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올해 기후는 유난하다.
파키스탄에서는 5월에 50도에 달하는 폭염이 몰아쳤고, 7월에는 기록적인 홍수로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중국에서는 양쯔강의 수위가 줄어들면서 수력발전량 줄어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고, 미국 중서부에서는 작년부터 기록적인 가뭄이 이어지고 있는 반면에 중동부 세인트루이스 시는 1000년에 한번 발생할만한 규모의 폭우로 물에 잠겼다.
지구 평균기온의 증가에 따른 극한기상은 이제 ‘뉴노멀(New Normal)’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후학자들은 더 빈번한 가뭄, 심각해지는 홍수, 해수면 상승, 일상적인 폭염, 거대한 산불, 감당하기 힘든 폭풍을 점점 더 자주 경험하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로 인해 초래된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제한으로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전년에 비해 최대 10배까지 치솟았다. 이 여파로 세계 최대 화학기업 중 하나인 바스프 사는 질소비료의 원료인 암모니아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비료의 국제가격은 2021년 초 대비 이미 최대 3배까지 올랐고, 그나마 내년에는 공급마저 부족해질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비료 공급량이 줄어들고 가격까지 상승하면 농민들은 농사를 포기하거나 시비량을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결국 세계 농산물 생산량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빈번한 극한기상과 이로 초래되는 사회적 변동성 앞으로 점점 더 증폭될 것이라는 데 있다.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하더라도 2030년경에는 산업화 이전 시대 대비 지구 평균기온은 1.5도까지 상승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도 감당하기 힘든 기후변화는 단지 1.1도의 상승에서 나타나는 뉴노멀이다. 미래는 결코 순탄하기 어렵다.
여기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식량이다. 기후가 급격하게 변한다는 건 식량 생산이 줄어든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세계 곡물생산량은 정체를 나타내고 있다. 단위면적당 생산성은 꾸준히 개선되었지만 세계의 곡창지대에서 기상재해가 빈발했기 때문이다. 반면 세계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기후학자인 조천호 박사는 “기후변화가 위험한 건 식량위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인류 문명의 지속가능성은 기후위기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여기에 비료 등 농자재 공급망 역시 다양한 이유로 영향을 받고 있다.
현재의 농업기술이라면 당장 내년에 먹을 식량을 생산할 수는 있다. 농경지를 확장하고, 지하수를 끌어올리고, 비료 투입량을 늘리고, 그리고 방목지를 확장하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접근방법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UN 식량농업기구(FAO)는 우리가 먹고 마시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전체 배출량의 31%에 달한다고 한다. 농업과 토지이용 분야는 이미 에너지 산업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온실가스 배출원이다.‘갈택이어’의 고사에서 경고하듯 연못의 물을 퍼내면 물고기를 잡을 수는 있겠지만 내년에 잡을 물고기는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다. 이렇듯 환경에 과한 부담을 주는 농업은 결국 연못에 물을 말려 물고기를 잡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결국 ‘기후 스마트 농업(Climate-Smart Agriculture)’으로 농업 생산성도 늘려야 한다.
월드뱅크는 기후 스마트 농업을 “작물, 축산, 삼림 및 어업에 대해 통합적인 접근방법을 통해 기후변화와 식량안보가 상호 연결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기후 스마트 농업은 목표는 세계 인구와 축산물 수요 증가로 인해 늘어날 식량 수요를 충족하는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정밀 관개 및 시비 기술, 메탄 저감 사료첨가제, 자원순환 효율 향상, 육류 대체 단백질 식품, 종자, 수직농장 등을 포함한다. 이렇듯 기후 스마트 농업은 요즈음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기후변화, 식량안보,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포괄한다.
기후 스마트 농업이 지속가능한 농업을 지향한다면 애그리테크는 농업 가치사슬 전반에서 효율성, 수익성 및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농업기술로 정의한다.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비즈니스 모델, 신기술 및 새로운 어플리케이션 등이 이 영역에 포함된다. 세부적으로는 농업생명공학기술, 작물보호, 정밀농업, 곤충과 양식을 포함하는 축산 기술, 자율주행 농기계와 로봇, 자동화 기술,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 핀테크 및 이커머스 등을 포괄하고 있다.

당연히 기후 스마트 농업은 애그테크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기후 스마트 농업을 구현하기 위한 핵심 기술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애그테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초기에는 축산과 시설원예 분야의 스마트팜에 관심이 집중되었지만, 점차 정밀농업, 이커머스, 농업 핀테크, 식품폐기물의 재활용, 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언제나 그했듯이 혁신은 경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농업에 ICT, 바이오테크, 에너지, 이커머스 등이 만나면서 전혀 새로운 접근방법과 현장 적용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자율주행 농기계와 자동화 기술은 농업계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현안인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고, 스마트팜과 수직농장 등 새로운 재배 플랫폼은 혁신적인 기술로 무장한 청년들이 농업으로 진입하는 통로로 작용한다.
우리 농업은 낮은 자급률, 극심한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 기후변화 대응의 한계 등 식량위기와 지속가능성의 위험에 동시에 노출되어 있다. 결국 미래를 위한 해결책은 역시 농업과학기술의 혁신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농업계 내부의 혁신과 참여로 가능했지만 기후위기가 심화할수록 첨단기술로 무장한 애그테크 기업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애그리테크 기업은 우리나라의 농업 문제해결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와 식량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개도국의 기후 스마트 농업을 지원하는 데도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농업을 미래의 성장 엔진으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것은 물론 우리와 식량을 공유하고 있는 수많은 개도국의 기후 스마트 농업을 구현하는데도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혁신은 이미 시작되었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 소장은 농촌진흥청 및 농업기술실용화재단에서 농업R&D 및 사업화 관련 업무를 수행하였으며,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에 설치된 농어업농어촌탄소중립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농림식품과학기술위원회 위원 등에서 성과를 냈으며 코이카 농업 ODA 전문가다. IPCC 제4차 보고서 승인 회의와 유엔기후변화협약 회의에 한국 정부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식량위기 대한민국> 저자이며 최근 '3PROTV' 등의 채널에서 농업관련 전문가로 초대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