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석유화학산업 위기가 단순한 업계 구조조정 수준을 넘어 국가경제 전체의 불안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 당국은 석유화학업계에 대한 대출·차입금 회수를 자제하라고 당부했지만 관련 기업의 신용등급 강등, 협력사 줄도산이 현실화하면 실직자와 피해 가계가 수만 명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석유화학업계에 대한 금융권 전체 위험노출액은 32조원이 넘는다. 이는 최근 한 달 새 주요 석유화학 대기업의 신용평가 등급이 줄줄이 하락하는 등 위기 신호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 같은 위기는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세계 경기 둔화와 중국·중동발 공급과잉, 국제유가 변동성 등 외부 충격이 국내 석유화학 시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이는 경영난과 단가 하락, 설비 가동 중단으로 이어져 석유화학 산업 생태계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은 이날 5대 시중은행 등과 ‘석유화학 사업재편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채권 금융기관 공동 협약을 맺어 업계 자금 수요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의 핵심 지원책은 기존 대출과 차입금의 회수를 자제하는 것이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사업 재편 계획이 연말까지 확정될 텐데 그때까지 기존의 여신(대출)을 회수하는 ‘비 올 때 우산 뺏는 행동’은 자제해 주기를 부탁한다”며 금융권의 협조를 당부했다. 이에 은행연합회 등 금융기관들은 내달 공동협약 체결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은행의 지원 부담을 덜기 위해 대손충당금(대출을 떼일 것에 대비한 돈) 기준 완화 등 금융 규제까지 예외 적용할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금융위는 지원 제도 검토와 함께 업계에 ‘자구노력’을 선행 조건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석유화학계에서 금융위에 대한 볼멘소리가 나오자 권 부위원장은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려고 하는데 보따리부터 먼저 내놓으라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대주주가 먼저 자구노력을 해야 하며 예대마진(예금∙대출 간 금리 차이로 발생하는 이익) 감소와 같은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단 입장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석유화학사에 대한 은행의 지원은) 사기업에 대한 이익침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며 “은행은 고객이 맡긴 돈을 대출해주면서 발생하는 예대마진의 이익구조가 크다. 충당금과 관련한 비용증가는 결국 예금이자 하락과 대출이자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어 결국 금융소비자의 효용을 감소시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우량기업에 지원할 자원을 잠식한다는 점도 우려스럽다”며 “당국의 실질적인 규제완화 또는 지원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기간산업인 석유화학 업계의 안정적 재편을 위해서는 대주주의 책임 있는 자구노력이 우선돼야 한다”며 “정부와 정책금융기관, 차입금융기관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금융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