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하이닉스가 품질‧수율‧적기개발을 무기로 내년에도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 1위 자리를 수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메모리사들의 약진과 전방 수요 약세에도 불구하고 올 한해는 SK하이닉스에게 최고의 해로 기록될 것으로 예상된다.
HBM 덕분이다. PC와 노트북 수요는 살아나지 못하고 있으나,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에 탑재되는 HBM의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SK하이닉스는 지난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역대 최대 매출을 갈아치웠다.
삼성전자도 올해 3분기 엔비디아로부터 HBM3E 8단 제품 퀄테스트를 통과했으나, SK하이닉스와의 기술 격차를 크게 좁히지 못한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앞서 올해 3월 HBM3E 8단 제품의 퀄테스트를 통과한데 이어 3분기에는 12단 제품을 통과해 엔비디아에 공급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어 내년초에 HBM3E 16단 제품 샘플을 고객사에 공급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으로 업계는 품질, 수율, 적기개발을 꼽는다.
엔비디아의 최신 AI칩인 B100은 하나에 7만달러(약 1억원)인 것으로 추정된다. B100은 HBM과 하나의 칩으로 패키징돼 있는데, HBM이 잘못될 경우 1억원짜리 칩 전체가 날아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엔비디아는 칩의 품질을 매우 까다롭게 본다.
이와 함께 엔비디아가 중요하게 보는 요인은 ‘공급량’이다. 현재 HBM의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는 만큼, 엔비디아는 최대한 많은 양의 HBM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높은 수율과 생산능력(CAPA)을 중요하게 본다.
업계 A 관계자는 “마이크론도 잘하고 있지만 CAPA가 작아 SK하이닉스가 시장을 리딩하고 있다”며 “HBM3와 3E 모두 SK하이닉스가 거의 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보통 웨이퍼 한 장의 수율이 80%라고 하면, HBM 16E단 수율은 50%가 안 된다”며 “이 정도 수준으론 비즈니스 자체가 안 된다. 그래서 수율을 어떻게 올리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여러겹 적층해서 만드는 제품으로, 한층 한층의 D램의 수율이 80%일 경우 16층 전체가 양품일 확률은 급격히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A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높은 품질과 수율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우선 D램 공정이 매우 안정화돼 있고, HBM1부터 HBM3E까지 양산을 진행하면서 많은 노하우가 쌓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의 HBM3E의 수율은 80%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AI의 개발 속도에 가속도가 붙음에 따라 AI 반도체 시장에서도 속도가 생명이다. 문제는 범용 D램과 달리 HBM의 경우 GPU와 함께 패키징되기 때문에 개발 기간이 훨씬 길다는 점이다. HBM은 웨이퍼 단위에서 일차 테스트가 이뤄진 다음, 이것을 쌓은 뒤 다시 한 번 테스트를 받는다. 그러고 난 후 HBM을 파운드리에 보내면 파운드리에서 GPU와 함께 패키징을 해 다시 한 번 테스트를 하고, 렉 단위에서 마지막으로 테스트가 이뤄진다. 만약 렉 단계에서 불량이 발생할 경우 다시 웨이퍼 단계로 넘어가 테스트가 진행되기까지 5개월이 소모된다.
업계 B 관계자는 “2번 실패할 경우 1년이 지나가는 건 순식간”이라며 “SK하이닉스는 렉 단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웨이퍼 단계에서 사전에 잡아내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SK하이닉스의 적기개발 능력에 대해 분석했다.
SK하이닉스는 HBM4부터는 TSMC와 손잡고 시장을 이끈다다는 계획이다. 전력소모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메모리 3사(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는 HBM4부터 베이스다이에 파운드리 공정을 사용한다. 베이스다이는 HBM의 맨 밑에 있는 층으로, GPU와 연결돼 HBM을 컨트롤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원래 메모리사들은 베이스다이를 자체 D램 공정으로 만들었으나, 베이스다이가 특히나 많은 전력을 소비하는 만큼 파운드리 공정을 사용해 전력 소비를 낮춘다는 방침이다.
당초 SK하이닉스는 TSMC의 5나노와 12나노 공정을 사용해 HBM4를 만들 예정이었으나, 고객사의 요청에 미국 주요 고객사에게는 3나노 공정 기반의 HBM4를, 범용 HBM4에는 12나노 공정을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HBM4E부터는 고객사의 IP(설계자산)을 베이스다이에 넣어 더욱 효율적이면서도 맞춤형 HBM을 시장에 공급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 11월 SK AI 서밋 행사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젠슨 황은 한국 사람 같다. ‘빨리빨리’를 강조한다. 아마 우리뿐 아니라 다른 회사들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HBM4도 예정보다 6개월 먼저 공급해달라고 요구했다. 곽노정 SK 하이닉스 대표에게 (이에 대해) 물어봤는데, ‘한번 해보겠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에 현재 SK하이닉스는 내년에 HBM4를 공급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B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HBM3E 12단도 전혀 문제 없다. 내년에 12단 매출이 많이 커질 것”이라며 “HBM4도 곧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중 패권전쟁이 심해지며 HBM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새로운 돌발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물론 SK하이닉스는 경쟁사에 비해 그 타격이 제한적이다. 그러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서 제어할 수 없는 이슈가 터지는 순간, SK하이닉스도 의외의 상황을 준비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