 이 같은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희귀질환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그린진 에프와 헌터라제의 성공적인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희귀질환 적응증을 발굴해 개발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