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의 기술, 도널드 트럼프
거래의 기술, 도널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월 30일(현지시간) 자신이 설립한 SNS 플랫폼 ‘트루스소셜(Truth Social)’에 한국과 새로운 무역협상 합의를 발표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미국 내 투자처에 3,500억 달러를 제공하고, 1,000억 달러 규모의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 제품에는 15%의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 제품에는 관세를 면제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가장 이례적인 문장은 따로 있다. 트럼프는 "(이재명) 신임 대통령의 선거 승리를 축하한다"고 언급했다. 이번 발표가 트럼프식 ‘거래’의 무대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의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서 제시한 11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발표문 전체를 해석해보면, 트럼프 특유의 전략적 언어 사용과 협상 구조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다음은 『거래의 기술』의 11가지 원칙을 기준으로 본문을 분석한 내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월 30일(현지시간) 자신의 SNS 플랫폼 ‘트루스소셜(Truth Social)’에 한국과 새로운 무역협상 합의를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월 30일(현지시간) 자신의 SNS 플랫폼 ‘트루스소셜(Truth Social)’에 한국과 새로운 무역협상 합의를 발표했다.

1. 크게 생각하라

"I am pleased to announce that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has agreed to a Full and Complete Trade Deal with the Republic of Korea."

"나는 미국이 대한민국과 완전하고 포괄적인 무역협정에 합의했음을 기쁘게 발표한다."

첫 문장부터 'Full and Complete'라는 표현으로 거래의 완전성을 강조한다. 협정의 실체보다 먼저 ‘포괄성과 완전성’을 강조해 중대한 합의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특히 "United States of America has agreed to"라는 표현은 교묘하다. 한국이 제안한 조건에 미국이 '동의해준 것'이라는 입장이며, 일방적 요구가 아닌 '상호 합의'의 외관을 만들어낸다.

실제 협상 내용이 무엇이든 먼저 '역사적 대성공'의 이미지를 선점하는 방식이다. 미디어와 여론이 세부사항보다 '완전한 승리'라는 첫인상에 주목하도록 유도하며, "작게 생각하면 작은 결과만 얻는다"는 그의 철학을 언어 전략으로 구현한 대목이다.

2. 손실을 막으면 수익은 따라온다

"We have agreed to a Tariff for South Korea of 15%. America will not be charged a Tariff."

"우리는 한국에 1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합의했다. 미국은 관세를 부과받지 않는다."

가장 노골적으로 비대칭 구조를 드러내는 문장이다. 한국에는 15% 관세를 부과하면서 미국은 관세를 면제받는 일방적 조건을 명시했다.

이는 트럼프식 '제로섬 게임' 사고의 극단적 표현으로, 미국의 절대적 우위를 추구하며, 전통 외교의 '상호주의' 원칙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힘의 논리를 관철시키는 언어 전략이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구체적 실현 방식을 발표문에 그대로 담아낸 것이다.

3. 선택지를 극대화하라

"Additionally, South Korea will purchase $100 Billion Dollars of LNG, or other Energy products and, further, South Korea has agreed to invest a large sum of money for their Investment purposes."

"추가로, 한국은 1,000억 달러 규모의 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구매할 것이며, 더 나아가 한국은 자국의 투자 목적을 위해 거액을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트럼프는 발표문에서 다층적 거래 구조로 합의 내용을 제시했다. 직접 투자, 에너지 구매, 추가 투자 등 여러 항목을 나열하며 '전방위적 승리'의 인상을 준다.

또한 각각의 항목을 별도의 성과로 홍보할 수 있어 '1,000억 달러 에너지 수출', '3,500억 달러 투자 유치' 등을 개별 헤드라인으로 만들 수 있다. 발표문 하나로 여러 번의 성과 홍보 기회를 창출하는 언어적 포장술이다.

"한국은 자국의 투자 목적을 위해"라고 한 대목도 주목해야 한다. 한국이 스스로 선택해서 투자했다는 뜻이다. "돈을 받아낸다"가 아니라 "매력 있는 투자처로 선택받았다"는 프레임으로 바꿔버린다. 즉, 자신이 대통령으로 있는 미국은 타국이 투자할 만한 곳이라는 점을 은연중 강조했다.

4. 시장을 파악하라

"they will accept American product including Cars and Trucks, Agriculture, etc."

"그들은 자동차와 트럭, 농산물 등을 포함한 미국 제품을 받아들일 것이다."

"they will accept American product"라는 표현으로 한국이 미국 제품을 '수용하는' 입장임을 강조했다. 'accept'라는 동사 선택도 의도적인데, 이는 한국이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제공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수동적 관계로 설정하는 언어적 위계 설정이다. 

제품도 일반적인 품목 나열이 아니다. 미국 내 정치지형을 정확히 겨냥한 품목들을 나열하며 외교 성과를 국내 정치용으로 만들었다. 

자동차와 트럭은 러스트벨트, 농산물은 중서부 농민층과 직결되는 트럼프의 핵심 지지기반이다. 미시간, 오하이오의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과 아이오와, 네브라스카의 농민들이 이 발표를 듣고 트럼프의 성과로 인식하도록 계산된 언어 선택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시장을 파악하고 있다. 

5. 지렛대를 활용하라

"I would also like to congratulate the new President on his Electoral Success."

"selected by myself, as President."

"나는 또한 신임 대통령의 선거 승리를 축하하고 싶다."

"대통령인 내가 직접 선정한"

트럼프는 이재명 대통령을 "신임 대통령"이라고 호명하며 당선을 축하했다. 다시 말해 트럼프는 이재명 대통령을 협상 파트너로 지명한 것이다. 협상의 성격을 '기관 간 조율'에서 '정상 간 거래'로 바꾸고, 이후 백악관 회담과 추가 발표를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기대하게 만든다. 즉, 협상 결과보다 협상의 서사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재편하는 전략이다.

트럼프는 3,500억 달러의 투자처를 자신이 직접 정한다고 강조했다. 이 말은 결정권을 독점하고, 사적 교섭의 여지를 열며, 무형의 압박을 가하는 구조를 만든다. 상대국은 원하는 분야에 투자가 집행되기를 바라며 트럼프의 개인적 판단을 의식하게 된다.

6. 입지를 강화하라

"This sum will be announced within the next two weeks when the President of South Korea, Lee Jae Myung, comes to the White House for a Bilateral Meeting."

"이 금액은 2주 내에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이 양자 회담을 위해 백악관을 방문할 때 발표될 것이다."

발표문에서 장소를 '백악관'으로 지정하며 상징적 우위를 부각시켰다. 시각적 정치학을 활용한 언어 전략으로, 상대방이 트럼프의 집무실을 찾아와 추가 투자를 발표하는 장면을 미리 연출해 놓은 것이다.

미국 언론과 여론에게는 '트럼프의 협상력'을, 상대국에게는 '미국 대통령의 호의를 구해야 하는 입장'임을 각인시키는 심리전략이다.

7. 소식을 퍼뜨려라

"I am pleased to announce..."

"나는 발표하게 되어 기쁘다..."

이번 발표를 자신이 설립한 소셜미디어 플랫폼 '트루스소셜(Truth Social)'을 통해 발표했다.

기존 언론 매체의 편집이나 해석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신의 메시지를 직접 대중에게 전달하는 채널을 이용한 것이다.

자신이 소유한 플랫폼을 활용한 직접 소통은 메시지 통제권을 100% 보장하면서도, 즉시성과 확산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현대적 홍보 전략의 극단적 버전이다.

트루스소셜이란?

트루스소셜(Truth Social)은 도널드 트럼프가 2022년 직접 창립한 소셜미디어 플랫폼이다. 2021년 1월 의사당 난입 사건 이후, 트위터·페이스북 등 기존 SNS에서 퇴출된 트럼프는 ‘빅테크 검열’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자체 플랫폼을 만들었다.

트루스소셜은 미국의 보수 진영을 위한 대안 미디어를 지향하며, 트럼프의 정치적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 재선 캠페인, 외교 성명, 경제 정책 발표까지 이 플랫폼을 통해 독자적으로 메시지를 발표한다.

이번 한국 무역 합의 발표 또한 기존 언론사를 거치지 않고 트루스소셜을 통해 게시됐다는 점에서, ‘언론의 중개 없이 직접 대중을 설득한다’는 『거래의 기술』의 전략과도 일치한다.

 

8. 맞받아쳐라

"South Korea will be completely OPEN TO TRADE with the United States"

"한국은 미국과 무역에 완전히 개방될 것이다"

발표문에서 'completely OPEN'이라는 강한 표현으로 한국의 전면적 시장 개방을 명시했다. 비즈니스 협상에서 쓰는 '처음부터 최대 조건을 요구하고 양보하지 않기' 전략을 외교 발표문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동시에 미래 상황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자신이 지금 왜 필요한지를 어필하는 것이기도 하다.

9. 성과를 보여줘라

"South Korea will give to the United States $350 Billion Dollars... $100 Billion Dollars of LNG"

"한국은 미국에 3,500억 달러를 제공할 것이다... 1,000억 달러 규모의 LNG"

구체적 수치를 반복 제시했다. 3,500억 달러, 1,000억 달러라는 숫자를 통해 거래 성과를 가시화하는 표현 방식을 사용했다. 

'숫자로 말하는 정치' 언어 전략의 전형으로, 복잡한 경제 관계나 외교적 뉘앙스를 금액으로 환원시켜 일반 유권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또한 언론이 헤드라인으로 쓸 수 있는 임팩트 있는 숫자를 제공한다.

10. 비용을 억제하라

"America will not be charged a Tariff"

"미국은 관세를 부과받지 않을 것이다"

발표문에서 미국이 지불해야 할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최대한 이익을 추구하는 구조임을 명시했다. 관세 면제를 통해 미국 기업들의 수출 비용 절감을 표현하면서도, 한국으로부터는 막대한 투자와 구매를 받아내는 '일방적 이익 극대화' 언어 전략의 핵심이다. 

11. 즐겨라

"It was an Honor to meet them, and talk about the Great Success of their Country!"

"그들을 만나 그들 나라의 위대한 성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영광이었다!"

감사와 찬사로 마무리하며 전체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전환시킨다. 일방적인 조건을 제시한 뒤, 마지막에는 상대방을 치켜세우며, 마치 상호 존중에 기반한 협상처럼 포장한다.

이처럼 협상을 ‘승부’가 아닌 ‘상생’으로 보이게 만드는 연출은, 실상은 저항 의지를 무력화시키는 고도의 심리전술이다.

트럼프가 말하는 ‘거래의 즐거움’은 단순한 협상 만족이 아니라, 상대를 완전히 장악했을 때 느끼는 지배의 쾌감이다.

이제 이 거래에 반대하는 세력은 결국 미국에 반대하는 진영으로 몰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