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부동산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체.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로 전세 시장이 빠르게 위축하고 있다. 전세 물건이 줄고 가격은 오르는 전세난 속에서 세입자들은 전세계약 갱신을 통한 눌러앉기를 선택하거나 울며 겨자먹기로 월세로 전환하는 분위기다.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15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물량은 2만56341건으로 1년전(3만899건)보다 17.3%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월세 물량은 1만8273건에서 2만801건으로 늘어 약 13.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세 물량이 줄고 월세 전환이 늘어나는 '전세의 월세화'가 진행되는 모습이다.

10.15 대책, 전세 여파는

李정부의 세 번째 부동산 대책인 10.15 대책은 집값 안정화를 위해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을 규제지역(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 및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이는 기존의 규제 지역이 확대 지정된 것으로, 조정대상지역과 투기과열지구의 경우 기존 강남·서초·송파·용산구 4개 자치구는 그대로 유지되고 그 외 서울 21개 자치구와 경기도 12개 지역이 신규 지정됐다. 이로써 서울 전역이 조정대상지역과 투기과열지구로 묶였다.

또한 토지거래허가구역의 경우 규제지역 전체(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가 지정됐다. 강력한 수요 억제 대책을 통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이른바 '갭투자'를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지역에서는 2년간 실거주 의무가 부여되기 때문에 매수인이 취득(등기) 후 최소 2년간 전세 매물로 내놓을 수 없다. 전세를 끼고 주택을 구매하는 갭투자도 어려워졌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실거주의무라든지 이런 것들이 있다보니까 전세 물량 자체가 공급이 안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10.15 대책은 전세 대출 문턱도 높였다. 그간 대출 규제에서 제외됐던 1주택자의 전세대출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대출 한도가 축소됐기 때문이다. DSR은 모든 가계대출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연소득으로 나눈 비율로, 차주의 상환능력 대비 원리금상환부담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다. 총대출 1억 원 초과 시 은행권은 DSR 40% 이내, 비은행권은 DSR 50% 이내 규제가 적용된다. 그동안 1주택자의 전세대출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으나 이제 1주택자가 수도권·규제지역에서 전세대출을 받으면 이자 상환액을 DSR 산정 시 연간 원리금 상환액에 포함한다.

전세 물량 줄고 전세 가격 오르는 '전세난'

물량이 줄어들면서 전세 가격은 올라가고 있다. 10·15 대책 이후 상승세가 더 가팔라졌다. 한국부동산원 아파트 전세가격지수 변동률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10·15 대책 전후로 △10월 13일 0.13% △10월 20일 0.11% △10월 27일 0.13% 오르는 등 약 한달간 0.37% 뛰었다. 

아울러 서울 전세시장에서 '입주 직전 전셋값 하락'이라는 공식도 깨지고 있다. 통상 아파트 입주 시점이 가까워지면 임차 물량이 한꺼번에 풀리며 전셋값이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최근 입주를 앞둔 단지에서 오히려 전셋값이 오르거나 입주 직후 반등세를 보이는 등 이례적인 흐름이 관찰됐다. 이 역시 연이은 규제로 전세 매물이 줄면서 임대인 우위의 시장이 형성된 영향으로 분석된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동대문구 이문동 이문아이파크자이 전용면적 59㎡ A 타입은 호가가 3000만원 오른 6억 원에 재등록됐다. 또 다른 매물은 지난달 24일 5000만 원가량 호가를 높였다. 이 단지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5억 원대 후반 전세 매물이 확인됐지만 최근 들어 집주인들이 잇따라 6억 원대로 가격을 조정하고 있다.

눌러앉거나 월세 사는 세입자들…울며 겨자먹기 ‘전세의 월세화’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전월세 관련 안내문.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전월세 관련 안내문. 사진=연합뉴스

임차인들이 월세나 보증부 월세로 이동하면서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뚜렷해졌다. 실제 월세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최근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가 144만원을 웃돌며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0월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보증금 제외 표본 가구 월세 기준)는 144만3000원까지 상승했다. 올해 1월(134만3000원) 대비 7.4% 치솟았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내가 만약에 집이 있어서 전세를 주고 전세 보증금을 은행에 맡기면 은행에선 금리를 2% 초반대 밖에 안주는데 그렇게 하는거보다는 차라리 예적금 금리가 월세를 받는게 이율이 5% 가까이가 넘는다"며 "전세를 줄려고 하는 사람보다 월세를 받으려고 하는 집주인들이 늘어나게 된다"고 전했다. 이어서 "금리 인하 시기에는 금리 인하와 전세 가격은 역의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세난 속에서 세입자들은 이사 대신 눌러앉기를 선택하는 분위기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자료를 집계한 결과 10·15 부동산 대책 시행 이후(10월 16일부터 11월 9일까지) 25일간 체결된 서울 지역 아파트 전세 계약 7134건 중 1808건에서 계약갱신청구권이 행사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출규제 시행 직전 같은 기간(9월 21일부터 10월 15일까지) 사용 건수(1565건) 대비 15.5% 증가한 수치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임대차시장에서의 불안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로 이에 대한 추가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라며 “이론적으로 신규 입주 물량이 부족할 경우 전월세가격 상승 압력이 커지며 임대차시장은 실수요 중심의 시장이라는 점에서 국민 주거 안정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고 전했다.

내년 상반기도 전세값 상승 전망 우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가. 출처=연합뉴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가. 출처=연합뉴스

업계에선 내년 전세 시장도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부동산R114가 시행한 ‘2026년 상반기 주택시장 전망’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57.75%가 내년 상반기 전세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하락 응답(9.26%)의 6.2배에 달하는 수치다. 또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내년 부동산 경기 전망에서 전국 전세 가격이 4% 상승할 것으로 관측했다. 같은 기관이 가격 전망을 내놓은 이래 최대 수준이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확정적으로 전셋값이 오를 것이라 본다”며 “실거주의무로 인해 미시적으로는 거래 건수 하나가 생길 때마다 전세 물량이 하나씩 없어지게 되는 효과가 있는데 일시적인 정책의 부작용"이라고 전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결국 실거주의무, 대출 규제 이런 것들로 인해서 전세 공급이 급감할 것”이라며 “수요자는 증가하고 전세 가격은 우상향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전망했다. 또 “전세가격이 너무 많이 오르다 보면 월세화도 가속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입주 물량도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임대 제외)은 내년 1만7687가구, 2027년 1만113가구, 2028년 8337가구로 매년 줄어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