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대 글로벌 조선·해운업계의 최대 이슈는 ‘친환경’이다. 국제해사기구(IMO)와 유럽연합이 2050년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넷-제로(기후중립)에 합의하는 등 친환경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권의 화석연료 우대정책으로 상당수 산업군의 친환경화에 제동이 걸린 상황에서도, 선박 부문은 흔들림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내 업계도 친환경 연료선 도입 등 탄소 저감 방안 마련에 골몰 중이다.
주로 주목 받는 분야는 ‘탈탄소’다. 친환경 연료 도입과 추진 시스템 개발로 탄소 저감을 줄이고 지구 온난화를 완화하는 방안이다. 친환경 선박 솔루션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으며 미래 고부가가치 기술로 우선 개발 대상이 됐다.
다만 선박이 오염시키는 대기뿐 아니라, 운항하며 파괴하는 해양 생태계 보호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표적으로 화학물질로 생태계를 교란하는 선박 하부 페인트, 수중 층간소음으로 평가받는 선박 방사소음, 먼 바다의 플랑크톤과 해파리 등을 강제 이주 시키는 선박평형수 등이 있다.
해양생물 부착 막는 방오도료, 독성 뺀다
선박 건조 과정에서 용접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공정이 도장(도료 칠)이다. 철로 만들어진 선박 부식을 막고 물의 저항을 줄여주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하기에 실력 있는 도장공이 질 좋은 도료로 작업해야 한다.
특히 선박 연수부(물에 닿는 부분)에 바르는 ‘방오도료’는 선박 운항 능력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선박 하부에는 운항 시간이 지나며 따개비나 홍합 등 온갖 해양생물이 부착한다. 부착량이 많아질수록, 선박 속도가 감소하고 연료 소비량이 늘어나 탄소 배출도 증가한다. 선박 무게도 무거워져 사고 위험도 커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선박 하부에 도포하는 것이 방오도료다.
문제는 방오도료가 해양생물에 독성을 띠는 유기주석화합물, 수은, 구리화합물 등이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해양생물의 임포섹스(환경호르몬에 의한 암수 혼합)를 일으켜 생태계를 교란하는 등 부작용이 따른다.
독성을 없애는 게 관건이다. 국내 유력 화학도료 제작업체인 KCC는 지난 2023년 국내 최초 양극성 방오도료를 출시하고, 저용제 방오도료도 개발했다. 양극성 방오도료 ‘메타크루즈 NS’는 국내 최초로 방오도료에 물과 잘 융합되는 친수성과 물과 잘 섞어지 않는 소수성을 동시에 구현해 다양한 극성의 해양생물 포자들이 원천적으로 선박 표면에 부착하지 못하도록 개발했다.
KCC는 외부용 방오도료에서 멈추지 않고 2023년 10월부터 HD현대와 ‘선박 도장 기술 개발 업무협약’을 맺고 선박 내부용 친환경 도료를 개발해 왔다. 그 결과 최근 ‘EH4600(HS)’를 개발하고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환경표지 인증을 취득하는 성과를 거뒀다.
스타트업계에서는 도료와 신기술을 융합해 미생물을 해결하려는 시도도 있다. 국내 업체 ‘프록시헬스케어’는 선박 표면 관리 솔루션 ‘트로마츠 오션’이 대표적이다. 트로마츠는 미세전류로 미생물막을 제거하는 기술이다, 선박표면에 전도성 재료를 도포하고 트로마츠 기술로 표면의 미생물막 생성을 억제하면, 미생물막을 먹이 삼는 따개비, 굴 등의 해양생물의 부착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프록시헬스케어는 트로마츠 오션 기술로 지난 2023년 7월 해양수산부 ‘예비 오션스타’ 기업으로 선정됐다.
학계에서도 연구가 한창이다. 이상준 포스텍 기계공학과 교수는 2024년 고분자 실리콘 기반의 선박 표면 코팅 기술을 개발해 해양생물 부착과 결빙 방지, 마찰 감소 성능을 장기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유기 코팅의 발전’에 지난해 5월에 소개됐다. 또다른 국제학술지 ‘응용 표면 과학’에도 같은 해 11월 소개되기도 했다.
층간소음은 사회문제, 방사소음은 생태계 문제
방오도료뿐 아니라 수중 방사소음도 생태계 파괴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선박의 수중 방사소음은 선박이 항해할 때 추진기 선체, 기계류에 의해 발생한다.
수중에서는 공기 중보다 음파 확산 속도가 훨씬 빠르다. 매질이 되는 물이 공기보다 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빠르게 확산한 음파는 수중 생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고래류를 비롯한 해상 포유류의 번식률을 저하하고 해안가 좌초와 선박 충돌 등 각종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다. 대부분이 수중 방향감각, 개체 간 소통, 먹이 활동 등에 소리를 이용하는데, 선박이 만들어낸 음파가 이를 교란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국내 유력 조선사인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은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방사소음 해결 기술 개발을 추진 중이다.
한화오션은 시흥R&D캠퍼스에 세계 최대 상업용 공동(空洞)수조를 설치하고 공동 현상 저감을 연구한다. 공동현상은 선박 프로펠러가 빠르게 회전할 때 압력이 급변하면서 물이 기체로 바뀌는 현상이다. 거품과 함께 강한 소음, 진동이 발생해 생태계 교란을 초래한다.
더불어 기계소음을 줄이기 위해 ‘마스커 에어 시스템’을 연구 중이다. 선박의 하부와 옆면에 공기를 분사해 선박 엔진 등에서 발생하는 기계류 소음이 공기방울층을 통과하며 저감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또한 한화오션은 마스커 에어 시스템 이전 단계로 여겨지는 ALS(공기윤활시스템) 역시 지난 2일 캐나다 벤쿠버 항만청으로부터 수중방사소음 저감 기술로 인정 받으며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런 선박 소음 저감 기술 개발은 방위산업 기술에도 쓰일 수 있어, 특수선 사업부에 힘을 싣고 있는 한화오션이 사업 시너지도 잡을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2023년 7월 소나로 탐지한 바닷속 음파 신호를 통해 선박 수중 방사소음을 정밀 분석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소나 신호 분석기법은 선박이 방출하는 소리를 수신해 소음의 세기, 방향, 거리 등을 측정하는 기술이다. 군용으로 개발된 기술이지만, 삼성중공업이 상선 분야 최초로 이 기법을 적용해 17만4000㎥급 LNG운반선의 소음 원인을 정밀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더 이상 강제 이주는 No”…선박평형수 관리로 해양 서식지 섞임 막는다
먼 태평양에서 퍼올린 바닷물이 대서양에 방류되며 생태계가 교란되기도 한다. 선박 운항 때 무게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배 아래나 좌우에 설치된 탱크에 채워 넣는 바닷물, ‘선박평형수’ 이야기다.
선박은 다른 국가의 항만에 입항 시 싣고 있었던 바닷물을 배출한다. 방류되는 바닷물 속에 타 해역의 유해성 플랑크톤이나 박테리아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주변 해역의 토착 생태계를 교란하는 등 해양오염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최근 해양 생태계 파괴의 주된 요인으로 지목된 해파리의 서식지 밖 이상 증식 현상에 선박평형수가 원인으로 제시됐다. 수천톤 이상의 바닷물을 빨아들일 때 유입된 해파리들이 배를 타고 원양을 건너 타국 해역으로 방류되며 문제를 일으킨다는 분석이다.
IMO를 비롯한 국제 해운계는 이런 선박평형수를 관리하기 위해 지난 2004년 선박평형수관리협약(BWM 협약)을 맺었다. 협약은 2024년 3월 개정안이 채택돼 오는 2025년 10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향후 BWM 협약의 적용 대상인 선박은 승인된 선박평형수 처리설비(BWMS)를 선내 장착해야 한다.
한국은 유예기간 동안 모든 신조선에 선박평형수 처리설비를 의무 장착해 건조함과 동시에, 기존에 운영하던 선박도 대부분 처리설비 장착을 마쳐 부담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10월부터는 선박평형수 처리설비가 장착되지 않은 400톤급 이상 원양선은 운항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업계 전반이 우선적으로 대비를 끝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은 선박평형수관리법을 제정하고 국제항해에 취항하는 대한민국 국적 선박의 선박평형수를 관리한다. 국회에서는 BWM 협약 시행에 앞서 선박평형수관리기록부를 전자 방식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 정비를 시도하고 있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 24일 선박평형수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전자기록부 도입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