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손을 잡았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와 정부가 최근 당정 협의를 열고 개인형 이동장치(PM) 법 제정을 위한 논의에 착수했다는 소식이다. 최근 인천에서 발생한 10대 무면허 킥보드 사고로 30대 여성이 중태에 빠지는 등 이른바 '킥라니(킥보드+고라니)'로 불리는 PM의 난폭 운전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임계점을 넘었다는 방증이다.
도심의 무법자라는 오명을 쓴 전동 킥보드에 대해 강력한 법적 제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다만 이 시점에서 냉철하게 상황을 직시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옛말처럼, 당장의 여론에 떠밀린 섣부른 규제 일변도의 입법은 이제 막 뿌리내리기 시작한 마이크로 모빌리티 산업 생태계 자체를 고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딴 것 필요없다고?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한번만 돌아보라. PM은 단순한 놀이 기구가 아니다.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퍼스트 마일'과 '라스트 마일'을 연결하는 친환경 교통수단이자 이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수많은 소상공인의 생계가 달린 산업 현장이다. PM 업체에 속한 사람들은 물론, 늦은 시간 대리운전을 하고 돌아오는 지친 운전기사의 발이자 상황이 녹록치않아 배달 오토바이를 구할 수 없는 어느 집 가장의 유일한 희망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시장 억제가 아니라 업계가 제시하는 처절한 '자정 활동'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여 안전과 산업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지혜다. 물론 분노의 감정 이해한다. 킥라니에 대한 환멸도 이해한다. 그러나 지금 단 한번만, 이 지점들만 짚고 넘어가보자.

데이터가 말하는 진실 "공포와 실재의 괴리"
먼저 PM을 둘러싼 공포가 다소 과장되었거나, 혹은 잘못된 타깃을 향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실제로 도로교통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PM의 교통사고 치사율은 1.11%로, 자전거(1.49%)나 원동기(1.73%), 이륜차(1.59%)보다 오히려 낮다. 킥보드가 위험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킥보드만 위험한 것이 아니라, '잘못 타는 행위'가 위험한 것이다.
실제로 업계의 분석에 따르면 킥보드 사망 사고의 80% 이상은 '2인 탑승'에서 발생한다. 그럼에도 현재의 단속 행정은 헬멧 미착용이나 단순 면허 소지 여부에 집중되어 있다. 행정 편의주의적인 접근이다. 정작 생명을 위협하는 2인 탑승이나 신호 위반과 같은 중대 과실에 대한 단속은 미비한 채, 보여주기식 단속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나아가 대중의 분노를 유발하는 난폭 운전의 상당수는 속도 제한(25km/h)이 해제되거나 불법 개조된 '개인 소유 PM'인 경우가 많다. 이런 가운데 25km/h(업계 자율 20km/h 하향 추진) 속도 제한이 걸려 있고 관제 시스템 하에 있는 '공유 PM'이 도매금으로 넘어가 비난을 받고 있다. 경찰청 사고 통계조차 개인 PM과 공유 PM을 구분하지 않아 건전하게 운영되는 공유 PM 업계가 불법 개조 기기들의 사고 책임까지 떠안고 있는 실정이다.
면허 문제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현행법상 PM 이용자는 원동기 면허 이상의 면허를 소지해야 하고 헬멧을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한다. 취지는 좋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전 세계적으로 PM 이용에 면허를 요구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교통 선진국 그 어디에서도 PM 이용에 운전면허를 요구하지 않는다. 자동차나 오토바이의 주행 방법과 확연히 다른 킥보드를 타기 위해 오토바이 면허를 따라는 것은 넌센스다. 오히려 PM 특성에 맞는 안전 교육을 이수하면 이용 자격을 주는 'PM 전용 면허' 혹은 교육 이수증 제도가 훨씬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안전 대책이 될 것이다.
헬맷 문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전거와 속도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안전하게 제어되는 PM 이용자에게만 헬멧 미착용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실제 데이터상으로도 머리 부상보다 팔다리 부상이 더 많다. 공유 킥보드 업체들이 수만 개의 헬멧을 비치해도 위생 문제나 분실로 인해 착용률은 20%를 밑돈다. 법은 지킬 수 있을 때 권위를 갖는다. 사문화된 법 조항으로 범법자를 양산하기보다 자전거처럼 착용을 권고하되, 최고 속도를 현행 25km/h에서 20km/h로 낮추는 등 기기 자체의 안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가상 주차라는 해법
시민들이 PM에 대해 가장 큰 피로감을 느끼는 부분은 바로 '주차'다. 인도 한복판, 점자블록 위, 횡단보도 앞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킥보드는 흉기나 다름없다. 지자체들은 '견인'이라는 강수를 두고 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업체와 수거 업체 간의 갈등만 유발하고 있다.
업계는 '가상 주차(Virtual Parking)' 시스템을 제시하고 있다. 물리적인 거치대를 설치하는 과거의 방식이 아니다. GPS와 IoT(사물인터넷) 기술을 활용해 앱 상에서 지정된 구역에만 반납이 가능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업계, 특히 빔모빌리티와 한국PM산업협회 등은 이미 이 기술을 적용해 보행자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주차 권장 구역'과 절대 주차해서는 안 되는 '주차 금지 구역'을 설정해 운영할 준비를 마쳤다. 물리적 시설물 설치에 드는 막대한 예산을 절감하면서도 도시 미관과 보행 안전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이다.
업계는 이미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 ▲보도 중앙 ▲점자블록 ▲버스 정류장 등 13개 구역을 주차 불가 지역으로 설정하고 이를 어길 시 패널티를 부과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번 PM법 제정은 이러한 업계의 기술적 자정 노력을 법적으로 수용하고, 지자체가 주차 허용 구역을 지정해 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데 방점을 찍어야 한다. 무조건적인 '견인'과 '과태료'보다는 기술을 통한 '유도'가 훨씬 효과적이다.
소상공인과 미래 산업을 위하여
킥라니를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도한 규제는 오히려 방향을 잡지 못하고, 더 큰 혼란과 엇박자만 끌어내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시장에 경고등을 켰다. 2021년 규제 강화 이후 개인형 전동 킥보드 판매량은 70% 가까이 급감했고, 공유 킥보드 이용자 수 역시 반토막이 났다. 윈드, 뉴런, 라임 등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의 갈라파고스 규제를 견디지 못하고 철수했다.
산업의 위축은 단순히 플랫폼 기업의 수익 감소로 끝나지 않는다. 킥보드를 수거하고 충전하며 수리하는 현장의 수많은 운영 인력, 그리고 기기를 배치하고 관리하는 지역 소상공인과 가맹점주들의 생계가 위협받는다. PM 산업은 이제 막 태동하는 미래 모빌리티의 싹이다. 교통 체증을 줄이고 탄소 배출을 억제하는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정말 괜찮은가?
국회와 정부에 제언한다. 이번 PM법 제정이 또 다른 '타다 금지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여론에 편승해 시장을 옥죄는 손쉬운 방법 대신, 업계의 자정 능력을 믿고 기회를 주는 용기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먼저 '가상 주차장' 제도를 전면 도입해야 한다. 물리적 거치대 없이도 질서를 잡을 수 있는 기술을 법제화하여 주차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면허 및 헬멧 규제를 합리화하라. 실효성 없는 오토바이 면허 대신 PM 전용 온라인 교육 이수제를 도입하고, 헬멧은 의무화 대신 속도 제한 강화(20km/h)와 인센티브로 유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단속의 초점을 '생명'으로 옮겨라. 헬멧 미착용 단속보다 사고 치사율의 주범인 2인 탑승과 신호 위반을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범칙금을 대폭 상향해야 한다.
업계 역시 뼈를 깎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가상 주차 기술을 더욱 고도화하고, 난폭 운전자에 대한 자체적인 이용 영구 정지(삼진아웃제) 등을 통해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규제는 산업을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산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물길이어야 한다. PM이 '도로 위 무법자'가 아닌 '스마트 시티의 동반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이번 PM법이 업계의 자정 활동을 지지하고 마이크로 모빌리티 산업의 혁신을 보장하는 디딤돌이 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도 열려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PM법 제정은 쉽지만 파괴적인 길이다. 후련하지만 미래가, 가능성이 없다.
아직 기회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