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회장이 40년 넘게 이끌어 온 한화그룹이 마침내 3세 경영 시대의 개막을 공식화했다. 그룹 지주사 격인 ㈜한화의 보유 지분 절반을 세 아들에게 전격 증여하며 최근 그룹 안팎을 뒤흔들었던 '경영권 승계'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기 때문이다.

특히 재계 최대 규모로 기록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를 둘러싸고 비판이 큰 상황에서, 막대한 증여세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직접적인 지분 증여라는 '정공법'을 택한 배경에 이목이 집중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한화 판교 R&D센터를 방문해 한화정밀기계, 한화비전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한화그룹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한화 판교 R&D센터를 방문해 한화정밀기계, 한화비전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한화그룹

3세 경영 구도 확립… 장남 김동관 체제 공고화
㈜한화는 김승연 회장이 보유한 지분 22.65% 중 11.32%를 장남 김동관 부회장(4.86%), 차남 김동원 사장(3.23%), 삼남 김동선 부사장(3.23%)에게 각각 증여 완료했다고 31일 공시했다. 김 회장의 직접 지분율은 11.33%로 줄었다.

증여의 핵심은 세 아들이 100% 지분을 소유(김동관 50%, 김동원·김동선 각 25%)한 '한화에너지'와의 시너지다.

한화에너지는 ㈜한화 지분 22.16%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그리고 이번 증여로 세 아들은 직접 보유 지분과 한화에너지를 통한 지분을 합쳐 ㈜한화에 대한 실질적인 의결권을 42.67%까지 확보하게 됐다. 안정적인 경영권 행사가 가능한 수준이다.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의 부상이 돋보인다. 개인 지분 9.77%에 한화에너지를 통한 실질 지분(22.16%의 50%인 11.08%)을 더해 약 20.85%의 지배력을 확보, 그룹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명확히 다졌기 때문이다.

동생인 김동원 사장과 김동선 부사장의 실질 지분율은 각각 약 10.87%가 된다. ㈜한화가 방산, 에너지, 유통, 금융 등 그룹 핵심 계열사들의 지분을 보유한 사실상의 지주회사라는 점을 고려할 때, 사실상 3세 경영 체제의 공식적인 출범을 의미한다는 것에 이견이 없다.

(왼쪽부터)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한화호텔앤드리조트 미래비전총괄 부사장. 사진=각 사
(왼쪽부터)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한화호텔앤드리조트 미래비전총괄 부사장. 사진=각 사

'승계 논란' 정면돌파… 유증 비판 잠재우기 포석?
한화그룹이 그동안 "승계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김 회장이 전격적으로 지분 증여에 나선 배경에 시선이 집중된다.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되는 가운데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 사태로 촉발된 '승계 논란'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내부 판단이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앞서 한화에어로는 지난 20일 국내 자본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인 3조6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발표한 바 있다. 

한화에어로는 해외 생산 거점 확대 및 미래 기술 투자를 위한 자금 확보라고 설명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오너 일가의 경영권 강화를 주주의 돈으로 이루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유상증자 발표 직전 한화에어로가 세 아들의 개인 회사 격인 한화에너지 등이 보유한 한화오션 지분 7.3%를 1조 3000억원에 사들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한화에너지가 한화오션 지분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이 결국 삼형제의 경영권 승계나 증여세 납부 등에 사용될 것이며, 그 부담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를 통해 일반 주주들에게 전가하려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의혹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의 주가 급락으로 이어졌고 소액주주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김동관 부회장이 책임 경영 차원에서 30억 원의 사재를 출연해 자사주를 매입했지만, 성난 여론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번 증여가 더욱 시선을 잡아끄는 배경이다. 유상증자 여파를 진화하고 미래를 위한 다양한 가능성 타진에 나설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화그룹은 지분 증여를 두고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불필요한 논란과 오해를 신속히 해소하고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며, 그룹이 방산·조선해양·우주항공 등 본연의 핵심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대승적 결단"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 및 한화오션 지분 인수 역시 "승계와는 무관하며,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적 조치"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런 이유로 시장에서는 이번 증여를 유상증자 논란에 따른 비판 여론을 잠재우고 승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약 2218억 원으로 추산되는 막대한 증여세를 납부(삼형제는 개인 자산 및 증여 주식 담보 대출로 마련 계획)하면서까지 직접 증여를 택한 것 등을 고려할 때 어차피 결론은 하나라는 뜻이다.

한편 일각에서 제기된 '㈜한화-한화에너지 합병설' 및 이를 위해 ㈜한화의 기업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추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전혀 계획이 없으며, 이번 증여 완료로 이러한 오해도 바로잡히고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의구심도 해소될 것"이라고 일축했다. 증여세 탈루 의혹을 차단하기 위해 "과세 기준 가격은 증여일 한 달 후 기준 전후 각 2개월, 총 4개월 주가 평균으로 결정되므로, 주가 조작 주장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사진=한화
사진=한화

시장의 반응은?
이번 지분 증여를 둘러싼 논란은 극과극이다. 무엇보다 계열분리 가능성을 부인하다 갑자기 유상증자 정국을 끌어오며 승계 이슈가 부각됐으나, 실상은 유상증자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라는 설명에 대해서는 입체적인 분석이 나오고 있다.

확실한 것은 이를 통해 한화그룹의 3세 경영 승계 작업이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점이다. 실제로 김동관 부회장(방산·에너지·화학), 김동원 사장(금융), 김동선 부사장(유통·로봇)으로 이어지는 후계 구도와 사업 분할이 명확해졌다.

향후 각자의 사업 영역을 중심으로 한 계열 분리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최근 IPO 주관사를 선정한 한화에너지의 상장은 이러한 지배구조 재편의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무엇보다 김승연 회장이 직접적인 증여를 택함며 승계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고 관련 의혹을 상당 부분 해소하는 효과도 거둘 전망이다. 이는 경영권 승계라는 해묵은 불확실성을 털어내고, 김동관 부회장을 필두로 한 3세 경영진이 책임감을 갖고 그룹의 미래 핵심 사업(방산, 친환경 에너지, 우주항공 등)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방향성이다. 앞으로 명확해진 지배구조 아래에서 실질적인 경영 능력과 주주가치 제고 의지를 증명하는 일만 남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