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중국발 공급 과잉과 국내 구조조정 압박 속에서 새로운 성장축을 찾는 가운데, 인도가 글로벌 포트폴리오 재편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는 후보지로 거론된다. 글로벌 인구 대국인 인도는 지속적인 수요 확대가 전망되는 시장으로 특히 고부가·기능성 중심 제품군을 앞세울 경우 한국 기업이 ‘현실적으로 노려볼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새 성장 축 찾아야 하는 석유화학
글로벌 석유화학 산업은 2020년대 들어 중국발 공급 과잉과 경기 둔화 등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했다.
중국은 에틸렌, 프로필렌 등 주요 석유화학 제품 생산설비를 2020년대 초부터 빠르게 확장해 왔다. 대규모 설비 증설로 자급률을 급격하게 끌어올리며 내수 침체에도 저가 물량을 해외 시장에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주요 고객이었던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가격 경쟁과 수익성 악화에 어려움을 겪으며 중국 외 새로운 시장과 공급망 다변화를 모색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여기에 현재 정부와 업계는 국내 나프타분해시설(NCC)을 연간 270~370만톤을 자율 감축키로 했으며 연말까지 구체적 사업재편 계획을 제출하기로 하면서 구조적 다변화는 불가피해졌다.

인도, 고부가 수요 ‘틈새’ 공략 노려 볼 만해
여러 해외 후보지들 가운데 인도가 거론되는 이유는 성장성과 공급 구조, 고부가 수요 등이 맞물려 있다.
2023년부터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 된 인도는 중산층 확대·도시화·자동차·포장재·섬유 중심의 산업 성장으로 PE·PP 등 범용수지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스페셜티·정밀화학 등 고부가 제품군의 의존도도 높아지고 있다.
24일 발간된 KOTRA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폴리에틸렌(PE) 시장은 2025회계연도 기준 약 100억달러에서 2033년 149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인도 정부가 ‘수입 대체’를 기조로 내세우며 내수 생산을 키우고 있어 범용 제품을 단순 수출하는 전략만으로는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으나 반대로 고기능·고성능 등급과 특수 용도의 스페셜티 제품군은 여전히 수입 의존도가 높아 기술력을 갖춘 해외 기업에게 기회 요인이 된다는 분석이다.
한국 석유화학 업계는 이미 고부가 제품을 늘리며 사업 구조 전환에 나섰기 때문에 인도는 공급망 다변화 및 포트폴리오 재편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검토해 볼 만한 시장이라는 평가다. KOTRA는 보고서에서 한국 기업이 저가 경쟁보다 고기능·고부가 제품군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인도 정유·석유화학 산업 구조 변화도 눈 여겨 볼 대목이다. 인도 메이저 정유·석유화학 기업들은 정유-석유화학 통합 모델(O2C) 모델을 강화하며 대규모 설비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성능 필름용 수지, 특수 파이프·케이블용 소재, 자동차·전기전자용 고기능 소재 등 고사양 수요가 늘고 있지만 인도 내 이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생산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KOTRA는 “메탈로센 기반 PE나 이중모드 MDPE(중밀도 폴리에틸렌)와 같이 고성능 등급 및 기능성 제품은 현지 생산이 충분하지 않아 한국 기업 기술 경쟁력이 비교 우위를 가질 수 있다”고 제언했다. 가격 경쟁만으로는 중국·중동 기업과의 싸움이 버거운 만큼 기술·품질·용도 특화로 승부하는 방향이 현실적이라는 의미다.
여기에 인도 정부는 ‘Make In India’ 정책과 함께 석유화학 산업에 향후 10년간 870억달러 이상 대규모 투자를 계획 중이다. 산업단지 지정, 외국인 직접투자(FDI) 100% 허용, 친환경 및 첨단기술 육성 등 다각적 지원책도 마련되고 있다.

규제·인프라 큰 장벽…녹록치 않은 국내 체력도
인도가 성장성이 뚜렷한 시장인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규제 절차의 복잡성, 물류·전력 인프라 미흡, 지역별 편차 등 진출 리스크도 꾸준히 지적된다.
PE 전 품목에 대해 BIS 인증(IS 7328:2020)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기본관세와 사회복지세, 부가가치세 성격의 세금을 합친 실질 세율이 20%대 후반에 이르는 등 통관·세제 부담이 적지 않다. 주(州)별로 규제 환경과 행정 처리 속도가 크게 다른 점도 기업 입장에서는 리스크 요인으로 꼽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인도는 첨단 산업과 의료·IT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이지만 동시에 도로·물류·전력 등 기초 인프라나 행정 시스템은 지역마다 큰 편차가 있다”며 “카스트제도나 고용 관행은 외국 기업의 현지 안착 과정에서 생각보다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도가 어떤 제품을 필요로 하더라도 가격이 싸고 물량이 풍부한 중국산이 먼저 들어갈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고 경고했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 내부 체력도 변수다. 새로운 해외 거점 확보나 고부가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동시에 차입 부담과 투자 여력 한계라는 현실적인 제약도 존재한다.
그는 “수요가 증가하는 나라를 공략해 현지 생산이든 수출이든 판단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지금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투자 여력이 녹록치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인도 시장을 단선적 해법으로 보기보다는 중국·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보완하는 ‘분산 전략의 일부’로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각 나라별 자급률과 수입 의존도, 환경·규제 수준이 모두 다르다”며 “국내 구조조정과 병행해 해외 전략을 짤 때도 각각 지역별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인도 시장은 중국을 대체할 가능성은 있지만 인프라와 제도 리스크가 공존한다”면서도 “다만 중국 의존도를 줄여야 하는 현재 상황에서 생산과 판매 두 측면에서 전략 세분화를 통해 정교하게 공략할 필요는 있는 시장”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