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시장의 근본적인 변혁이 시작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에서 11일(현지시간) 열린 스냅드래곤 X 시리즈 아키텍처 딥다이브 2025 행사에서 새로운 PC 패러다임이 베일을 벗었다. 시장의 오랜 패권을 쥐고 있던 기존 강자들에게 모바일 거인 퀄컴이 본격적인 도전장을 내밀며 모바일 DNA에서 시작된 PC 로드맵이 탄력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대에 오른 케다르 콘답(Kedar Kondap) 퀄컴 수석 부사장 겸 컴퓨트/게이밍 본부장은 퀄컴이 PC 시장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핵심은 40년의 기술 유산과 이종 컴퓨팅 아키텍처다. 기존 PC 시장의 문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퀄컴이 가장 잘하는 모바일의 방식으로 PC 생태계 자체를 재정의한다는 전략이다. 퀄컴이 축적된 기술로 기술 기업의 정체성을 바로세운 후 아름다운 오케스트라로 모바일의 속도에 걸맞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연주하는 순간이다.

사진=최진홍 기자
사진=최진홍 기자

통신 회사에서 '기술' 회사로
콘답 수석 부사장은 올해가 퀄컴 창립 40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을 강조하며 발표를 시작했다. 퀄컴의 기술력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다.

그는 퀄컴의 시작에 대해 "모뎀 회사, 즉 통신 회사였다"라면서 "지난 40년간 퀄컴은 모뎀·통신 회사로 출발해 전 세계 모든 소비자가 무선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목표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기술을 중심에 둔 퀄컴 DNA가 지난 40년간 모든 혁신의 중심에 있었다는 설명도 나왔다. 실제로 콘답 수석 부사장은 퀄컴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며 "퀄컴은 모뎀에서 스마트폰으로 영역을 꾸준히 확장해왔으며,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항상 핵심 기술과 혁신을 소비자 경험의 중심에 뒀다"며 "특히 강력한 성능과 저전력 설계, 끊김 없는 연결성을 하나의 작은 칩(SoC)에 집약시키는 기술력은 퀄컴의 독보적인 영역"이라고 말했다.

퀄컴은 그 성공 방정식을 PC 시장에 그대로 이식하려 하고 있다. 콘답 수석 부사장은 "AI와 함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바로 지금이 변화의 시기라고 믿는다"면서 "PC 시장이 AI라는 거대한 변곡점을 맞이한 현재 퀄컴의 역할도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퀄컴은 AI라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며 기술 전환의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수십 년간 정체되어 있던 PC 시장에 '온디바이스 AI'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고, 모바일과 AI 기술에 가장 깊은 이해를 가진 퀄컴이야말로 이 변혁을 이끌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우리는 근본적으로 기술 회사"
퀄컴이 제시하는 '변화'의 실체는 퀄컴의 정체성에 있다. 바로 근본적으로 기술 회사라는 정체성이다.

그는 "퀄컴은 제품을 설계할 때 CPU, GPU, NPU 등을 포함한 모든 의사결정의 중심에 항상 '소비자에게 기술적 이점을 제공하는가'라는 질문을 둔다"면서 "스스로를 CPU 회사나 GPU 회사로 규정하지 않는다. CPU, GPU, NPU(신경망처리장치) 등 개별 구성 요소를 만드는 것을 넘어 이 모든 것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사용자에게 최고의 '기술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지구상의 모든 소비자에게 기술과 이점을 제공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뜻이다. 기존 PC 업계의 성능 숫자 경쟁과는 궤을 달리하는 접근법이다. 소비자가 실제로 체감하는 경험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얼마나 배터리가 오래가는지, 얼마나 빠르고 끊김 없이 연결되는지, AI 기능이 얼마나 매끄럽게 작동하는지가 퀄컴에게는 가장 중요한 척도라는 것이다.

퀄컴이 수십 년간 모바일 시장에서 생존하며 체득한 철학이기도 하다. 실제로 스마트폰 사용자는 복잡한 기술 사양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잘 작동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퀄컴은 이 '보이지 않는 기술'을 구현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자랑한다는 것이 콘답 수석 부사장의 행간이다. 

그는 소비자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퀄컴의 보이지 않는 혁신을 설명하기 위해 GPS를 예로 들었다. 그는 "10~15년 전만 해도 도심 한가운데에 들어가면 GPS가 끊기는 경우가 흔했으나 이젠 그렇지 않다"면서 퀄컴 엔지니어들이 다양한 위성을 통해 삼각 측량을 개선해왔기 때문이며, 미국 GPS뿐 아니라 전 세계 위성망과 연동하면서 심지어 와이파이 신호까지 활용해 위치를 보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핵심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혁신이다. 실제로 그는 "(GPS 등을 편리하게 쓰는)소비자들이 막상 자신들이 잘 모르는 배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굳이 이해할 필요가 없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버(Uber)나 올라(Ola) 운전기사들은 퀄컴이 어떤 복잡한 기술을 쓰는지 알 필요가 없다. 그저 앱을 켰을 때 즉각적으로 정확한 위치가 잡히면 그만이다. 퀄컴은 이처럼 '당연하게' 느껴지는 매끄러운 경험 뒤에 숨겨진 복잡한 엔지니어링을 담당하며, 이것이 곧 기술 회사로서의 정체성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PC의 핵심 과제인 배터리 수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먼저 퀄컴이 태생부터 모바일에서 시작, 소위 이동성(mobility)을 전제로 설계된 기기들을 다뤄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콘답 수석 부사장은 퀄컴 아키텍처의 핵심 목표가 "가장 낮은 배터리 소모, 즉 가능한 최고의 배터리 수명 영향으로 최고의 성능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설계하는 모든 아키텍처는 휴대성을 유지하면서 최고의 성능과 최적의 배터리 효율을 동시에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는 뜻이다. 

기존 PC 시장의 딜레마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선언이다. 지금까지의 노트북은 '고성능'을 원하면 전원을 연결해야 했고 '오래가는 배터리'를 원하면 성능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퀄컴은 스마트폰에서 그랬듯, 이 두 가지 상충되는 가치를 모두 달성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콘센트에 연결되어 있든, 이동 중이든 상관없이 일관된 최고 성능을 발휘하면서도 며칠씩 가는 배터리 수명을 제공하는 '욕심쟁이'라는 뜻이다. 다만 이 '보이지 않는 욕심'이 바로 퀄컴의 정체성이며, 또 퀄컴이 그리는 '진짜' 모바일 PC의 모습이다.

이러한 혁신은 멀티미디어 영역에서도 이어진다. 콘답 수석 부사장은 "오늘날 DSLR이 스마트폰 카메라로 상당 부분 대체되는 것에는 스마트폰 카메라 경험을 최적화하기 위해 퀄컴 엔지니어들이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만들어 가는 PC 또한 예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스냅드래곤X2가 탑재된 노트북. 사진=최진홍 기자
스냅드래곤X2가 탑재된 노트북. 사진=최진홍 기자

이종 아키텍처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교향곡
퀄컴의 비밀 병기는 바로 이종 아키텍처(heterogeneous architecture)다. 이종 아키텍처란 하나의 거대한 범용 프로세서(CPU)가 모든 작업을 처리하는 전통적인 방식(동종 아키텍처)과 달리 각기 다른 작업에 특화된 전용 프로세서(코어)들을 하나의 칩에 통합하는 방식이다.

그는 "퀄컴은 카메라 전용 ISP(이미지처리장치) 코어, 고성능 CPU, 아드레노 GPU, 그리고 센싱 허브 내부의 초저전력 NPU에 이르기까지 각 기능에 최적화된 전용 코어를 설계해왔다"면서 "일반적인 연산은 고성능 CPU(Oryon)가, 복잡한 그래픽 작업은 전용 GPU(Adreno)가, AI 연산은 NPU(Hexagon)가, 카메라 이미지 처리는 ISP(Spectra)가 나눠 맡는 식으로 작동시키는 중"이라고 말했다.

마치 잘 훈련된 오케스트라와 같다. 모든 악기(코어)가 각자의 역할에 최적화되어 지휘자(시스템)의 통제하에 가장 효율적으로 아름다운 음악(사용자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종 아키텍처의 정수다.

콘답 수석 부사장은 화상 회의를 예로 들며 이 아키텍처의 장점을 쉽게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전통적인 PC라면 화상 회의 중 음성을 처리하기 위해 고성능의 메인 CPU를 깨워야 하지만 이는 모기 한 마리를 잡기 위해 거대한 대포를 쏘는 것과 같아 엄청난 전력 낭비를 유발한다"면서 "퀄컴의 방식은 다르다. 상시 작동하는 초저전력 센싱 허브 내의 작은 NPU가 음성 인식 같은 간단한 작업을 전담하기에 메인 CPU는 잠들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므로 전력 소모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콘답 수석 부사장이 "작고 사소하며 미묘한 것들"이라고 표현한 이러한 설계 철학의 차이가 모여, 경쟁사 시스템 대비 압도적인 배터리 효율을 만들어낸다는 설명이다.

스냅드래곤 X2. 사진=퀄컴
스냅드래곤 X2. 사진=퀄컴

18개월 만의 시장 재편
강력한 하나의 기술 아키텍처를 바탕으로 퀄컴은 전 세계 음악 시장을 장악해나가고 있다. 콘답 수석 부사장은 "퀄컴이 모바일에서 쌓은 근본적 기술과 아키텍처를 다양한 제품군에 확장해왔다"면서 "모뎀에서 시작해 스마트폰, 히어러블·웨어러블, PC, 태블릿, XR, IoT, 자동차 분야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기반 기술과 아키텍처'가 전체 디바이스 경험을 연결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PC 시장 진출의 속도다.

콘답 수석 부사장은 "오랜 시간처럼 느껴지실 수 있지만, 스냅드래곤 X 시리즈를 첫 출시한 지 약 18개월에서 20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면서 "첫 번째 스냅드래곤 X 엘리트 발표가 2024년 6월이었고, 같은 해 9월에 X 플러스를 발표했으며, 이 칩을 탑재한 기기들은 작년 4분기에 출시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초 CES에서 새로운 X 시리즈를 발표했고 관련 기기들은 1분기 말 시장에 출시됐다. 그리고 불과 몇 달 만인 9월, 퀄컴은 X2 엘리트와 X2 엘리트 익스트림 에디션을 발표했다.

수십 년간 소수의 업체가 지배해 온 레거시 PC 시장의 시간 흐름과는 완전히 다른 모바일 속도전이다. 오케스트라에서 독일 제국군의 전격전이 펼쳐지는 순간이다. 이는 퀄컴의 아키텍처가 그만큼 유연하고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평가다.

마지막으로 그는 "기술과 혁신을 바탕으로 PC 시장을 재편하려는 퀄컴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라며 "우리가 어떻게 경쟁사를 압도할 수 있는 지에대한 질문은 '어떻게' 그리고 '왜'가 중요하며, 이제 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