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역대 최고액의 유상증자를 선언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입장을 바꿨다. 중장기 미래 계획으로 약 11조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히며 이 과정에서 필요한 유상증자 금액은 3조 6000억원에서 2조 3000억원으로 줄이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8일 안병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 부문 총괄사장은 서울 중구 한화빌딩 본사에서 미래 비전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유상증자 현황과 기업 미래 비전에 대해 발표했다.

안 사장은 "유상증자를 거치기 전 다양한 소통 자리를 가졌어야 했는데 소액주주분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못한 점에 대해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지난 2월 한화오션 연결 편입으로 사세가 확장돼 올해 매출 30조원, 영업이익 3조원 정도를 추정 목표치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안병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장이 미래 비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안병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장이 미래 비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출 70조원 기업 될 것 '자신'

안 사장은 우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오는 2035년까지 매출 70조원의 거대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올해 매출 30조원, 영업이익 3조원을 기록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오는 2035년까지 매출 70조원, 영업이익 10조원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다.

방산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처럼 육·해·공을 모두 담당하는 방산 기업은 전무하다. 독일 라인메탈은 지상 장비 중심이며 영국 BAE시스템즈는 조선 사업이 약하다고 평가받는다. 또 다른 방산 기업인 일본 미쓰비시는 수출에 적극적이지 않은 현황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빈틈을 노려 사세를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이유다.

안 사장은 "연결로 편입한 한화오션에 대해선 추후 최대 매출 30조원에 달하는 기업으로 키우는 것이 목표"라며 "해양 분야에서도 남미 시장 등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래 비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래 비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질의응답에서도 그는 "미국의 경우 사거리 이슈 등으로 인해 더 이상 자국 자주포를 쓸 수 없는 지경으로 해석 중"이라며 "미국 사정에 맞게 휠 형 자주포와 K9 A2 완전 자동화 메커니즘 등을 자체 개발하고 있으며 미국 내 시험 평가(로데오) 참가를 위한 과정에 있다"고 설명했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이 탄약을 다수 소진한 데 비해 생산량이 이를 커버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 중이라며 화약 원재료, 장약 공급 등 미국 탄약 사업에도 과감히 뛰어들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안 사장은 "앞선 2023년부턴 방산 해외 사업을 본격화했고 지난해까지 조선, 해양, 에너지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왔다면 올해부터 2028년까진 방산에 좀 더 과감히 투자할 계획"이라며 "방산 분야를 중심으로 탄탄한 사업 구조를 갖추고 일류 방산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것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큰 비전"이라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국법인(HAU) 체셔사업장 전경.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국법인(HAU) 체셔사업장 전경.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이 같은 계획의 일부로 유상증자 계획도 발표된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구체적인 중장기 투자액은 약 11조원 규모"라며 "해외 투자에 6조 3000억원, 기술 개발 1조 6000억원, 국내 방산 투자 2조 3000억원, 항공 우주 등에 1조원 등을 투자할 계획이고 다양한 투자의 계획 차원에서 3조 6000억원이라는 초대형 유상증자를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11조원 활용 계획에 대해서도 말했다. 우선 방산 부문이다. 약 2조 2900억원을 투입해 ▲유럽·사우디 조인트벤처 설립 ▲미국 스마트팩토리 구축 ▲유도탄 개발 투자 등이 진행된다. 항공우주 분야에는 9500억원을 배정해 ▲무인기 체계·엔진 양산 설비 ▲우주 발사체 추진제 탱크 공장 구축 등을 추진한다.

조선·해양·에너지 부문에도 약 2조 7000억원을 들여 ▲북미 LNG 액화터미널 투자 ▲해상풍력 설치선 사업 확대 ▲글로벌 해운 조인트벤처 설립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한다. 신규시장 진출을 위한 R&D에도 1조 5600억원을 들여 해외생산기지를 확보한다.

주주가치 소홀 우려 대해선 '사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 발표 후 한화 그룹의 주가가 표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 발표 후 한화 그룹의 주가가 표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날 오전 유상증자 정정공시를 통해 한화에너지, 한화임팩트파트너스, 한화에너지싱가폴 등 3개사(이하 한화에너지)가 참여하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유상증자 규모는 2조 3000억원 규모로 축소하며 1조 3000억원을 투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방식을 두 갈래로 나눠 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전환하는 걸 검토하겠다고 언급했다. 방식이 확정될 시 한화에너지는 한화에어로의 약 1조 3000억원 규모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할인 없이 참여하고 소액주주들은 15% 할인된 가격으로 주식을 살 수 있다.

지난 2022년 현암 김종희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한화 오너가. 왼쪽부터 김동선 한화갤러리아부사장,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사진=한화그룹
지난 2022년 현암 김종희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한화 오너가. 왼쪽부터 김동선 한화갤러리아부사장,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사진=한화그룹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은 이 같은 조치에 대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자손들을 비롯한 한화에너지 대주주가 일부 희생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소액주주들이 이득을 보는 구조라며 1조 3000억원이 한화에너지 대주주의 경영권 승계 자금으로 쓰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시키겠다는 취지라고 기술했다.

안 사장은 "현재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부채비율이 400%에 육박할 정도로 높아 더 이상 차입이나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선수금 비율이 42.7%에 달해 실질 부채 비율은 낮으나 글로벌 방산 및 에너지 시장에서 대규모 투자 여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며 사업 확장을 지속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안 사장은 "한화오션 지분 추가 인수에 따라 한화오션을 연결 종속회사에 명확하게 편입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며 "종속회사 연결을 잡을 거라면 빨리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고 작년 말부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연결 회사로 잡혔다"고 말했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방문해 임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사진= 한화오션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방문해 임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사진= 한화오션

앞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2월 10일 한화오션 지분 7.3%를 1조 3000억원에 매입하며 한화오션을 연결 기업으로 편입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승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냐는 추측에 대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은 한화오션 지분 매입과 유상증자가 엮인 것은 시기 상 우연이라며 지분 매입은 굉장히 오랫동안 검토한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이재규 한화에너지 대표는 “1조 3000억원 조달 목적은 승계와 무관한 재무구조 개선 및 투자재원 확보였고, 실제 자금 일부가 차입금 상환과 투자에 쓰였다”고 밝혔다. 이어 “불필요한 승계 논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한화에어로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참여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 사장은 "지난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화시스템을 연결로 포함해 매출 11조를 넘기고 영업이익 1조 7000억원을 달성해 시총 30조원을 달성했다"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시총 10위권 기업임에도 주주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했는가 여부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고 사죄했다.

이어 "3자 배정은 대략 4월 21일쯤 결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이러한 오해와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고 소액주주들을 포함해 주주 가치 제고를 다 할 예정"이라고 사과했다.

"현지화 생산 말곤 답 없다"… 현지화 강조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호주 질롱에 ‘K9’ 자주포와 ‘레드백’ 장갑차를 생산할 공장(H-ACE) 을 완공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날 개소식에 참석한 석종건 방위사업청장(왼쪽 세번째), 리처드 말스 호주 국방장관(가운데), 사이먼 스튜어트 호주 육군 참모총장(왼쪽 첫번째),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이사(오른쪽 두번째).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호주 질롱에 ‘K9’ 자주포와 ‘레드백’ 장갑차를 생산할 공장(H-ACE) 을 완공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날 개소식에 참석한 석종건 방위사업청장(왼쪽 세번째), 리처드 말스 호주 국방장관(가운데), 사이먼 스튜어트 호주 육군 참모총장(왼쪽 첫번째),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이사(오른쪽 두번째).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편 이날 안 사장은 "유럽연합(EU) 등의 보수적인 조치 등 글로벌 방산 업계가 위협받는 현 상황을 그룹 차원의 큰 위기라고 느끼고 있다"며 "미국, 호주를 비롯해 방산 무기 현지화 말곤 답이 없다고 판단했고 현지화를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 회사의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호주의 레드백, K9 자주포 사업 수주·수출, 미국 상선 건조 사업 등을 추진 중이지만 폴란드, 루마니아 등 방산 분야 현지화가 부족하고 기업의 주요 시장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기업을 지배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안 사장은 "중동 같은 경우는 단순히 어떤 무기 수입 등을 원하기보단 병사 식당, 부대 창설, 장비 교육 훈련 및 보수 등 토탈 패키징을 원하는 경우가 상당하다"며 "육·해·공을 어우르는 종합 방산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무기 현지화가 기반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미국의 경우 조선업이 매우 약하고 상선 건조 능력이 사실상 없는 데다가 선가가 3~4배 정도 비싸 미국에서 굉장히 좋은 사업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있는 상태"라며 "필리 조선소를 인수한 이유도 이와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