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핀테크 업체들 사이에서 얼굴 결제 트렌드가 강해지고 있다. 새로운 기술 결제 방식에 대한 시도는 옳고, 또 다양한 가능성 타진에 도움이 된다. 큰 틀에서 국내 핀테크 업계 전반의 성장에 기대가 커지는 이유다.

다만, 돌아볼 구석도 분명히 있다.

사진=갈무리
사진=갈무리

"섬뜩한 편리함"
지난 8일과 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홀. 빌리프랩 소속 걸그룹 아일릿(ILLIT)의 앙코르 콘서트 현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다만 입장 풍경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젊은 팬들은 티켓이나 신분증 대신 '얼굴'을 단말기에 비추며 공연장에 입장했기 때문이다. 놀유니버스, 하이브, 토스가 손잡고 도입한 '얼굴패스' 시스템 덕분이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안면 및 홍채인식 결제와 비슷하다. 본인 인증 절차가 간소화되고 암표 거래를 막겠다는 명분 아래 얼굴 인식이 곧 입장권이 되는 시대가 열리는 중이다.

편의성은 분명 향상된 측면이 있었다. 공연장 관계자는 "입장 대기시간 단축과 신분 확인 절차 간소화에 대한 긍정적 반응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지갑 없이, 스마트폰 없이 맨 얼굴로 물건을 사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페이스(Face) 결제 시대가 성큼 다가선 것처럼 보였다. 

당장 토스의 '페이스페이'는 출시 두 달여 만에 누적 가입자 100만 명을 돌파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과시하였고, 네이버페이 역시 안면인식 기능을 탑재한 오프라인 단말기를 내놓으며 오프라인 결제 시장에 승부수를 던진 상태이다.

문제는 그 편리함의 이면이다. "과연 이 방식이 언제나 옳을까?"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굳건해 보이던 예언 시스템에도 결함은 있었다. 그것을 외면할수록 우리는 더욱 큰 수렁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얼굴 결제도 마찬가지다. 선진화된 최고의 결제 시스템이라는 찬사 아래에 흐르고 있는 공포. 바로 '개인 생체 정보의 프라이버시 문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다시 공연장으로 가보자. 아일릿 공연의 얼굴패스 시스템은 서비스 탈퇴 후에도 동일인 대조 목적으로 1년간 얼굴 정보를 보관한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 정보는 이용자가 인지하기 어려운 핀테크 기업 토스의 서버에 저장되는 구조다. 개인 생체 정보의 프라이버시 문제가 불거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된 부분이다. 당시 "개인의 생체 정보는 매우 민감한 정보인데, 이용자가 놀티켓이나 하이브도 아닌 토스에 자신의 얼굴이 보관될 거라는 인식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특히 청소년들의 얼굴 데이터가 보호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비판까지 더해졌다.

토스는 '부정 이용 방지'와 '민원 대응'을 이유로 1년 보관을 고수하나 팬들 사이에서는 "시간이 걸려도 얼굴 등록을 안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는 불안감도 여전하다. 실제로 얼굴패스 도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X(구 트위터) 등에서는 프리미엄 가격을 붙여 티켓을 파는 글들이 넘쳐나 암표 근절 실효성마저 커지고 있다. 

물론 훌륭한 기술이지만, 항상 생각해야 한다 "그림자는 있다"

가수 아일릿. 사진=연합뉴스
가수 아일릿. 사진=연합뉴스

미·중, 프라이버시 우려에 손바닥으로 급선회
글로벌 트렌드는 어떨까?

흥미롭게도 중국과 미국, 두 거대 시장의 기술 공룡들은 얼굴에서 손바닥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시키는 중이다. 실제로 중국 시가총액 1위인 텐센트는 팜페이먼트를, 미국 아마존은 아마존 원을 통해 손바닥 결제를 선도하고 나섰다. 중국 선전의 편의점에서 손바닥을 단말기에 올린 지 단 2초 만에 결제가 완료되는 모습은 이미 마법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미국과 중국이 얼굴 결제 대신 손바닥 결제에 주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정확도와 프라이버시의 균형이다.

아마존은 "손바닥 인식이 얼굴 인식보다 1000배, 홍채 인식보다는 100배 더 정확하다"고 강조한다. 수십만 명이 수백만 번 인식시키는 동안 오류가 없었다는 보고도 있다. 게다가 휴대폰이나 워치 등 기기를 꺼내지 않아도 되니 결제 시 소요되는 10초가량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압도적 편의성을 제공한다.

여기에 더 중요한 대목이 있다. 바로 얼굴은 동의 없이도 인식될 수 있으나, 손바닥은 손을 뻗는 능동적인 의사 표현이 필수라는 점.

이는 생체 정보 제공에 대한 이용자의 심리적 거부감을 크게 낮추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아마존은 손바닥 이미지가 아닌 암호화된 전자 서명만을 저장하며, 유출 시 재발급도 가능하다고 주장하여 보안 우려까지 해소하려는 노력을 병행한다.

사진=네이버페이
사진=네이버페이

K핀테크의 갈라파고스 우려, 과거의 전철을 밟나
세계 생체 인식 시장 규모는 2026년 7700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중심에서 텐센트는 손바닥 결제의 '세계 진출'을 선언했으며 아마존은 앱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손바닥 등록이 가능하도록 공격적으로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글로벌 결제 환경의 표준이 '손바닥'으로 향하고 있는 명백한 흐름이 감지되는 것이다.

다만 한국의 상황은 이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프라이버시 우려가 끊이지 않는 '얼굴 결제'에만 공격적으로 경쟁하며 투자를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결제 환경에서 고립되는 '갈라파고스' 공포가 커질 수 밖에 없다.

묘한 기시감이 부상한다.

과거 악명 높았던 공인인증서는 국내 온라인 커머스 시장이 글로벌로 확장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국내 사용자에게는 익숙했을지 몰라도, 해외 이용자에게는 복잡하고 불필요한 장벽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혹시 한국의 은행이나 상점들은 소비자가 돈을 쓰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아닐까?" 처음으로 한국에 온 외국인 친구가 한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어떨까? 상황은 많이 좋아졌지만 다소 희한하게 틈이 벌어져 있다. 특히 아직도 국내의 많은 카드 단말기는 글로벌 표준인 QR(Quick Response) 코드와 NFC(Near Field Communication)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아 중국, 동남아, 유럽, 미주 관광객에게 결제 불편을 안기고 있다. 한류 덕분에 한국 방문객은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이러한 결제 인프라의 불일치는 외국인은 물론 글로벌 트렌드에서 멀어져가는 한국인들에게도 문제다.

여기서 한번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생체 인증 결제 글로벌 시장에 확실한 표준이 결정되지 않은 지금 "프라이버시 리스크가 높은 얼굴 결제를 확산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가?"

결제 인프라는 한번 구축되면 쉽게 바꾸기 어렵다. 그 생태계에는 간편결제사(네카토)뿐 아니라 카드사, 밴사(VAN), PG사(Payment Gateway), 시스템 대행사, 포스사, 키오스크 업체까지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의 방향성이 과연 옳을지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속도전도 좋지만 한번 가면 돌아오기 힘드니 정말 그 길이 맞는지, 혹은 다른 길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AI, 스테이블코인 등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는 이 변혁의 시기에 단 한 번의 선택은 10년을 넘어 20년, 30년의 미래를 좌우한다. 그리고 편리함이라는 환상에 매몰되어 글로벌 흐름과 이용자의 프라이버시 우려를 외면하고 '얼굴 결제'에만 올인하는 K핀테크의 행보는 위험천만한 도박일 수 있다. 정부와 업계는 잠시 멈춰 서야 한다. 그리고 단지 편리한 것을 넘어 '안전하고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는' 결제 인프라가 무엇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