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혈맹인 미국이 경제 문제에 있어서 냉정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한국지엠 사태가 본보기다. 본래 외교의 으뜸은 자국 이익이다. 우리의 이익이 담보됐을 때 협상도 있고 양보도 있다.

2018년 한국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발발한 1997년과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에겐 자금력이 있고 위기를 해결해 본 경험이 있다. 국부(國富)를 지키기 위해 더 멀리서 크게 조망해야 할 때다. 한국지엠 사태를 자동차산업의 문제로 국한지어 속단할 때가 아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를 대선 공약 이행이자, 미국 자동차 산업 발전을 위한 기회로 치켜세웠다. 방한한 베리 앵글 GM 총괄부사장은 한국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기업의 잉여자금을 미국 본사에서 다 가져간 후 너덜너덜해진 한국지엠을 살리기 위한 지원금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안 그러면 문 닫을 수 있다고 한다. 문을 닫게 되면 자동차산업의 특성상 수만, 수십만명의 실직자가 발생할 수 있다.

GM의 이런 모습은 낯익다. 영국·벨기에·호주에서 이미 봤던 모습이다.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은 문재인 정부는 난감하다. 6월 지방선거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GM은 절묘했다. 우리 정부가 화끈한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철수는 지역 산업 생태계에 위협요인이다. 우리 정부가 여론에 이끌려 대책도 없이 ‘GM은 떠나거라’라고 큰소리 칠 수 있는 입장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여기에 대다수 언론은 한국지엠의 노조 문제를 들먹거린다. 이번 한국지엠 사태는 노조가 자초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다. 과연 그러한가. 한국지엠 사업보고서를 보면 지난 2016년 기준 매출액(12조2340억원) 대비 총급여비중은 11.4%였다. 국내 1위 자동차업체인 현대자동차는 15.0%였다. 같은 해 한국지엠 매출액 대비 판관비 비중은 11.2%, 현대차는 1.7%. 현대차에 비해 규모가 작은 한국지엠의 판매관리비 비중은 현대차에 비해 10배 수준이다.

한국지엠 관련 자문의견서를 작성한 바 있는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위한종 경영학박사는 “지난 2013년 이후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한국지엠의 재무건전성 악화는 GM이 한국 시장에서 사업철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인위적 부실화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면서 “부채만 남기고 털고 나가려는 전략일 수 있다”고 말했다.

변곡점은 2017년 10월이었다. 지난 2002년 옛 대우차를 인수한 한국지엠은 15년 동안 자산의 20%에 해당하는 지분을 매각할 경우 주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조건에 합의했다. 이 조건에 따라 2대주주인 산업은행이 부평·창원·군산에 분산된 공장 일부를 매각할 경우 비토할 수 있는 권한, 이른바 ‘자산처리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15년이 흘렀다. 조건 만기는 2017년 10월이었다. GM은 수년 전부터 이때를 노린 듯하다. 지난 2013년부터 GM은 한국에서 연구개발비·용역비·기술로열티 등의 명목으로 자금을 회수해갔기 때문이다. 한국지엠은 본사의 무지막지한 자금회수로 적자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GM은 2017년 10월 이후 군산공장 철수를 선언한다. 2대주주인 산업은행은 보유하고 있는 한국지엠 지분 17% 매각에만 골몰했다.

GM은 기다렸다는 듯이 2017년 10월 이후 만성적자인 한국지엠 군산공장 철수를 선언했다. 이제 되돌릴 순 없다.

이에 한국 정부는 ▲최대주주인 GM의 책임 있는 역할 ▲산업은행과 노조를 포함한 이해 당사자들의 고통분담 ▲지속가능한 경영정상화 방안 마련 등 한국지엠 사태 3대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현재 삼일회계법인이 한국지엠에 대한 재무상태 실사를 진행 중이다. 실사를 해야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한지 명확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GM은 한국 정부에 1조원 정도의 지원금을 요청하고 있다.

이제 한국에서 GM을 붙잡을 수 없을 경우에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 지원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은 GM논리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방법은 없는 것인가. 답은 "있다"이다.  우리가 쌓아놓은 수많은 노하우는 이번 한국지엠 사태에 아무런 실력을 발휘할 수 없지 않다.  ‘We Know Solutions(위 노 솔루션)’은 해답을 제시한다. 

기아차 부도 사태와 다르다

1997년 기아차 부도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채권단이 5500억원에 이르는 부채를 회수하면서 부도처리됐고 역사는 기아차 부도를 IMF체제의 도화선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후 한보철강 부도 등 국내 굴지 기업들의 연쇄 부도로 산업 기반이 무너졌다. 당시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300억달러 수준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삼성전자의 연간 순이익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4000억달러에 근접해 있다. 반도체를 비롯해 철강,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이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한국지엠이 아니더라도 현대차와 기아차는 글로벌 자동차시장에서 글로벌 톱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판세를 읽고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일단인 우리를 알아야 한다. 최악의 사태 발생 시 걸림돌은 수십만명에 이르는 한국지엠의 생산직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해결방식으로 노동자들의 실직사태를 어떻게 소화하고 소프트랜딩할 것인지 단계별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할 때다. 미국은 ‘경제는 경제고 안보는 안보다’라는 혈맹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데, 우리만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정도라고 공허한 외침을 할 때가 아니다.

최악이 최선이 됐던 기억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이 처음부터 세계 최강은 아니었다.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도전의식이 얻어낸 결실이다. 세계 2~3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전신이었던 ‘현대전자→LG반도체’를 거치는 동안 폐업 위기 순간은 여러 차례 있었다. 자금력을 갖춘 SK가 인수하면서 하이닉스는 일본의 도시바 주주로 등극하며 반도체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급부상했다.

마침 자동차산업은 세대교체기다. 자동차가 발명된 후 처음으로 인간이 운전하지 않는 자동차, 전기와 수소를 연료로 하는 자동차시대로 전환기에 서 있다.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역동적으로 성장했으나 앞으로 다가올 미래차 시장의 경쟁력에 대해 마음 놓을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GM이 폐쇄 결정을 한 한국지엠 군산공장을 굳이 자동차 생산공장으로 유지할 필요는 없다. GM이 요구하는 지원금 정도라면 얼마든지 군산공장 노동력을 흡수해, 미래차 생산 및 연구개발 단지로 만들 수 있다.

황현일 서울대 사회학과 객원교수는 “GM공장이 철수한 호주 사례를 비춰볼 때 우리도 GM에 퍼주기식 지원보다 한국지엠공장을 전기차 생산기지로 탈바꿈시키는 플랜을 세우고 이에 대한 세부적인 분석이 있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금속노조 발전전략위원회 정주교 전 부위원장은 “전기차 엔진 자체가 내연기관과 비교해 여러모로 다르지만 국내 생산직 노동자들의 기술 수준이라면 단시간 내 실무에 투입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생산시설만 갖춰진다면 GM이 한국에서 떠나도 생산직 노동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GM은 그동안 31개 글로벌 공장을 운영하면서 해외 공장이 있는 정부와 지원금을 놓고 샅바싸움에 익숙해 있다. 지원금이 끊기면 지역을 떠났다.

이코노믹리뷰는 지난 15년간 GM이 한국시장에서 보여 준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우리의 저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객관적으로 짚어봤다. 우리가 일궈낸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 노하우를 복기하면 한국에서 떠나려 하는 GM에 끌려가지 않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코노믹리리뷰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한국경제는 기업과 기업인의 과감한 결단력 ▲세계를 이끄는 문화 리더십 ▲모든 것을 생산할수 있는 하드파워 등 삼박자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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