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고전 전문가들이 분석한 2009년 리스크 매니지먼트
위기극복의 지혜 ‘simplicity’에 있다
쌍용차가 공장 가동을 중단했으며, 삼성전자가 사상 최초로 분기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기축년 새해가 밝았지만,사방이 온통 잿빛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폭풍에 흔들리는 한국경제호 위기탈출의 묘수는 과연 없는 것일까.
《위대한 기업 로마에서 배운다》의 저자인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사장과, 공맹으로 대표되는 유학에서 법가인 한비자, 그리고 주역까지, 경학과 역사학을 두루 연구해 온 신동준 정경연구소장의 신년 대담을 준비했다. 동서양 고전 전문가들이 분석한 ‘리스크 매니지먼트’의 노하우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편집자 주
발문-냉정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중요합니다. (경영자들은) 자사의 강점과 약점을 냉철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명확히 깨달아야 합니다. 김경준부사장
발문- 생존에 성공한 기업들은 많은 전리품들을 챙기게 되지 않겠습니까. 경쟁사들이 잇달아 무너지고, 평소 탐을 내던 기업들이 헐값에 매물로 나오는 상황을 즐길 수 있게 될 겁니다. 물론 살아남아야 이런 기회들을 잡을 수 있겠죠.
발문-동양에서는 자강불식을 강조했습니다. 그릇의 크기를 꾸준히 키워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자신(그릇 크기)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모든 위기 대응책의 첫걸음이었습니다. 신동준 소장
흉흉한 소식들이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대형 M&A에 성공한 기업들이 금융위기의 후폭풍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김경준 부사장쪾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성장’이 국내기업들의 주요 관심사였어요. 미래의 ‘먹을거리’ 확보라는 과제가 전략 우선순위를 차지했습니다.
불과 한 해가 바뀌었을 뿐이지만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살을 에는 엄동설한에 어떻게 살아남을지가 절체절명의 과제로 부상했습니다.
그렇게 절박합니까.
김경준 부사장쪾삼성전자가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 적자를 예상하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의 GM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자동차 기업에 등극한 일본 도요타자동차도 사상 최초로 적자를 예측하고 있습니다.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초우량기업인 두 회사가 이런 상황인데 하물며 어떤 기업이 위기감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흑자 도산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김경준 부사장쪾제조업체의 매출채권, 그리고 건설업체의 기성고 회수가 늦어질 수 있습니다. 불황기에는 거래 상대방도 지출을 억제합니다. 수천억 원의 장부상 이익이나 자산을 가지고도 수십억 원이 없으면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이 경기침체기의 일반적인 특성입니다.
위기 탈출의 묘수는 없을까요.
김경준 부사장쪾리스크를 정밀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성장·호황기의 리스크와 위기 상황의 리스크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봄날의 아련한 추억을 이제는 잊어야 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내다 팔 수 있던 우량자산도 지금은 매수자를 찾기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위기입니다. 기업인들의 심정은 절박합니다.
한니발에게 패한 로마인들이 아마도 이런 공포감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김경준 부사장쪾이탈리아의 후미진 시골마을 ‘칸나에’에서 하룻밤에 7만명에 달하는 로마군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니발은 적의 주력군을 깊숙이 끌어들여서 포위하는 초승달 진법으로 로마군의 약점을 파고들었죠. 공포는 로마 전역으로 급속도로 퍼져 나갔습니다. 한니발은 전사에서 가장 뛰어난 장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적의 전력을 오판한 것이 패배로 이어지지 않았습니까?
김경준 부사장쪾로마가 당초 파비우스 장군이 택한 전략을 고수했다면 칸나에의 비극도 없었을 겁니다.
당시 그가 구사한 방략이 지연술이었어요. 강력한 적과 정면 대결을 피하고 적을 지치고 피곤하게 만드는 데 주력한 거죠.
로마답게 한판 결투로 승부를 가려야 한다는 민심에 밀려 승부에 나섰다 결국 대패를 하지요.
위기극복의 첫 단추는 무엇이었습니까.
김경준 부사장쪾로마의 지도층은 땅을 제외한 전 재산을 헌납했습니다. 국가존망의 위기를 눈앞에 두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것이었죠. 땅을 제외한 것은 망할 위기에 처한 나라의 땅을 사줄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로마 시민들도 두손 놓고 있지는 않았겠죠.
김경준 부사장쪾로마 시민들은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 국가가 발행한 전쟁채를 사들였습니다.
위기탈출의 동력은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치는 것이었죠. 로마시민들은 전 재산을 나라에 바친 로마 지도층을 신뢰했습니다.
로마인의 국난 극복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김경준 부사장쪾전 유럽이 독일의 포화에 무릎을 꿇고만 순간, 처칠은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렸습니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설득해 대독 항쟁 참여를 이끌어냈습니다. 영국의 힘만으로 독일을 상대할 수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냉정하게 인정한 것입니다. 처칠이 위대한 이유입니다. 로마도 한니발을 정확히 파악한 뒤에야 승기를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금융위기로 급락한 원자재의 손절매 시기를 놓쳐 손실이 커진 대기업들이 꽤 있습니다. 한 치 앞을 못 본거죠.
김경준 부사장쪾원자재를 수입해 국내에서 판매한 업체들은 경기가 좋을 때 반짝 호황을 누렸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후폭풍으로 휘청거리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비단 한두 회사의 사례가 아닙니다.
오를 때 조금씩 번 돈을 순식간에 까먹고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거죠. 원자재 손절매 시기를 놓쳐 손실을 눈덩이처럼 키운 기업이 적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왜 똑똑한 CEO들이 이런 실수를 하는 걸까요.
김경준 부사장쪾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분석을 소개해 보죠. 최고경영자들이 앓는 ‘불치병’이 있습니다.
그들은 불편한 진실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왜 이 지경이 됐는지 자신의 처지에 분노를 터뜨리다 종래에는 체념하고 맙니다. 마지막에는 사태 수습을 포기하는 수순으로 들어가고 말지요. 이러한 시행착오를 줄여야 위기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습니다.
불편한 진실을 수용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건가요. 수양제도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충신들의 고언을 멀리하지 않았습니다.
신동준 소장쪾원소를 격파한 조조는 동오정벌을 반대하는 가후의 제언을 물리칩니다. 그리고 북방군에 불리한 수전에서 동오와 한판 승부를 꾀하다 적벽대전에서 대패를 하고 맙니다.
인재들을 아꼈던 조조마저도 중국 통일의 순간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느끼자 판단이 흔들린거죠. 항상 뛰어난 인재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중소기업 CEO들은 지난해 ‘키코’ 탓에 혼줄이 났습니다. 안개가 자욱해 도통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신동준 소장쪾 청태종이 조선을 침공하던 때를 떠올려보세요. 당시 의주에 임경업이 이끄는 조선 최고의 정규균이 그의 진군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고구려를 친 당태종도 안시성 등에 주둔하는 주력군에 가로막혀서 패퇴하고 말았습니다. 청태종은 의주를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도성으로 직접 쳐들어가지 않습니까. 발상을 살짝 바꿔보는 것도 때로는 유용하다는 뜻입니다.
톰 피터스는 불황을 타개할 생존의 키워드로 ‘간소함(simplicity)’을 강조했습니다만.
김경준 부사장쪾로마 황제들의 실천적인 구호를 돌이켜 보세요. 식량 그리고 안전의 확보입니다. 사업 모델도 단순화해야 하고, 운영구조도 슬림화해야 합니다.
두 가지만 기억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현금, 그리고 위기경영 시스템의 가동입니다. 위기때는 매사에 단순·명료해야 합니다.
SK는 통신·에너지 양대 주력사의 수장을 전격 교체하지 않았습니까. 위기 때 빛을 발하는 인재 유형도 따로 있게 마련인가요.
신동준 소장쪾조조는 인재를 발탁할 때 늘 ‘도수수금’의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형수와 간통을 하고 뇌물을 받은 인물일지라도 오직 능력만 보겠다는 원칙이었습니다.
실제로 자신을 배신한 ‘위충’이라는 인물을 수차례에 걸쳐 용서합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인물의 청탁(淸濁)을 불문하고 재능 있는 자를 과감히 발탁하는 소위 ‘유재시거(惟才是擧)’의 용인술(用人術)이 필요합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표는 반면교사의 사례입니다. 제갈공명이나 방통이 곁에 있어도 못 알아보지 않았습니까.
신동준 소장쪾유표는 학교를 세우고 학문을 장려한 학자 출신이었습니다. 제갈공명이나 방통 등 천하기재를 등용해 힘을 길러야 할 때 그는 주저했습니다. 당시 형주에는 서서, 방통, 제갈공명 등이 모두 난을 피해 와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표는 이들을 발탁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쉽게 무너진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요.
최근 주요 그룹 인사를 보면 새로운 얼굴들이 대거 발탁됐습니다. 한나라의 한신에 비유할 수 있는 인물도 등장하지 않을까요.
신동준 소장쪾전한 말기 수탈에 지친 민초들이 정미의 난을 일으킵니다. 이후 중국 역사에서는 민란이 끊이질 않으며, 민심을 파고드는 비적들이 수없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나라를 창업한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조조는 전쟁터에서도 결코 책을 내려놓지 않는 독서광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합니다. 그래야 오래 갈 수 있어요.
자강불식의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뜻인가요.
신동준 소장쪾뛰어난 장수들은 사람의 본성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인간학의 달인들이었습니다. 손자병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오기병법을 남긴 오기도 병사들과 식사는 물론 행군도 함께하는 장군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성숙하다고 보기 어려웠던 오기는 전승의 요체를 꿰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조조도 비슷합니다. 위기 돌파의 추진력도 결국 사람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5대 10국 시대의 대표적인 난세를 성공적으로 헤쳐나간 풍도가 ‘귀감’이 되지 않겠습니까.
신동준 소장쪾풍도는 5왕조에서 8성(姓)의 11명에 달하는 천자를 잇달아 섬기면서 고위 관리로 30년, 재상으로만 20여년을 지냈습니다. 그는 평생을 두고 정당치 못한 재화는 집안에 쌓아두지 않았습니다. 또한 질박하고 검소한 옷과 음식에 만족했습니다. 특히 공과 사를 엄격히 구별했어요. 관직에 있는 동안 출신 가문을 따지지 않고 재능 있는 사람을 누구보다 아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잠재력을 얼마나 발휘하느냐가 위기 극복의 열쇠라고 진단했는데요.
김경준 부사장쪾위기극복의 잠재력은 누구나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위기 극복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합리적 낙관주의’로 무장하고 생존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위기 국면에서 흔히 저지르기 쉬운 실수의 유형이 있을까요. 일부 재벌그룹은 오너 가문이 경영일선에 대거 전진배치됐습니다만.
신동준 소장쪾명령체계가 이원화되는 일을 막아야 합니다.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확립하지 못하면 패배를 자초하게 됩니다. 장강 하류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손권이 군대를 출정시키면서 여몽을 총사령관에 임명합니다. 그리고 수하에 손씨 일족을 배치하려 합니다. 여몽은 효율적인 작전 수행을 해칠 수 있다며 이 결정을 고사해 결국 양보를 얻어냅니다.
이번 위기의 파장은 얼마나 갈까요. 길고 어두운 터널의 입구에 막 들어선 걸까요.
김경준 부사장쪾위기의 발원지인 미국, 유럽 등이 돈을 풀고 있어 금융 장세는 더 일찍 올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실물 부문의 침체는 2년 정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이번 위기를 지난 1920년대 대공황보다 더 심각하다고 보는 이들도 있더군요. 혹시 이번 위기를 예상했습니까.
김경준 부사장쪾미국발 금융위기는 화산 폭발과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이번 사태가 터진 뒤 위기를 예측했다고 하는 많은 이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불가항력이었다고 봅니다.
관도대전에서 승리한 조조는 결국 아들 대에 가서 중국을 통일합니다. 이번 위기에서 살아남는 기업들은 많은 전리품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섞인 관측도 있습니다만
김경준 부사장쪾경쟁사들이 잇달아 무너지고, 평소 탐을 내던 기업들이 헐값에 매물로 나오는 상황을 즐길 수 있게 될 겁니다. 물론 살아남아야 이런 기회들을 잡을 수 있겠죠.
신 소장은 1997년 외환 위기를 극복한 말레이시아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이번 위기를 바라보는 감회도 남다들 것 같습니다.
신동준 소장쪾미국은 아시아에 자국의 가치를 강요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1997년에도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이겨낸 주역은 아시아적 가치를 중시하던 말레이시아였습니다.
궤도수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이 좀 더 필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이노베이션보다는 자강불식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하시겠군요.
신동준 소장쪾마오쩌둥은 자치통감을 늘 옆에 끼고 다녔습니다. 주변의 의견을 경청하고 살피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정점에 올라서면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주역에서도 ‘항룡유회’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자신의 그릇을 크게 만들면 그 시기도 늦출 수 있습니다. 동양에서 말하는 자강불식의 원리입니다. 주원장은 비적 출신으로 유일하게 창업에 성공한 인물입니다. 그는 탁발승으로 중국을 떠돌며 조변석개하는 민심의 흐름, 세태 등을 꾀고 있었습니다. 주원장과 마오쩌둥 모두 인간학의 고수들이었습니다.
포스코 이구택 회장이 내년 경영전략의 핵심을 ‘서바이벌’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위기의 시대를 이겨내야 하는 국내 경영자들에게 ‘고전’을 한 권씩 추천해 주시죠.
신동준 소장쪾역시 저는 ‘삼국지’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고전은 인간학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을 알기 위해서는 경험의 폭도 넓어야 하겠지만, 독서도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꾸준히 읽어야 합니다.
박영환 기자 (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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