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서 미안합니다.”
이달 6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비례대표‧대전 동구 당협위원장)이 의원실을 들어서며 인사를 건넸다. 이날 오전 국민의힘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윤 의원을 경기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 등 ‘메가시티 서울’을 추진하는 ‘뉴시티 프로젝트 특별위원회’ 위원과 총선기획단 위원으로 동시 선임했다. 그는 “좋은 날”이라며 소감을 전했다.

윤 의원의 방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책상과 테이블에 그의 키만큼 높이 쌓인 자료다. 실손의료보험 청구를 간소화(전산화)한 ‘보험업법 개정안’과 가상자산(코인) 투자자를 보호하는 ‘가상자산산업기본법안’, 통장 협박·간편송금 등을 악용한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안’ 등이 빼곡하게 쌓아 올린 자료에서 나왔다.
21대 국회에서 윤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총 68건이다. 이 가운데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보험업법 개정안과 가상자산산업기본법안을 포함해 17건(가결 3건, 대안반영폐기 14건)이다. ‘경제 전문가’로서 국민의 실생활과 맞닿은 경제‧금융 분야 입법에 역량을 발휘해 왔다. 그는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 중) 과거에 발의했지만 통과되지 않았던 법안도 많다”라며 “보험업법 개정안과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 일부개정법률안(퇴직연금법)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실손보험금 청구 방식을 간편하게 바꾼 보험업법 개정안은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소비자의 편익 증진을 위해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를 권고한 지 14년 만에 통과됐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논의되지 못해 자동 폐기됐다.
윤 의원은 “과거에도 법 개정을 여러 번 시도했지만 법안이 통과되지 않은 이유는 의료업계와 보험업계가 가입자의 실손보험 청구자료를 병원에서 보험사로 제공하는 ‘중계기관’을 놓고 대립해 왔기 때문”이라며 “보험업계에서는 중계기관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비급여 진료 기록 공개를 우려한 의료업계의 반대가 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법안에 ‘업무 수행 과정에서 얻은 비급여 진료 관련 정보 등을 축적하거나 분석할 경우 처벌한다’는 내용의 조항을 넣으니 의료업계의 반발이 완화됐다”라며 “과거에 발의한 법안이 통과되지 않은 이유를 자세하게 파악해 해당 부분을 수정하니 통과가 돼서 보람을 느꼈다”라고 했다. 윤 의원에 따르면 그렇게 통과시킨 법안은 6개 정도다.
윤 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금융통’이다.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와 석사 과정을 밟았다. ‘시카고학파(신자유주의학파)’가 탄생한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명지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제7대 한국금융연구원장,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등을 거쳤다. 지난 2017년 8월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 1기 혁신위원으로 활동한 뒤 21대 총선에서 미래한국당(미래통합당 위성정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그는 경제학자와 정치인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소통 방식’을 꼽았다. 윤 의원은 “자신의 주장만 하던 경제학자와 달리 정치인은 반대 의견까지 양쪽의 입장을 모두 들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교수와 시민단체 활동 등을 하면서 ‘정책을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제안만 하다가 국회의원이 되어 실제 정책을 만들어 보니 다른 점이 많다”며 “입법은 정책의 필요성만으로 할 수 없고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반영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윤 의원은 지난달 열린 2023 국정감사에서도 민생 관련 문제점을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 한국에서만 유독 비싼 아이폰 출고 가격부터 높은 애플페이 수수료, 천재교육 갑질 문제 등을 지적했다. 지난달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감사에서는 “공매도를 3개월 내지 6개월 정도 아예 중단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라고 파격적인 제안도 내놨다.
“국감 공매도 발언, 총선 의식하지 않았다”

- 지난달 19일 국민권익위원회 국감에서 남다른 준비성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도지사 시절 공무원에게 개인 샴푸를 사 오라고 시키는 등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샴푸와 트리트먼트를 직접 들고 나오셨는데요.
“당시 7급 별정직 경기도 공무원이었던 공익제보자 조명현 씨가 샴푸 심부름까지 했다는 말을 듣고 일종의 ‘소품’을 준비했습니다. 공무원이 샴푸를 사러 청담동 미용실까지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오갔다는 이야기를 실제 샴푸와 트리트먼트를 직접 보여주며 한다면 사람들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했죠. (샴푸와 트리트먼트를) 사는 데 2주 정도 걸렸을 겁니다. 제가 국감에서 들고 흔들었더니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매진이 됐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 샴푸가 탈모 증세 있는 분들에게 인기 있는 샴푸였다고 합니다.”
- 지난달 27일 국회 정무위 종합감사에서 ‘공매도를 3~6개월 정도 제한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5일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를 발표하며 내년 6월까지 국내 주식 시장에서 공매도가 금지됩니다. 공매도 금지로 외국자본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매도 맛집’이라고 불릴 만큼 대한민국은 개인투자자보다 외국인과 기관을 우대한다고 생각합니다. 불법 공매도 세력과 공매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금융당국에 국민의 불만이 많이 쌓인 상태죠. 당국이 외국인과 기관의 ‘앞잡이’, ‘수호천사’ 등의 비판을 들으면서 굳이 공매도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주식 시장은 도둑이 우글거리는데 가게 주인이 문을 열어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번 공매도 금지 조치는 영구 중단이 아닌 한시 중단이에요. 잠시 문을 닫고 도둑이 들어오지 않게 안전장치를 하고 다시 가게 문을 열자는 취지죠. 장기투자자는 공매도를 금지하더라도 떠나지 않을 겁니다. 6개월 정도 문을 닫았다고 나갈 사람은 나가도 돼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공매도가 아닌 외환 문제 등입니다.”
-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나온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국감 당시 총선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개인투자자의 불만이 이미 오랫동안 누적된 상태였고, 총선과 관계없이 꼭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해 전날 고민한 후 국감에서 ‘공매도 한시적 금지’를 제안했습니다. 저의 발언을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셔서 당론으로 확산했고 금융위로도 전달된 거죠. 그 과정에서 총선도 고려됐을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총선을 의식하고 한 말은 아닙니다.”
- 이번 국감에서 ‘가계부채’ 문제가 화두였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먼저 정부 정책을 통해 관리해 보고, 안 되면 금리로 조절하는 방법을 고려하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계부채가 늘어난 본질적인 요인을 분석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가계부채는 부동산 가격과 직결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집값이 오르면 가계부채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집값이 안정되면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부동산 가격도 하향 조정이 될 겁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고 관리하면 가계부채도 조절될 거라고 봅니다. 기준금리를 올리면 가계부채를 줄일 수는 있지만 다른 곳에서 곡소리가 날 거예요. 가계부채 상승 요인인 부동산 가격이 정책을 통해 관리되면 가계부채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겁니다.”
- 부동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금리가 높아지며 부동산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됐는데, 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시장에 돈이 돌기 시작할텐데, 부동산 가격이 또 오르지 않도록 공급을 미리 늘리는 방법을 마련하는 등의 대비를 해야 합니다. 부동산 부분이 안정되면 다른 많은 문제도 함께 관리될 수 있을 거예요.”
“대한민국, ‘본격적 저성장기‧노령화’ 시대 대비해야”

- 한국과 미국이 지난해 계속 금리를 올리다 올해는 동결 기조를 유지하면서 고금리 상황이 길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가계부채 문제 등으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기도, 내리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고금리 장기화 국면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은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 경기에 따른 금리 인하 요인과 국외(미국) 상황에 따른 금리 인상 요인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지금으로선 금리 유지가 최선이라고 봅니다. 고금리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 약자 등은 햇살론 등의 기금을 통해 지원하고, 일반 국민은 어느 정도 견뎌야겠죠. 지금의 고금리‧고물가 상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이 큰데, 전쟁의 종식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전쟁이 이제 어느 정도 막바지에 이른 것 같은데, 전쟁이 끝나면 해외 재건 수요가 생기며 무역의 흐름이 원활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때가 되면 시장에 돈이 돌고 금리도 떨어지며 지금보다는 경제 상황이 좋아질 거라고 기대합니다.”
- 윤석열 대통령이 고금리 상황에서 막대한 이자수익을 얻은 은행권에 ‘종노릇, 갑질, 기득권층’ 등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업계에서는 세계적인 고금리 흐름에 따라 금리가 올라간 상황에서 대출 부담에 대한 책임을 은행에만 돌리는 것 같다는 불만이 있는데요.
“올해 들어 9월까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이 벌어들인 누적 이자이익이 30조원을 훌쩍 넘긴 상황입니다. 지난 6월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점유율은 전체의 81.3% 정도예요. 위험도가 낮은 주담대에 높은 이자를 적용해 예대마진을 늘리면 안전하게 돈을 많이 벌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은행만 30조 넘게 버는 건 문제가 있죠. 유럽의 ‘횡재세’처럼 횡재성 초과 이익을 얻은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제도에 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은행이 경기 침체에 대비해 대손충당금을 늘릴 필요는 있습니다. 은행의 초과수익이 자체적인 노력보다는 금리 인상 등의 외부 요인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충당금을 쌓고 남은 금액 중 일부는 사회에 환원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현재 대한민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한 시간을 이야기해도 끝나지 않을 중요한 문제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고도성장기가 막을 내리고 본격적 저성장기, 노령화 시대가 오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자 문제점입니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점점 낮아지며 2%를 밑도는 상황이 왔습니다. 복지 지출에 대한 요구는 점점 늘어나는데 복지예산을 감당할 성장잠재력은 뒷받침되지 않아 간극이 크죠. 고령화 사회에서 잠재성장률을 키우기 위해서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규제를 완화해 글로벌 기업과 외국인 근로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해외로 진출해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노력도 해야 하죠.”
- 최근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문제가 있을까요?
“21대 국회가 곧 끝나기 때문에 임기를 마무리하면서 지역 관련 이슈, 특히 메가시티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제가 당협위원장을 맡은 대전 동구의 남쪽에 금산군이 있는데 대전 편입을 원하는 상황입니다. 저의 지역구인 대전 동구의 발전과 관련된 문제를 잘 해결해 내년 지역구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재료를 많이 만들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