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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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전기차 선두주자 테슬라가 한국 배터리 소재 기업들과의 협력으로 배터리 셀 내재화 행보를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비(非)중국산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꼽히는 테슬라의 행보가 한국 배터리업계에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2일 외신 등에 따르면 테슬라는 최근 양극재·음극재·동박 등을 공급하는 한국 업체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 외부 셀 제조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 배터리 생산을 늘리기 위한 전략으로, 배터리 셀의 핵심 소재 조달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테슬라의 배터리 셀 자체 생산 의지는 2020년 '배터리 데이'를 통해 천명됐다. 당시 기존의 배터리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차세대 4680 원통형 배터리를 선보이며 내재화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다.

내재화 노력의 일환으로 맥스웰 테크놀로지스를 인수하며 핵심 기술을 확보해 왔다. 맥스웰이 보유한 건식 전극 공정 기술은 배터리 생산 공정을 단순화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여 원가를 절감할 핵심 기술로 주목받았다.

다만 건식 코팅 기술과 탭리스 구조 등 혁신적인 공정을 4680 배터리에 적용하려 했으나 기술적 난제와 수율 등 난제에 직면했다. 배터리는 화학 물질 복잡성과 수많은 변수로 단기간에 기술력을 구현해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윤종훈 중앙대 융합공학부 교수는 "테슬라가 어느 정도 수준까지 연구가 진행됐는지는 파악되지 않았으나, 한국 소재 기업과 컨택한다는 건 어느 정도 자신있게 생산해 볼 수 있다는 수준에 간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배터리 기술 개발과 상용화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K배터리 소재기업, 글로벌 '기술력'에 IRA 업고 수혜받나

에코프로 헝가리 데브레첸 공장 공사 현장. 사진=에코프로
에코프로 헝가리 데브레첸 공장 공사 현장. 사진=에코프로

테슬라의 최근 행보는 한국 소재 기업들에 있어선 글로벌 입지 강화의 발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안정적인 배터리 생산을 위해 비(非)중국산 고품질 소재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4680 배터리는 주행 거리를 늘리고 충전 속도를 높이기 위해 니켈 함량 80% 이상의 하이니켈 양극재를 필요로 한다.

초고성능 소재 분야에선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포스코퓨처엠 등은 니켈 비중이 90% 이상인 하이니켈 양극재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고 대규모 양산 체제를 구축했다.

여기에 IRA(인플레이션감축법) 시행으로 테슬라는 기존 중국산 소재 의존도를 탈피해야 하는 ‘공급망 재편’이 불가피해졌다.

미국은 중국산 부품 사용을 제한하고 북미 지역 내 제조된 배터리 부품 사용에만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에 따라 테슬라가 한국 소재 기업들과의 접촉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테슬라 입장에선 소재 업체들이 미국이나 유럽 등 배터리를 적용할 공장 옆에 와서 생산해 주기를 바랄 것"이라며 "유럽의 경우 이미 일부 소재 업체들이 진출해 있어 호재로 작용할 수 있지만 미국 현지 추가 투자는 불가피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글로벌 전기차 시장 점유율 약 15~20% 수준인 테슬라에 공급하게 된다면 글로벌 배터리 소재 시장의 판도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다.

그는 "한국 업체들이 투 벤더나 쓰리 벤더로 들어가게 되면 글로벌 시장 물량의 약 5% 정도를 공급하게 되는 셈이 될 것"이라며 "이들이 기회를 잡아 단독 벤더로 들어간다면 시장 판도가 바뀔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EV 캐즘 극복 '촉매제' 효과 전망도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 사진=연합뉴스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 사진=연합뉴스

테슬라의 배터리 셀 내재화로 인해 국내 셀 기업들에게 위협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왔으나, 전문가들은 이 영향이 단기적으로 제한적이며 오히려 전기차 시장 파이를 확장시키는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에 무게를 싣는 모습이다.

윤종훈 교수는 "배터리는 자동차처럼 그냥 찍어내는 것과 달리 변수가 많아 시장 영향력 확보까진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이라며 "단기간에 대규모 생산으로 스케일업 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과 노하우가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현재 전기차 캐즘(일시적수요둔화)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테슬라의 배터리 셀 내재화 선언은 글로벌 산업의 주목도와 투자를 끌어올리는 촉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직접 셀을 생산하겠다고 나서는 건 배터리 기술의 중요성과 복잡성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며 "이 과정에서 전기차 수요가 확대되고 파이가 커지면 소재·셀·장비 생태계 전체가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테슬라의 내재화가 성공되더라도 외부 셀 공급을 완전히 끊을 수도 없다는 설명이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선 트럭, 엔트리급, 프리미업급 등 다양한 차종별 포트폴리오가 있는 상황에서 각 차종의 장단점에 맞는 최적화된 배터리를 적용하는 것이 효율적인 전략이기 떄문이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기술력과 더불어 품질 신뢰도까지 확보한 업체로 평가받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셀 3사들은 다양한 폼팩터·용량 포트폴리오로 고객사 맞춤형 전략을 강화하고 있으며 안정성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에도 전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소재가 배재되는 흐름 속에서 한국은 높은 기술력을 갖고 있어 사실상 유일한 대체 공급처"라며 "테슬라가 자체 생산을 확대해도 K기업들이 일정 포션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