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한때 ‘문화사대주의(文化事大主義)’라는 말이 많이 회자됐다. 다른 나라의 문화가 자기가 속한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그것을 동경하며, 자기 문화를 낮게 평가하는 태도를 의미했다. 이는 과거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을 한동안 지배한 사고방식이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우리나라 영화는 재미없어”라거나 “팝송을 듣지 가요를 왜 들어?” 혹은 “만화는 일본이 최고지” 등의 말에는 문화사대주의가 녹아 있었다. 지금은 모든 게 180도 바뀌었다. 문화사대 주의는 종말을 고했다. 한국 문화에 전 세계가 감탄하고 열광한다. 세계 도처에서 한류, 한국음악(K-Pop)은 문화선진국 한국을 전 세계에 알리며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자랑하고 있다. 한국문화는 한국의 새로운 캐시카우가 되고 있다. 이런 괄목상대할 변화의 최선봉에는 10년 적자를 감수하고서도 한국문화의 전파에 매진하는 CJ가 자리하고 있다.

▲ KCON 2017 JAPAN 콘서트 현장. 출처= CJ E&M

KCON, 한류로 전 세계 흔들다

2017년 8월 1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대형 박람회장인 스테이플스센터와 LA컨벤션센터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들었다. 박람회장에 모인 약 3만명의 사람들은 무대에 선 가수들을 바라보면서 소리 지르고, 환호하고, 열광했다. 어떤 이들은 기쁨에 못 이겨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행사장에 마련된 모든 체험 부스는 관람객들로 꽉 차서 더 이상 사람을 수용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곳은 다름 아닌 지난해 미국 LA에서 열린 한류 문화축제 ‘케이콘(KCON)’ 현장이었다.

케이콘(K.C.O.N)은 한국(Korea) 문화 콘서트(Concert)의 줄임말이다. 아울러 한국 문화를 향한 팬들의 열정(K-fever), 모든 문화와 연결(Connect), 문화의 지속 가능성(On-going) 그리고 문화의 무한 확장(No-limit)이라는 의미가 각 단어 앞 글자에 담겨있기도 하다. 

케이콘은 한 나라가 자국 문화콘텐츠만으로 구성을 채워 다른 나라에 이를 선보이는 세계 유일의 콘텐츠 축제로, CJ의 콘텐츠 계열사 CJ E&M이 우리나라 대중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기획한 초대형 프로젝트다. 2012년 첫 행사를 열어 지난해로 6년째를 맞았다. 케이콘은 총 56만6000명의 해외 관객들을 불러들였다. 이를 연 평균 약 9만4000명의 관객들을 모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 KCON 2017 NY(뉴욕)의 출연 아티스트들을 기다리고 있는 한류 팬들. 출처= CJ E&M

케이콘도 시작은 미약했다. 지금과 같은 ‘대박’ 이벤트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2012년 캘리포니아 어바인에서 열린 1회 케이콘은 약 10억원의 손실을 내 시작하자마자 행사의 지속을 걱정해야 하는 위기를 맞았다. 행사를 거듭하면서 적자폭은 점차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수익성은 낮았기 때문에 ‘한류 전도사’라는 수식어와 함께 ‘만년 적자사업’이라는 혹평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지난해부터다. 지난해 CJ E&M이 뉴욕 케이콘(6월)과 LA 케이콘(8월)부터 수익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에 글로벌 기업들은 케이콘의 인지도를 활용한 광고 협찬을 시작했다. 글로벌 이커머스 기업 아마존, 미국 최대 통신사 AT&T, 미국 점유율 1위 보험업체 스테이트팜 그리고 세계 2위 자동차 업체인 일본의 토요타를 포함한 19개 글로벌 기업이 케이콘을 자기들의 광고 마케팅에 활용했다.

케이콘 개최를 진두지휘하는 CJ E&M 신형관 음악콘텐츠부문장은 “한류가 가진 매력을 해외 대형 공연장과 박람회장에서 최대한 이끌어내는 게 급선무였다”면서 “해외 진출 초기에는 행사 자체보다는 출연 가수들이 누구인가가 중요했기 때문에 공연 수익성은 높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 부문장은 “행사를 거듭하면서 출연 가수들보다 행사가 더 알려졌고, 가장 큰 규모로 열린 지난해 미국 케이콘이 적자를 벗어나면서 멕시코, 호주 등 다른 지역으로 행사를 확대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케이콘은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확산과 국가 브랜드 가치 제고를 넘어 자력으로 해외 진출이 어려운 중소기업들의 판촉과 수출 상담을 지원하는 역할도 톡톡히 하면서 국가를 대표하는 행사로 거듭나고 있다.

전 세계로 수출되는 우리 ‘방송 프로그램’

미국의 유력 방송사 NBC에서 방영된 여행 예능 프로그램 <Better Late Than Never>는 미국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지난해 두 번째 시즌까지 만들어졌다. 시즌2는 하루 중 TV시청자 수가 가장 많은 프라임타임(오후 8시~11시)에 편성되면서 다시 한 번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인기 프로그램의 ‘방송 포맷’ 원작은 바로 CJ E&M의 오락 채널 tvN이 만든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였다.

이 역시 CJ가 전 세계 시청자들을 타깃으로 기획 프로젝트의 성과다. CJ E&M은 방송 콘텐츠 개발, 형식(포맷)화, 유통 인프라 구축 그리고 해외 수출까지 이르는 모든 업무를 전담하는 조직인 ‘글로벌 콘텐츠 개발팀’을 두고 기획 단계부터 수출을 염두에 둔 방송 프로그램들을 만든다.

▲ <꽃보다 할배>의 미국 리메이크판 美 NBC 출처= CJ E&M

이렇게 제작돼 해외로 수출된 CJ E&M의 방송 콘텐츠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 <너의 목소리가 보여> 그리고 <골든 탬버린>이 있다.

특히 <너의 목소리가 보여>는 중국·루마니아·불가리아·말레이시아·필리핀·태국·인도네시아·캄보디아 등 8개국에 방송 포맷이 수출돼 국내 방송 중 글로벌 포맷 판매 최다 기록을 세웠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 태국판은 현지에서 동시간대 평균 시청률의 두 배에 이르는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100회 이상 방송됐고, 불가리아판은 평균 시청률 30%, 최고 시청률 48%를 돌파하며 국민 예능의 반열에 올랐다. 필리핀에서는 1회부터 최고 시청률 53%를 기록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시즌3가 제작되고 있다.

이 같은 성과에 대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15년 발간한 <방송포맷 수출입 현황조사 연구>에서 “2014년 우리나라의 방송 포맷은 영국, 프랑스, 터키, 네덜란드, 미국 등으로 수출 시장이 확대되기 시작했고 이는 대부분 CJ E&M이 올린 성과”라고 호평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이승희 연구원은 “미국 연예산업의 강한 폐쇄성과 배타성을 감안할 때 CJ E&M이 콘텐츠 포맷으로 해외 시장, 특히 미국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매우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라면서 “CJ E&M은 오랜 기간 협력관계를 유지한 미국 콘텐츠 포맷 제작, 유통사들과 손잡고 미국 진출을 지속 도모했고 일련의 노력들은 큰 성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정윤경 교수는 “CJ E&M의 방송 콘텐츠 포맷은 오랜 노하우 축적으로 우리 콘텐츠들이 가진 문화 차이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면서 “국내 다른 방송사들이 향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 CJ CGV 상하이 베이와이탄 로비. 출처= CJ CGV

해외에 지어지는 우리나라 ‘영화관’

CJ E&M이 한류 공연과 방송 포맷으로 세계 콘텐츠 시장에 진출했다면, CJ의 영화상영 계열사 CJ CGV는 해외에 영화관을 수출하면서 한국 문화도 수출하고 있다. CJ CGV는 지난 2006년부터 해외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2006년 10월 CGV는 중국 상하이에 첫 해외 지점을 낸 이후 미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터키, 러시아 등 해외 극장 시장에 진출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러시아의 부동사 개발업체 ADG 그룹과 조인트벤처 설립 계약을 체결하며 해외 진출 국가를 7개국으로 확대했다.

여기에 CJ CGV는 지난해 12월 중국 상하이 바이위란 광장 ‘CGV상하이 베이와이탄’을 오픈하며 중국에서만 100개의 영화관을 운영하는 업체(1월 11일 기준)가 됐다. 현재 CJ CGV는 국내 145개 극장, 1085개 스크린을 포함해 세계 7개국에 445개 극장, 3346개 스크린(4DX, SCREEN X 등 특별상영관 제외)을 보유한 세계 5위 극장사업자로 등극했다.

CJ CGV 서정 대표이사는 “러시아에는 내년 12월 CGV 이름을 내건 극장이 최소 5개 이상 들어설 예정”이라면서 “2020년에는 모스크바에 총 33개의 극장을 운영해 현지 1위 극장사업자가 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전 세계인들이 우리 문화를 즐기게 하자”

CJ 이재현 회장은 2010년 서울 상암동 CJ E&M 센터 개관식에서 “전 세계인들이 우리 문화를 즐기게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 콘텐츠의 영향력과 경제 파급력을 누구보다 확신한 이 회장의 안목이 담긴 발언이었다. 이는 세계 콘텐츠 시장을 장악한 미국, 일본 등 소위 콘텐츠 강국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각축장에 뛰어들겠다는 선전포고와 다름없었다.

▲ 지난해 CJ의 연례 행사인 ONLYONE 컨퍼런스에 참석한 이재현 회장(사진 가운데). 출처= CJ

이재현 회장은 “전 세계 강대국들이 점유하고 있는 문화 콘텐츠 산업은 우리에게 절대 쉬운 길이 아닐 것”이라면서 “하지만 (우리는) 10년 이상의 적자를 감수할 각오가 돼있고 지금의 투자는 그 이상의 가치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문화의 파급력을 확신한 경영자의 굳건한 의지와 건실한 투자, CJ의 치밀한 전략 등 세 가지 요인이 승수효과를 냈다. 열등의식과 패배주의, 문화사대주의를 차례차례 격파하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국민의 자긍심을 높였으며, 글로벌 관객의 한국 문화에 대한 인식을 뿌리부터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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