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상반기 지정학적 리스크 부각 이후 인플레이션 압박에 따른 글로벌 통화 긴축,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증시 분위기가 침체되자 IPO를 준비하던 기업들이 계획을 미루거나 철회하는 분위기가 지속됐다. 이코노믹리뷰는 ‘이주의 보고서’로 배정연 신영증권 연구원의 “하반기 IPO: 그래도 지구는 돈다”를 선정했다. 하반기 IPO 시장이 상반기와 분위기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IPO 시장, 비온 뒤 맑음
상반기 유동성 환경 악화로 기업가치 평가가 어려워지자 현대엔지니어링을 비롯해 SK쉴더스, 원스토어 등 주목받던 대어급 기업들이 모두 상장 철회 의사를 밝혔다. 글로벌 긴축으로 국내 증시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위험자산 회피 심리로 인해 상반기 내내 상장 일정이 미뤄져 왔다.
그러나 최근 여러 변화가 감지된다. 스팩 합병을 통한 상장이 늘어나고 있으며, 공모가를 낮춰 IPO를 재추진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이는 상반기와는 시장 분위기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한다.
지난 2월부터 거래소는 스팩이 소멸되고 회사가 존속법인으로 남는 ‘스팩소멸합병’ 방식을 허용했는데, 이후 상장 예비심사 신청을 하는 스팩이 늘고 있다. 기존에는 스팩이 존속법인으로 남고 피합병 법인이 소멸되는 ‘스팩존속합병’ 방식만 가능했는데, 이제는 존속 법인을 선택할 수 있어 법인격과 업력이 소멸되던 기존의 단점을 피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벤처캐피탈도 운용 중인 펀드를 소멸시켜야 하는 등의 문제로 사실상 스팩 상장이 불가능했는데 이제는 가능해져 시장이 보다 활발해질 전망이다.
스팩합병을 통한 우회 상장은 직상장과는 달리 수요 예측 등의 절차가 필요 없어 인지도가 낮은 기업의 경우 가치 평가에 유리하다. 투자자 역시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고 원금 손실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안정성을 보장 받으며 기업 인수합병 시장 투자가 가능하다.
대부분의 스팩이 유가증권시장보다 코스닥시장에 많아 기업가치가 큰 대형 기업의 스팩 상장은 어려운 것이 한계점이지만 스팩에 눈을 돌리는 기업과 투자자들은 더욱 늘어날 듯 하다.
IPO 재도전 사례 등장
상장을 철회했던 기업 중 다시 희망 공모가를 크게 줄여 진행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상장에 재도전하는 경우 희망 공모가 외 공모 주식수도 낮춰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기업가치도 예정보다 하향 조정되지만 연내 상장을 완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대명에너지는 희망공모가를 2만5000원~2만9000원에서 1만5000원~1만8000원으로 낮췄고, 실제 공모가는 1만5000원에 확정돼 5월16일 상장을 완료했다. 7월6일 종가는 1만4000원으로 공모가보다 소폭 내려온 수준이다.
3월 수요예측에서 흥행에 실패해 상장을 철회했던 약물 설계 전문기업 보로노이는 두 달여 만에 코스닥 상장을 재추진해 6월24일 상장을 완료했다. 보로노이도 기존 희망 공모가는 5만원~6만5000원선이었으나 4만원~4만6000원 수준으로 낮아졌고, 실제 공모가는 4만원에 확정됐다.
다시 기지개 펴는 기업들
보로노이를 시작으로, 주춤했던 바이오 벤처 기업들의 하반기 기업공개도 상반기보다 활발해질 예정이다. 기술특례로 상장한 일부 바이오기업들의 잇따른 악재로 IPO의 문턱이 높아진 탓에 바이오 업계의 자금조달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신약 개발 회사인 에이프릴바이오와 의료 AI 기업 루닛이 상장 승인되며 자금조달 시장 내 바이오 업계 부담이 줄어든 듯하다.
이후 면역치료제 개발 기업 샤페론, 인공혈액 개발 기업 선바이오 등이 예비 심사를 통과하고 증시 데뷔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 디티앤씨알오, 바이오인프라, 에스바이오메딕스, 바이오노트도 각각 코스닥과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위해 예비심사를 청구한 상태다. 지난해 상장 심사 철회를 선택했던 레몬헬스케어도 상장을 위한 재도전 준비 중이다.

하반기 가장 큰 관심사는 2012년과 2018년에 이어 세 번째 IPO에 도전하는 현대오일뱅크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유가가 급등해 정유업이 초호황을 누리고 있어 올해 안에 기업공개를 완료하기로 한 듯하다. 구주매출 비중이 많다는 것이 약점으로 지적되지만, 기업공개를 통해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정유업 의존도를 낮추고, 화이트 바이오 등 신사업 발굴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 쏘카도 상장 예정이다. 쏘카는 현대글로비스, 롯데 등 대형 물류/유통 기업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사업영역 확장을 꾀하고 있어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선두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케이뱅크 역시 연내 상장을 진행할 계획이다. 케이뱅크는 가상화폐 거래소인 업비트와의 독점적인 계좌 제휴를 통해 지난해 흑자전환에 성공한 후 뚜렷하게 개선된 실적이 기업가치 평가에 유리하게 반영될 것이다. 연말에는 상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KT는 3월 주주총회에서 비씨카드, 케이뱅크, 밀리의 서재 등 자회사들의 상장 계획을 밝혔는데 이 중 밀리의 서재가 이미 지난 5월 상장 예비 심사 청구서를 제출했다.
컬리(마켓컬리)도 하반기 IPO를 추진 중이다. 컬리는 연간 매출액 증가에도 불구하고 영업 적자폭이 확대되며 작년까지 누적 적자가 5000억원에 달했다. 기존대로라면 상장이 불가능하지만 쏘카와 마찬가지로 유니콘 특례 요건 적용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SSG닷컴, 오아시스마켓 등이 나란히 하반기 국내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아울러 11번가 역시 기업공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환경은 아직 녹록치 않으나, 상반기와 달리 하반기는 상장 이벤트 증가로 투자 다양성은 확대될 것이다. 다만 상반기 LG에너지솔루션 케이스처럼, 쏘카, 현대오일뱅크 등 대형 IPO가 진행되는 경우 시중 유동성 쏠림으로 유통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어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