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포항제철소 제1후판 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는 모습. 사진=포스코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1후판 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는 모습. 사진=포스코

포스코가 녹색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국제 사회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전방위적 탄소 저감 정책을 시행하는 가운데,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17%를 차지하는 철강업 역시 발 맞춰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 역시 2035 NDC(국가 결정 기여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최대 60%로 상향하면서 포스코의 발걸음 역시 분주해지고 있다.

철강, 수소로 만든다

포스코는 ‘2050 탈탄소 로드맵’을 수립하고 이행 중이다. 로드맵에는 원료, 투자, 에너지, 기술 개발 등 다양한 분야의 중장기 전략이 포함된 장기 계획이다.

단기적으로 고로 설비의 효율을 높이고, 수소를 취입하며, 탄소저감형 연·원료를 사용하는 등 석탄 사용량을 줄인다. 중기적으로는 대형 전기로 도입, 탄소 포집 활용 저장 기술(CCUS) 개발 등 실현 가능성이 높은 중간 기술을 적용한다. 장기적으론 수소환원제철 기술 ‘하이렉스(HyREX)’ 개발을 통해 철강 공정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석탄 대신 수소로 친환경 철을 만드는 유동환원로 기반 기술 하이렉스는 탈탄소 로드맵의 중추다.

통상 철광석을 철강으로 만들 때 석탄 연료의 일종인 ‘코크스’와 산화철을 가열해 산소를 제거하는 과정을 거치며, 이때 대량의 탄소가 발생한다. 포스코의 하이렉스는 기존 환원제 역할을 하던 석탄을 물이 전기분해 된 ‘그린 수소’로 대체해 탄소 발생을 없앤다. 전기분해에 사용되는 전기 역시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해 2050년까지 넷-제로(탄소중립)를 달성하는 게 목표다.

현재 포스코는 정부와 협력해 2030년까지 수소환원제철 기술 상용화를 목표로 연구 개발 중이다. 이미 세계 주요 국가들이 자국 철강산업에 수소환원제철 기술 도입을 시도하고 있는 만큼, 시간 싸움이라는 시선이다.

기술 개발, 설비 투자, 원료 구매, 에너지 조달 등 중장기 종합 전략이 포함된 포스코 ‘2050 탈탄소 로드맵’. 사진=2024 포스코홀딩스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기술 개발, 설비 투자, 원료 구매, 에너지 조달 등 중장기 종합 전략이 포함된 포스코 ‘2050 탈탄소 로드맵’. 사진=2024 포스코홀딩스 지속가능경영보고서

하이렉스로 그린스틸 시장 주도권 쥔다

포스코의 하이렉스 기술 개발은 장기적 수출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도 필수적이다. 한국의 최대 철강 수출시장인 유럽연합(EU)에서 본격적으로 철강 관세를 인상하고 환경 규제도 강화할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EU에서 추진 중인 ‘청정 산업 협약’이 대표적이다. 그린스틸 공공조달과 의무 구매 할당 등이 골자다. 기존 그린스틸 사용 기업 대상 보조금 지급 등 간접적으로 그린스틸 사용을 장려하던 정책보다 훨씬 급진적이다. 현지 산업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EU의 장기적 철강 탄소저감 의지가 확고함을 시사한다.

동시에 EU는 탄소 저감을 신경 쓰지 않아 저렴한 외국산 철강이 역내 그린스틸의 가격경쟁력을 해치지 못하게 하려고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했다. 수입 제품에 대해 EU 내 생산 제품과 동일한 수준의 탄소 가격 부담을 부과하는 정책이다. EU 역외에서 생산된 저탄소 제품은 혜택을 받고, 고탄소 제품에는 실질적인 가격 부담이 추가된다. 지난 2023년 10월 도입된 이후 내년 1월 1일부터 정식 시행 예정이다.

EU가 관세조치와 더불어 그린스틸 장려 정책을 펼칠수록 국내 철강사들의 입지는 매년 좁아질 전망이다. CBAM 적용 대상 6개 품목의 대 EU 수출액 중 철강이 차지하는 비율이 90% 이상이기 때문이다.

관세 문제는 개별 기업이 해결할 수 없으나 환경 규제는 다르다. 역내 철강사 보호와 환경 보호를 명목으로 미국보다 더 강력한 그린스틸 장려 정책을 펼치는 유럽인 만큼, 유의미한 수준의 탄소 저감을 달성해야만 한다.

다행히 유럽 철강사들의 수소환원제철 기술과 비교한 하이렉스만의 개성은 뚜렷하다. 포스코가 20년간 독자 개발한 파이넥스(FINEX) 공정의 유동환원 기술을 기반으로 한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기술이기 때문이다. 특히 철강 탈탄소화를 가장 앞장서 실행 중인 유럽 철강사들과 차별성을 지닌다.

유럽권 철강사들은 주로 샤프트환원로 방식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사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철광석을 일정한 크기의 구형으로 가공한 고순도 펠렛(일정 크기로 가공된 철강석)이 필수적이다. 고순도 펠렛의 수요 대비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세계 철광석 물동량의 4% 수준이다.

포스코가 공개한 ‘하이렉스(HyREX)’ 기술을 활용한 철강 생산 단지 조감도. 사진=박상준 이코노믹리뷰 기자
포스코가 공개한 ‘하이렉스(HyREX)’ 기술을 활용한 철강 생산 단지 조감도. 사진=박상준 이코노믹리뷰 기자

반면 포스코가 채택한 유동환원로 기술 기반 하이렉스는 별도의 가공 없이 광산에서 채굴한 가루 상태의 일반 분광을 바로 사용할 수 있어 경제성과 활용성 면에서 우수하다. 주 사용 원료 공급 비중 역시 물동량의 70%를 사용하는 만큼 수급 면에서도 유리하다.

물론 유럽권 국가와 철강사들이 한국보다 더 발빠르게 철강 탈탄소화를 시도해 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후발주자인 만큼 더 효율성이 개선된 기술 개발을 시도할 수 있으며, 기술만 완성된다면 빠르게 글로벌 녹색 철강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으리란 전망이 나온다.

“천천히 확실하게”

관건은 지속적 투자다. 현재까지는 로드맵에 맞춰 차질없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2021년부터 포항제철소 내 수소환원제철 건립을 위한 41만평 규모 용지 조성 인허가 절차에 착수했으며, 2022년에는 파이넥스 설비 설계 기업 ‘프라이메탈스’와 공동 엔지니어링 MOU를 맺기도 했다. 협약을 바탕으로 하이렉스 데모 플랜트의 주요 설비에 대한 공동 설계 중이다. 포항제철소에 연산 30만 톤 규모의 시험 설비 건설을 추진할 예정이다.

2023년에는 포항 기술연구원에 수소 유동환원 실험로를 도입하고, 2024년 1월엔 수소환원제철 개발센터를 개소했다. 같은해 4월엔 시간당 1톤 규모의 ESF(전기용융로) 파일럿 설비를 준공해 첫 출선에 성공했다. 하이렉스 기술 완성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2024년 1월 26일 포스코 수소환원제철 개발센터 개소식에서 관계자들이 현판을 제막하고 있다. 사진=포스코
2024년 1월 26일 포스코 수소환원제철 개발센터 개소식에서 관계자들이 현판을 제막하고 있다. 사진=포스코

정부 차원 지속적 지원과 국제 사회와의 공조도 중요하다. 철강업의 흥망성쇄는 국가 안보와 경제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현재 수소환원제철은 지난해부터 국가 전략기술로 선정돼 정부 ‘글로벌 R&D 플래그십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포스코 역시 이런 국책 과제와 연계해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실증사업’을 준비 중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국회에서는 여야가 공동으로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와 그린스틸 전환을 위한 ‘K스틸법’을 발의했다. 더불어 지난 6월엔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실증 기술 개발 사업에 국비 3088억원 투입안이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가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하이렉스 기술 개발에 속도가 붙으리란 기대감이 생긴다.

물론 포스코는 대량의 온실가스를 생산 중이다. 일부 환경단체들로부터는 ‘기후 악당’이라는 소리마저 듣기도 한다. 하지만 꾸준한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를 통해 탈탄소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도 확실한 사실이다. 포스코의 탄소 저감 로드맵이 효과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지속적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