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관 부회장. 사진=한화
김동관 부회장. 사진=한화

2025년은 미국발 무역 전쟁이 글로벌 통상 환경을 뒤흔든 한 해다. 각국에 관세 폭탄이 떨어지면서 저마다 미국과 협상에 애를 먹었다. 한국 역시 다양한 미국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 ‘MASGA(마스가)’등 다양한 카드를 내세우며 무역 패널티를 최소화 하는 데에 집중했다.

한화그룹이 한미 양국의 ‘키 포인트’로 급부상했다. 방위산업과 조선업 양면에서 업계 1, 2위를 다투고 있는 만큼 미국과의 안보·마스가 협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자연스레 지금의 방산-조선 중심 전략을 구상하고 추진한 김동관 부회장의 리더십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그룹 승계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든 만큼, 본격 3세 경영을 시작하는 한화가 마스가 시대의 선두 주자가 될 수 있을지 주목받는다.

미래 내다본 방산·조선 ‘베팅’…승부수 통했다

김동관 부회장은 2010년대 들어 한화그룹 경영에 본격 참여했다. 2014년 삼성의 방산과 화학 부문을 인수하는 ‘빅딜’을 성사시키며 경영 능력을 입증하기 시작했다. 당시 인수한 삼성 방산 부문 삼성 테크윈과 삼성 탈레스는 현재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의 뿌리가 됐다. 이후 한화 방산 계열사들은 K9 자주포 폴란드 대규모 수출과 전투기 엔진 국산화 사업, AESA 레이더 개발 등 대한민국 방위산업계에서 굵직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에너지 부문 경영을 담당하며 글로벌 태양광 사업 확장을 주도했고,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후에는 그룹 내 미래 전략 산업인 우주·방산·조선 전반을 총괄 중이다. 특히 2023년 상반기 성사시킨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가 결정적이었다. 세계 수위권을 다투는 조선 능력을 보유했음에도 경영 불안정성 때문에 발전이 지체됐던 대우조선해양을 과감히 인수한 것이다.

한화오션은 인수 초기까지는 과거 불황 여파에 시달리며 고전했으나, 이내 조선업이 호황기에 접어들고 그룹 차원 대규모 투자까지 더해지며 완연한 상승세로 접어들었다. 더불어 잠수함과 수상함 등 그룹 특수선 사업에도 9000억원을 투자하는 등 방산 부문과 연계 강화도 추진했다. 그 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한화오션으로 이어지는 육해공 통합 방위산업 기업이 완성됐다. 일찍이 방산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본 김 부회장의 승부수가 통했다는 평가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사진= 한화그룹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사진= 한화그룹

MASGA 중심 된 한화…‘수출 해결사’ 등극

승부수는 최근 미국과 무역 협상에서 주목 받았다. 비단 그룹 방산업을 키우는 데에서 만족하지 않고, 시장 확장까지 일찍이 시도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국 필리조선소 인수가 있다.

필리조선소는 미국 필라델피아 현지 조선소다. 미국의 배는 미국 현지에서만 건조하도록 하는 존스법에서 자유로우나, 설비 노화와 건조 경쟁력 상실로 현재로써는 유명무실한 존재였다.

한화그룹은 이런 필리조선소를 김 부회장 주도로 과감히 인수했다. 인수액은 1000억원 수준이었는데, 현재 LNG운반선 한 척당 3600억원을 호가하는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저렴한 금액이다. 실제로 단기적으론 아무 수익도 창출할 수 없는 조선소기 때문이다.

다만 김 부회장이 주목한 것은 ‘현지 거점’으로서의 상징성이다. 중국과 남중국해 장악력 등 해상 패권다툼을 벌여야 하는 미국이 정작 자국 조선업의 끝없는 쇠락으로 선박 건조 능력을 상실했음을 꿰뚫어 봤다. 미국으로서도 조선업 재건을 위해 향후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에 손을 내밀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현지 거점 유무와 현지 선박 건조 가능성이 큰 영향을 미치리라 내다본 셈이다.

김동관 한화 부회장과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현지 한화 필리조선소에서 내빈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한화 
김동관 한화 부회장과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현지 한화 필리조선소에서 내빈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한화 

이후 도널드 트럼프 2기 정권이 들어서면서 김 부회장의 노림수는 정확히 들어맞았다. 미국이 공개적으로 한국과 조선업 협력을 언급하고, 한국도 미국의 관세 폭탄 해법으로 마스가 프로젝트를 꺼내들었다. 이 과정에서 양국 협상 타결의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한화 필리조선소라는 평가다. 미국의 적성국인 중국에서도 한화오션 미국 자회사 5곳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는 등 한화와 김 부회장의 현지 거점 확보 전략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10월 29일 경주 APEC 계기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됐다. 이중 우리 정부와 기업은 1500억 달러를 마스가 프로젝트에 투자한다. 주목할 점은 기업 주도로 추진되며, 선박금융 등 보증을 포함한다는 점이다. 한화로서는 미국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상선-특수선 시장 선두 주자가 될 수 있는 기회다.

김 부회장은 지난 8월 이재명 대통령과 조쉬 샤피로 미국 펜실베니아 주지사 앞에서 필리조선소에 50억달러(약 7조원) 규모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한미 양국 조선 산업 부흥의 비전에 따라 미국 내 파트너와 함께 새로운 투자와 기회를 창출하고,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데 중추적 역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향후 김 부회장의 행보는 대한민국 핵심 산업 수출 전선과 걸음을 함께할 전망이다. 직접 ‘찾아가는’ 세일즈에 적극적인 CEO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폴란드에선 안제이 두다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나 장보고3 잠수함 등 주요 무기체계를 홍보하기도 했고, 마스가 협상에서는 꾸준한 방미와 현장 투자 발표로 미국의 마음을 움직였다.

11월 19일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UAE 방문에 함께했다. ‘한·UAE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RT)’에 참석해 방산과 에너지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김 부회장의 한화가 정부의 ‘수출 해결사’로 올라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