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부분이 주목하지 않고 지나친 시장에서, 누군가는 새로운 기회를 본다. 도서국, 내륙국, 혹한·혹서 지역 등 ‘화이트스페이스(White Space, 여백)’를 개척하며 설립 10여년 만에 10배 이상 몸집을 키운 유니레버인터내셔널(Unilever International)의 이야기다.
유니레버인터내셔널은 AI 기반 데이터 분석과 민첩한 실험을 결합한 ‘디지털 퍼스트 화이트스페이스 플레이북’으로 시장의 빈틈을 찾아내고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이코노믹리뷰는 그 전략의 중심에 있는 아심 푸리 CEO를 통해 글로벌 성장의 비결을 들어봤다.
‘화이트스페이스 성장 엔진’으로 도약
2012년 설립된 유니레버인터내셔널은 영국 기반 소비재 기업 유니레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사업 부문 중 하나로, 새로운 성장 영역을 개척하는 ‘화이트스페이스 성장 엔진’ 역할을 담당한다. 기존의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로는 충분히 공략되지 못했던 시장과 유통 채널, 브랜드, 소비자층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굴하는 것이 주요 업무다.
아심 푸리 유니레버인터내셔널 CEO는 “전 세계 약 190개국에서 매일 34억명이 유니레버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며 “각 시장에서는 주로 핵심 브랜드를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10여년 전부터 세계화, 이민, 여행, 디지털 상거래와 같은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새로운 미개척 소비자층이 형성됐고, 이러한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유니레버인터내셔널이 맡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대부분의 기업 조직들이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핵심 시장에 집중하는 반면, 유니레버인터내셔널은 오히려 진입 장벽이 높은 20%의 복잡한 시장을 탐색한다. 이를 기반으로 현재 도서국·내륙국·혹한·혹서 지역 등 접근이 어려운 40여개 시장에서 5억명이 넘는 소비자에게 제품을 공급하며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디지털 기반 ‘화이트스페이스’ 공략법은?
새로운 시장으로의 진입은 데이터를 읽고, 작은 실험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유니레버인터내셔널은 AI 기반 분석과 데이터 기반 인사이트를 활용하는 ‘디지털 퍼스트 화이트스페이스 플레이북’으로 미개척 시장의 가능성을 빠르게 검증한다.
아심 푸리 CEO는 “먼저 소셜 리스닝과 디지털 수요 맵핑을 통해 소비자의 충족되지 않은 니즈, 가격 민감도, 화이트스페이스를 파악한다”며 “이후 전자상거래나 D2C(소비자대상 직접판매) 플랫폼과 같은 온라인 채널을 활용해 특정 제품을 시범적으로 출시하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기 전 실시간으로 수요를 검증하고 전략을 다듬는다”고 말했다.
D2C 모델은 기존의 전통적인 유통 구조를 보완하면서, 소비자가 유니레버의 전체 브랜드 포트폴리오에 직접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유니레버는 전 세계적으로 약 400개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어, 각 국가의 전통적인 유통망을 통해 모든 브랜드를 동일하게 선보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D2C 모델을 통해 소비자에게 다양한 브랜드를 직접 선보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D2C 모델을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시범 운영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크로스보더 D2C 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품 반응이 확인되면 곧바로 현지 제조·마케팅을 본격화한다. 그는 “제품이 시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 시작하면 현지 제조·마케팅을 강화하고, 지역 파트너와의 공동 개발을 통해 현지 적합성과 비용 효율성을 높인다”며 “여기서 나아가 디지털 마켓플레이스, 현대 유통망, 전략적 리테일 파트너십을 결합해 유통 채널을 확장해 나간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입증된 화이트스페이스 성장 공식
이같은 방식은 특히 한국 시장에서 눈에 띄는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유니레버인터내셔널은 ▲도브(Dove) ▲바세린(Vaseline)을 시작으로 ▲폰즈(Pond’s) ▲스너글(Snuggle) 등으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며, 한국 소비자 특성에 맞춘 전략을 펼쳐왔다. 그 결과 불과 5년 만에 매출을 3배로 끌어올리며 시장 리더십을 확고히 했다. 푸리 CEO는 한국 시장에 대해 “한국은 가장 역동적이고 성공적인 시장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한국 시장에서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는 섬유 케어 브랜드 ‘스너글’이 있다.
푸리 CEO는 “디지털과 소셜 리스닝을 통해 한국 소비자들이 섬유 탈취제를 의류뿐만 아니라 실내 방향제로도 사용하는 트렌드를 발견했고, 특히 습한 여름철이나 장마철에는 실내 건조 관련 검색량이 급증한다는 점에 주목했다”며 “이에 스너글 룸 스프레이와 실내 건조용 제품군을 출시하고, 기존 섬유 탈취제 제품도 업그레이드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올리브영·주요 이커머스 플랫폼을 통한 타깃 유통 전략, 이색 협업을 통해 스너글은 두 자릿수 시장 점유율을 달성하며 카테고리 혁신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고 덧붙였다.
높은 디지털 활용도와 안목 있는 소비자층을 가진 한국 시장은 단순한 상업적 우선순위를 넘어, 유니레버인터내셔널의 글로벌 혁신을 시험하는 핵심 무대가 되고 있다.
그는 “한국 시장은 기능성, 가치,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안목 있는 소비자층이 두드러진다”며 “또한 디지털 친화적 성향이 강해 리뷰나 인플루언서 추천을 기반으로 합리적인 구매 결정을 내리고, 온라인 구매에도 적극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특성 덕분에 한국은 단순한 상업적 우선 순위를 넘어 유니레버의 핵심 글로벌 비즈니스 그룹 전반에서 혁신을 시험하는 중요한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니레버인터내셔널의 미래 전략을 묻다
디지털 기반 시장 개척 방식은 한국뿐 아니라 여러 신흥국에서 효과를 발휘하며 유니레버인터내셔널의 성장 모델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성과를 기반으로 유니레버인터내셔널은 설립 이후 10배 이상 성장하며 그룹 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조직으로 도약했다.
유니레버인터내셔널은 축적된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디지털 전환과 글로벌 성장 가속화로 다음 단계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푸리 CEO는 “향후 3~5년간 50억유로 매출을 달성하고, 유니레버의 핵심 성장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푸리 CEO는 다양한 잠재 시장과 주요 유통채널, 브랜드 전반에서의 성장을 확대하는 동시에, AI·자동화·멀티채널 혁신을 통해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할 방침이다. 동시에 여행, 호스피털리티, 신흥 시장 전반에 걸쳐 글로벌 파트너십을 강화해 소비자 접점을 확대하고, 차세대 소비자에게 한층 더 높은 가치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다.
끝으로 푸리 CEO는 “이러한 우선순위들이 하나로 모여 성장과 목적은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유니레버인터내셔널의 핵심 신념을 보여준다”며 “디지털 역량과 운영 민첩성, 그리고 구성원이 성장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결합함으로써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유니레버 안팎에서 업계를 선도하는 성과의 기준을 새롭게 정의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