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은행에서 시민이 대출창구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한 은행에서 시민이 대출창구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신용점수가 높은 대출자가 오히려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하는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저신용·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금융지원이 확대된 데 따른 결과다.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을 돕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시각과, 성실히 상환해온 금융소비자에게는 역차별이라는 불만이 엇갈리고 있다. 정부가 '금융계급제'라는 표현까지 꺼내면서 논란은 더 커질 전망이다.

신용점수별 금리 역전 현상 사진=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 화면 캡쳐
신용점수별 금리 역전 현상 사진=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 화면 캡쳐

신용 600~650점 금리 5.13%…600점 이하 4.73% 

17일 은행연합회 신용평가사(CB) 신용점수별 금리 통계에 따르면 일부 은행의 9월 신규 가계대출 평균 금리에서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NH농협은행의 경우 신용점수 601∼650점 대출자의 평균 금리는 연 6.19%로, 오히려 600점 이하 대출자(5.98%)보다 더 높았다. 

은행연합회 기준에서 600점 이하는 가장 낮은 신용구간이고 601∼650점은 그보다 한 단계 높은 구간임에도 불구하고 뒤바뀐 것이다.

신한은행도 601~650점 금리(7.72%)가 600점 이하(7.49%)를 웃돌았고, IBK기업은행에서도 601~650점(5.13%)이 600점 이하(4.73%)보다 높게 나타났다.

금리 역전의 배경으로는 은행들이 추진 중인 '포용 금융', '상생 금융' 정책이 꼽힌다. 취약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특정 상품 금리를 일괄적으로 낮추면서 통계상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KB국민은행은 최저 10.5%였던 서민금융 상품 'KB 새희망홀씨Ⅱ' 금리를 9.5%로 1%포인트(p) 내렸고, 가계 채무조정 제도에 따라 △신용대출 장기분할상환 전환 △채무조정 프로그램(신용대출) △휴·폐업 개인사업자 신용대출 △KB 개인사업자 리스타트 대출의 신규 금리도 일괄적으로 13%에서 9.5%로 인하했다.

'저소득=저신용'?…무차별 포용금융에 시장 혼란

은행권은 이번 금리 역전 현상이 단기간의 특수 상황에 그치지 않고, 상당 기간 이어지거나 역전의 폭과 범위가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지난 13일 이재명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금융을 6대 개혁 과제로 지목하며 "가난한 사람이 더 비싼 이자를 부담하는 금융 계급제가 된 것 아니냐"고 비판한 발언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통령의 '금융 계급' 언급 이후 은행권에서는 관련 논란이 빠르게 확산되는 분위기다.

은행권에서는 신용 위험에 따른 금리 차등은 금융시장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인데, 이를 인위적으로 조정할 경우 시장의 위험 평가 기능과 경쟁 체계가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와 함께 저신용자 금리 인하 압박이 커지면 은행이 기존 이익만으로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결국 고신용자 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부담을 전가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저소득'과 '저신용' 개념이 혼용되면서 시장 혼란을 부추긴다는 불만도 있다. 소득이 낮은 대출자를 지원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금융거래 이력에 기반한 저신용자를 무차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은행권은 신용평가가 신상정보, 은행 거래내역, 대출·연체 정보, 카드 사용 등 '금융거래 성실성'에 초점을 두고 이뤄지는 만큼, 대출자의 소득은 신용점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소득은 신용점수보다 대출 한도 결정에 더 큰 영향을 주고 있으며 신용 평가는 부도 위험과 거래 성실성 중심으로 산정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에도 "고신용자는 저금리·고액·장기 대출을 받지만, 저신용자는 고금리에 소액·단기 대출만 가능해 사실상 죽을 지경"이라며 "가장 잔인한 영역이 금융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