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각진 산림치유지도사 l 삼성, 한솔 등에서 삼십여 년 생활 후, 제 2 인생으로 숲에 가까이를 택해 2022년부터 산림치유사로 일하고 있다. 중장년 동년배와 소통하는 일에 관심을 쏟고 있다. 2016년부터 오화통이라는 칼럼, 2017년부터는 본지에 중년톡‘ 뒤돌아보는 시선’을 6년간 연재했고, 2023년부터는 ‘숲에서 만난 생각들’이라는 칼럼을 써오고 있다. 저서로 일상의 따듯함을 다룬 산문집 '사는 기분'이 있다.
오각진 산림치유지도사 l 삼성, 한솔 등에서 삼십여 년 생활 후, 제 2 인생으로 숲에 가까이를 택해 2022년부터 산림치유사로 일하고 있다. 중장년 동년배와 소통하는 일에 관심을 쏟고 있다. 2016년부터 오화통이라는 칼럼, 2017년부터는 본지에 중년톡‘ 뒤돌아보는 시선’을 6년간 연재했고, 2023년부터는 ‘숲에서 만난 생각들’이라는 칼럼을 써오고 있다. 저서로 일상의 따듯함을 다룬 산문집 '사는 기분'이 있다.

‘수목원은 연중 어느 계절이 가장 좋은가요?’ 2년여 근무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입니다. 그때마다 바로 답을 하지 않고 수목원을 둘러보고 마칠 때쯤 같이 얘기 나누기로 미룹니다. 그럼에도 바로 ‘나 자신은 어느 계절이 가장 좋지? ’라고 자문해봅니다.

봄은 어떨까? 화려하게 꽃이 피는 계절, 그래서 누군가는 아무리 유명한 꽃 그림이라 해도 실제로 꽃을 보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단정해 애기도 합니다. 나 개인적으로는 봄을 생각하면 꽃에 대한 감동보다 긴 겨울을 무사히 건너고 죽어 보였던 가지에 난 새잎이 주는 감동이 큽니다. 나이 들었음일까요?

여름은 어떨까?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가장 왕성하게 살아있음을 뽐내는 계절, 나무나 숲의 기운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갑자기 쏟아진 여름 소낙비에 숲속에 있는 정자에 갇혀 소낙비를 바라보고, 소낙비 소리를 듣던 장면이 오래 남아있습니다.

가을은 어떨까요? 햇빛에 반짝이는 단풍잎들이 꽃보다 예뻐 보이는 계절입니다. 까뮈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을 제2의 봄’이라 말했는데, 봄과는 다른 깊이 있는 아름다움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무엇보다 가을에 벌써 낙엽들이 쌓이고 거름이 되어 내년 순환을 준비함이 거룩해 보입니다.

수목원 높은 데크길에 올라 가을이 가는 모습을 해가 기울도록 하염없이 지켜보았습니다
수목원 높은 데크길에 올라 가을이 가는 모습을 해가 기울도록 하염없이 지켜보았습니다

겨울은 어떨까요? 소나무 등에 쌓인 눈에 햇빛이 비칠 때 반짝이는 모습이 정갈하고, 예술 같아 보입니다. 그 모습도 좋지만 겨울 눈 숲속에서 절대 적막, 고요를 경험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경건함을 줍니다.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이분들과 수목원을 투어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낙엽이 두껍게 쌓여있는 숲길을 침묵하며 걷기 명상을 합니다. 세 발걸음을 걸으며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네 발걸음을 걸으며 입으로 숨을 내쉽니다. 낙엽 밟는 소리는 스쳐 보내고 자신의 호흡에 집중해봅니다. 낙엽 밟는 소리라는 바다에서 자신의 호흡이라는 각개 섬을 만든다고 할까요. 멀리 산 능선이 보이는 높은 데크길에 올라 단풍이 물들어가는 산하의 경관을 보며 위로를 받습니다. 낙우송의 갓 떨어진 열매에서 진한 솔향 냄새도 맡습니다. 교육장 바닥에 요가 매트를 펴고, 하늘 나무들을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에 큰 나뭇잎 하나가 갑자기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소리로 다가옴도 경험합니다.

이렇듯 수목원 투어와 프로그램을 진행했더니 어느덧 마칠 시간. 이들과 처음 만났을 때 어느 때가 수목원이 제일 좋은가에 대해 끝날 무렵 얘기를 나누기로 했는데 숲에 취해 잊었나 봅니다. 열린 답으로 남겨두어도 좋겠지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지금 가을을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가을이라서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 하는 매 순간이 최고이고, 나중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