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30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김영섭 전 LG CNS CEO를 KT의 새로운 콘트롤 타워로 선임했다. 5개월에 달하는 초유의 경영 공백이 끝나는 동시에, 혼란에 빠진 KT의 새로운 구원투수가 전격 등판한 셈이다.

그는 2026년 3월까지 KT그룹을 이끌 예정이다. 

넘어야 할 산은 만만치않다. 5개월의 경영 공백이 이어지며 조직 내외부의 혼란이 극에 달한 가운데 이를 수습하는 한편, 정부와의 관계정상화 및 내부 개혁에 속도를 내면서 디지털 전환(DX)의 큰 그림도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김영섭 KT CEO. 사진=KT
김영섭 KT CEO. 사진=KT

재무통, DX 전문가, 융합형 CEO
김영섭 CEO는 1959년생이며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LG 전신인 럭키금성상사(현 LX인터내셔널)에 입사해 LG그룹 구조조정본부 재무개선팀 상무를 거쳤으며 회장실 감사팀장, 총무부장, 미국법인 관리부장 등을 지냈다. 이후 LG유플러스에서는 CFO 부사장을 역임해 전형적인 관리형, 재무통 인사로 여겨진다.

LG CNS로 자리를 옮긴 후 하이테크사업본부, 솔루션사업본부 등 주요 사업본부장을 지낸 다음 CEO까지 역임했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전환을 주도해 큰 성과를 내기도 했다.

조직 관리 및 재무에 특화된 인사인데다 디지털 전환 역량을 갖췄다는 인사라는 평가다. 여기에 인문학적 소양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여 업계에서는 '융합형 인재'로 꼽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김 CEO가 오랫동안 LG에서 활동했으며 KT의 경쟁사인 LG유플러스 CFO까지 역임한 점에 주목, 순혈주의가 강한 KT의 새로운 CEO로 LG 출신이 임명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정치적 외풍에 시달린다는 평가를 받는 KT에 현 집권 여당과 연결고리를 가진 김 CEO가 선임된 것을 두고 묘하다는 반응도 있다. 김 후보가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의 친형인 이종섭 씨와 경북대학교 사대부고 동문이기 때문이다.  

다만 KT를 둘러싼 여러가지 상황을 돌아봤을 때 김 CEO의 등판은 그 자체로 의미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 만큼 조직 관리 전문가이자 재무통 인사, DX 전문가이면서 융합형 인재인 김 CEO에 대한 믿음이 크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김영섭 신임 CEO에 대해 풍부한 기업경영 경험과 오랜 기간 ICT 업계에 몸 담으며 축적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KT를 디지털플랫폼기업으로 성장시킬 최적의 적임자로 꼽는다. 또한 KT의 미래성장을 견인하고, 지속 성장성 강화와 기업가치 제고에 크게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영섭 CEO는 취임식에서 “경영 공백이 길었음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온 임직원 여러분들께 감사하다”며, “지난 4주 동안 KT와 주요 그룹사의 경영진을 만나며 현안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와 함께 “KT는 유무형 자산 외에도 인재, 대한민국 ICT 근간을 책임진다는 자부심 등 자산이 많은 기업이다. 분명한 지향점을 가지고 지속성장 기반을 건실하게 쌓아가면 더 힘차고 빠르게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인사말을 통해서는 “앞으로 KT그룹이 보유한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네트워크 인프라와 기술력, 사업역량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기반을 구축하고 기업가치 제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조직 안정화 속도낼 듯
KT의 새로운 수장이 된 김 CEO의 최우선 과제는 조직 안정화다.

현재 KT는 혼란의 연속이다. 연임에 강한 의지를 보이던 구현모 KT 대표가 결국 용퇴로 가닥을 잡은 가운데 윤경림 사장이 등판했으나, 그 역시 외풍에 흔들리며 물러나자 KT는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KT는 윤 사장 용퇴 결정 후 박종욱 경영기획부문장 체제를 바탕으로 대표이사 직무대행과 주요 경영진들로 구성된 비상경영위원회를 신설하고 산하에 ‘성장지속 TF’과 ‘New Governance  구축 TF’를 운영하는 등 경영 정상화에 나섰으나 위기감은 고조될 뿐이었다. 무엇보다 정부 여당의 KT CEO 선임 개입이 노골적으로 이어지며 조직 내외부에서는 불안감이 커졌다.

경영 공백이 길어지는 가운데 KT는 지난 4월 양춘식 경영서비스본부장을 KT스카이라이프 대표이사에, 조성수 경영기획총괄(전무)을 KT알파 대표에 신규선임하는 한편 박현진 지니뮤직 대표이사를 재선임하며 자회사 단속부터 나섰다. 이어 신임 CEO 인선 레이스에 속도를 내며 정치인 인사를 배제하는 선에서 전열 추스리기에 나섰다. 

그러나 조직 내 근본적인 동요를 막을 수는 없었다. 외부로 그 동요가 표출될 정도의 격렬한 상황은 아니었으나, 이 역시 외풍에 시달리는 KT 구성원들이 반 정도 '체념'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눈에 띄는 '폭발'은 없었으나 5개월에 달하는 경영 공백은 분명 KT를 내부적으로 갉아먹고 있었다.

김 CEO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순간이다. 내부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김영섭 CEO는 단독 후보가 됐을 당시부터 조직 내 세부적인 그림을 파악하는데 주력했다"면서 "조직을 거시적 관점이 아닌 미시적 관점에서 하나하나 뜯어보며 안정화에 방점을 찍은 전략을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가 LG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외부인사라는 점에서 김 CEO가 보여줄 조직 안정화는 지금까지의 KT 조직 안정화와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 연장선에서 김 CEO는 흔들리는 조직을 빠르게 장악한 후 구성원들의 상황을 세밀하게 파악한 다음 속도감 있게 내부 조직을 추스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전망이다.

사진=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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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드라이브 걸린다
김 CEO는 조직 안정화와 함께 개혁 드라이브도 강하게 걸 전망이다. 

내부서 진행되는 개혁은 재무적 관점에서의 개혁이 핵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CEO가 조직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본 후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가운데, 다소 냉정한 내부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는 조직 안정화 전략과 맞물리며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눈길을 끄는 것은 외부, 특히 정부와의 관계개선이다. 

당장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의 회동을 준비하는 등 일단 삐걱거리는 정부와의 관계개선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바탕으로 CEO 선임 과정에서 틀어진 정부와의 소통채널을 다시 정비하고 가계통신비 인하 등의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재차 내부 개혁 및 조직 안정화에 나서는 패턴이 반복될 전망이다. 일각에서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휘말린 KT 전 경영진들에 대한 수사에 속도가 붙을수록 김 CEO의 광폭행보에도 드라이브가 걸릴 것이라 예상하는 배경이다.

취임식에서 김 CEO가 디지코를 강조하면서 역량을 키우기 위한 '핵심인재 육성'을 거론한 점도 눈길을 끈다. 실제로 김 CEO는 KT 혁신 성장 전략인 디지코를 추구함에 있어서도 ICT의 본질적인 역량이 핵심이라며, 이를 위해 나이와 직급에 관계없이 뛰어난 역량이 있으면 핵심인재로 우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조직 개혁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우세하다.

다만 화합의 기조도 강조했다. 김 CEO는 취임식에서 화합은 동료로서 상호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며, 특히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리더가 단기적인 외형 성과에 매몰되지 않고 분명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강조한 고객가치, 역량, 실질을 높이기 위해 고민하고 합심하며 해결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자고 당부했다. 

김영섭 CEO 프로필. 사진=연합뉴스
김영섭 CEO 프로필. 사진=연합뉴스

DX는 두 가지 시나리오 제기
김 CEO의 중요한 미션 중 하나는 바로 디지털 전환이다.

KT는 기간 통신사의 지위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 네트워크 인프라의 총 책임자이자 DNA 그 자체다. 당연히 통신 인프라 구축에 책임이 있으며 이와 관련된 원만한 서비스를 구축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탈통신 전략을 중심으로 하는 디지털 전환도 매끄럽게 추진해야 한다. 글로벌 통신 트렌드이자, 앞으로 통신사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KT는 이 지점에서 상당한 성과를 낸 바 있다. AI 측면에서는 초거대AI인 믿음을 준비하는 한편 AI 딜리버리 전략을 중심으로 AI 로봇 라인업을 가동하고 있으며 이른바 AI 풀스택 로드맵도 추진중이다. 이 외에도 에듀테크 및 헬스케어 분야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다. 에듀테크 영역에서는 각 지역의 교육청과 협업한 결과물들이 나오고 있으며 헬스케어는 베트남과 연계한 입체적인 전략들이 결실을 맺고 있다. 여기에 미디어 콘텐츠 및 다양한 ICT 서비스들도 출격하고 있다.

김 CEO도 이러한 흐름을 이어받을 전망이다. 다만 구현모 전 CEO 당시의 디지털 전환 전략이 전개될 것인지, 자신만의 새로운 그림을 그릴 것인지는 미지수다. 방향성은 정해졌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에 있어서는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현 상황에서는 후자에 무게가 더 실린다.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KT 분당사옥에서 사내 임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취임식에서 김 CEO는 모든 업무에서 ‘고객’을 최우선으로 두고 차별화된 고객 가치를 끊임 없이 발굴하고 빠르게 제공해야 한다고 말하는 한편 고객의 니즈와 페인포인트에서 차별화된 역량을 찾아내고, ICT 경쟁력 제고와 함께 본업인 통신사업도 단단하게 만들어 가야한다고 주문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전환의 중요성을 거론하면서도 본업인 통신사업에 특히 주목한 지점이 눈길을 끈다. 디지털 전환과 본업의 사이에서 김 CEO가 특히 무게를 둔 것은 적절한 균형을 전제로 본업이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정부가 KT에 원하는 것 중 하나가 가계 통신비 인하 등 본업인 통신업이라는 점을 미뤄볼 때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다만 취임식에서 KT 혁신 성장 전략인 디지코를 특히 강조한 것을 두고 디지털 전환에 대한 큰 그림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라는 해석도 있다. 

또 김 CEO가 KT 사업의 근본인 통신과 ICT의 내실을 다지고, 이를 토대로 실질적인 성과를 추구해야 지속성장이 가능하다고 설명하는 한편 숫자를 만들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기 보다는 사업의 본질을 단단히 하고 미래 성장의 에너지를 쌓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짚은 것은 '균형론'에도 일부 무게를 준다. 결론적으로 김 CEO의 디지털 전환 전략은 자신만의 그림일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