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한국 마스크팩 같다(like Korean facial cosmetic masks)’는 관용어는 ‘인기 있는’이라는 뜻으로 미국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K-뷰티 인기가 낳은 산물이다.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K-뷰티의 대표상품으로는 마스크팩과 쿠션 파운데이션을 꼽을 수 있다. 한국의 화장품업계는 메이크업이나 스킨케어 같은 주류 아이템이 아닌 마스크팩, 쿠션 등 독특하고 창의적인 아이템으로 해외 틈새시장(Niche Marketing) 공략에 성공했다. 쿠션은 자외선 차단과 메이크업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제품으로, 전에 없는 새로운 제형과 형태의 제품임에도 해외에서 2016년 1억개 누적 판매를 돌파하며 ‘1초에 1개’ 판매 신화를 썼다. 한국 화장품 업계의 세계시장 공략에 성공한 K-뷰티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오래 전 해외시장에 진출해 경쟁력을 갖춘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선도하고 있다. 

▲ 세계 최초 '쿠션' 카테고리 창출. 출처= 아모레퍼시픽

시장 트렌드를 읽는 눈, 위기 극복 DNA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중화권, 아세안, 미주, 중동 유럽 등에서 한국 화장품으로 아성을 구축한 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진 일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위기를 돌파하면서 갈고 닦은 경쟁력의 산물이다.

1945년 국내 최초 화장품 제조회사 태평양화학공업을 설립한 서성환 회장은 1960년 업계 최초로 프랑스 해외시찰을 다녀온 뒤 해외진출에 대한 꿈을 품기 시작했다. 뷰티 선도국 기술력에 반한 그는 한국에도 선진 기술을 이식해 같은 해 프랑스 화장품회사 코티사와 기술 제휴를 맺었다.

창업 19년 만인 1964년 국내 화장품 업계 최초로 ‘오스카’라는 자체 브랜드로 해외 시장 문을 두드렸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후 적자의 늪에 빠져 고전을 면하지 못했다. 1986년에는 화장품 시장이 개방되자 회사가 존망의 기로에 섰다. 아모레는 계열사를 매각하는 등 생존을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럼에도 ‘태평양’이라는 회사명에 걸맞게 아시아의 미(美)를 태평양 너머 세계에 전파하겠다는 기업 소명을 잊은 적 없다.

절치부심한 아모레퍼시픽은 1988년 ‘순’ 브랜드로 프랑스 시장에 첫 발을 내디뎠고 1990년 ‘리리코스’ 브랜드를 출시했다. 이번에도 고배를 마셨다. 현지 고객을 고려하지 않은 운영 방식, 유통 판매사 매각에 따른 판매권 상실 등으로 위기를 맞고 두 브랜드 모두 철수했다. 

세 번 만에 해외 진출 성공, 태평양 시장 장악

1990년대 초반 또 해외 문을 두드렸다. 계속된 해외진출과 비회장품 사업 확장으로 경영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 창업주 차남인 서경배 회장은 용단을 내렸다. 과감한 구조조정과 기업 체질 개선에 나섰다. 덕분에 1997년 외환위기 난관도 무사히 넘어갔다.

서 회장은 글로벌 브랜드 전략 실행에 전력투구했다. 국내 화장품 업계 성장으로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판단을 내렸다. 중국과 프랑스에 설립한 공장을 기반으로 2000년대부터 세 번째 글로벌 시장 확장에 나섰다.

▲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브랜드가 프랑스 백화점 ‘갤러리 라파예트’ 매장에 문을 열었다. 출처= 아모레퍼시픽

서 회장은 설화수, 라네즈, 마몽드, 이니스프리, 에뛰드하우스 5대 브랜드를 중화권, 아세안, 북미 등 3대 주요 시장을 중심으로 공략했다. 철저한 사전 조사와 현지 소비자 조사를 거친 마케팅 전략이 주효해 아모레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서 회장은 중국 시장의 가능성을 먼저 꿰뚫어 봤다. 1992년 중국 지사를 설립하며 중국 시장에 첫 걸음을 내디뎠다. 이 해에 한중 양국은 수교했다. 스킨케어 제품이 강점이었던 만큼 평균 기온이 낮고 건조한 동북지역 선양에 공장을 건립했다. 2002년에는 상하이에 공장을 준공하며 중국 시장을 확대했다.

현재 라네즈, 마몽드, 설화수 등 8개 브랜드가 진출해 있다. 설화수는 국내 최초 한방 화장품으로 인삼과 홍삼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인삼과 홍삼을 선호하는 중국 소비자의 소비 트렌드를 정확히 읽어낸 제품이었다. 설화수가 중국 언론사 <인민망>이 2014년과 2016년 발표한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한국의 명품 1위’로 선정된 것은 서 회장의 통찰력을 방증한다.

아모레는 중국 다음 시장으로 포스트 중국 시장으로 떠오른 아시아 태평양 시장 공략에도 열을 올렸다. 거대 인구와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 아세안으로 진출한 것이다.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소비자들은 덥고 습한 날씨로 실내에서 에어컨 바람에 장시간 피부가 노출돼 피부가 건조하고 피부색이 어두운 점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모레는 미백·보습 제품을 내놓아 이들을 사로잡았다.

아모레는 2000년대 초반 프리미엄 스킨케어 브랜드인 ‘설화수’를 아세안 시장에 진출시켰다. 설화수는 태국에서 유명 연예인과 뷰티 리더 사이에서 ‘머스트 해브(Must Have, 필수품) 뷰티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에뛰드하우스, 이니스프리, 마몽드 등이 진출하는 국가마다 대박을 터뜨렸다.

아모레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10년 설화수를 뉴욕 ‘버그도프굿맨(Bergdorf Goodman)’ 백화점에 입점시켰다. 미주 시장 진출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이다. 2014년 라네즈를 미주 ‘타겟(Target)’ 백화점, 지난해 미국 최대 규모 뷰티 편집숍 ‘세포라’ 온라인 몰과 오프라인 매장에 입점시켰다. 이니스프리는 지난해 뉴욕 맨해튼 유니언 스퀘어에 매장을 오픈했다. 아모레퍼시픽은 미주에서 아세안과 같이 최상류 소비층을 타깃으로 ‘하이엔드(High-End)’ 전략을 펼치고 있다.

▲ 아모레퍼시픽 해외 매출 현황. 출처=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의 결단력과 시장을 읽는 눈은 해외매출액 증가로 되돌아왔다. 2014년 8325억원, 2015년 1조2573억원, 2016년 1조6968억원 등 매출은 연평균 30% 이상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한한령 여파로 해외매출 신장률이 둔화됐다. 매출액은 1조8205억원으로 조금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체 영업이익도 7315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32.4% 줄었고, 매출은 6조290억원으로 10% 주는 등 다시 위기를 맞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서 회장은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취임 20주년 행사에서 “1945년 창업 이후 언제나 위기는 찾아왔고 그때마다 부단한 노력으로 극복해 지금의 아모레퍼시픽이 될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 어떠한 외풍이 불어도 쿠션과 같이 독보적인 기술력과 품질로 세계 선두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불굴의 의지를 보였다.

이런 의지는 중화권에 집중돼 있던 글로벌 역량을 중동, 유럽으로 선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역시 중동시장의 흐름을 읽어낸 결과물이었다. 중동지역은 종교·문화 특성으로 여성들이 부르카(사우디아라비아), 히잡(아랍에미리트) 등으로 머리나 얼굴 일부, 신체 대부분을 가려야 하기 때문에 노출 부위를 관리할 수 있는 제품이 인기다. 특히 눈 부분의 메이크업을 진하게 하는 편으로 브로우(눈썹제품)나 마스카라(속눈썹 제품)를 하지 않고서는 외출을 하지 않을 정도다.

아모레는 이런 시장 추세를 간파하고 2016년 중동 최대 유통 기업 알샤야그룹과 파트너십 계약을 맺고 색조화장 브랜드 에뛰드하우스를 앞세웠다. 중동 화장품 시장의 트렌드 발신지이자 거점 지역인 아랍에미리트에 에뛰드하우스 매장을 열 예정이다.

중동 화장품 시장은 2015년 규모 180억달러(약 19조4886억원)에서 2020년 360억달러(38조 9772억원)로 연평균 15%의 높은 성장이 예상되는 시장으로 전 세계 뷰티 기업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시장이다. 아모레는 이 시장에서 큰 판을 벌일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아모레는 또 프랑스를 발판으로 유럽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1990년 프랑스에서 화장품 사업은 철수했지만 1977년 독창적인 디자이너 향수 브랜드 롤리타 렘피카(Lolita Lempicka)를 선보여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경험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11년 국내기업 최초로 해외 뷰티 브랜드 아닉구딸(ANICK COUTAL)을 인수해 향수 사업에 진출했다. 지난해에는 파리의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에 설화수 단독 매장을 열면서 재공략하고 있다.

신제품으로 새로운 뷰티 문화 창출

1964년 해외 시장에 첫 발을 내딛은 아모레는 2018년 글로벌 뷰티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미국의 뷰티전문 매체인 <Women’s Wear Daily>가 선정하는 세계 100대 뷰티 기업 순위 7위에 올랐다. 2007년 <Women’s Wear Daily> 순위에서 처음으로 상위 20위권에 진입한 이후 10년 만에 7위로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다. 10년 사이 아모레퍼시픽그룹의 매출은 1조5666억원에서 6조5976억원으로 4배가량 성장했다. 영업이익은 2375억원에서 1조828억원으로 약 5배 늘어나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성장은 K-뷰티, K-pop, K-드라마 확산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K-pop과 K-드라마가 가장 먼저 진출한 일본과 중국에서 한류의 열풍이 시작해 동남아와 미주, 유럽까지 한류의 영향권에 들어가면서 아모레퍼시픽의 제품도 인기를 얻은 것이다.

K-드라마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결점 없이 깨끗한 피부는 세계 여성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의 화장품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세계 최대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는 한국 화장품, 한국식 피부 관리 방법 등을 소개하며 K-뷰티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고 세계적인 패션 잡지 <보그>에서는 아모레퍼시픽 광고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새로운 제품으로 새로운 용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모레퍼시픽이 최초로 만든 쿠션파운데이션 제품에서 ‘쿠션(Cushion)’이란 단어는 본래 뜻을 넘어서 이제 자외선차단·메이크업 올인원(All-In-One) 화장품이란 의미로 만국공통어로 쓰이고 있다. 마스크팩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스킨케어를 한 번에 해결하도록 하면서 ‘1일 1팩’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아모레퍼시픽은 해외 시장 문을 두드린 지 50여년 만에 이제는 새로운 화장품 문화를 만들며 글로벌 뷰티 트렌드를 선도하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산업경제팀 이미혜 선임연구원은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브랜드는 외국에서도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홍삼, 인삼 등의 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 반응이 좋았다”면서 “아모레퍼시픽은 아시아적 정서를 담아 색조 중심이던 서양에 스킨케어 문화를 전파하고 마스크팩 또한 대중화시킨 소프트파워가 있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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