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주장한 새벽배송 금지를 둘러싼 논쟁이 연일 노동계와 산업계를 중심으로 언급되며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민주노총 측은 해당 조처를 통해 택배기사의 과로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나, 정작 노동계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해당 조처 시행 시 일자리 감소, 산업 위축 등 적지 않은 부작용이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10년 전 도입된 새벽배송은 이미 많은 이들이 일상생활에 활용 중인 서비스로 자리 잡아 서비스 중단에 따른 광범위한 파장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새벽배송 금지보다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본질적인 해결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노동자 건강권 vs 생계 위협·소비자 편의

택배 쌓인 물류센터. 사진=연합뉴스
택배 쌓인 물류센터. 사진=연합뉴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지난달 22일 열린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 회의에서 ‘새벽배송’ 서비스를 금지하자는 주장을 내놓았다. 구체적으로 초(超)심야 시간인 0시부터 5시까지 배송을 금지하고, 주야 배송을 오전 5시 출근 조와 15시(오후 3시) 출근 조로 변경하자는 것이다. 사실상 새벽 배송을 전면 중단하자는 것으로 읽힌다.

택배노조 측은 초심야시간 배송 중단을 통해 택배기사의 과로를 막아야 한다는 취지이다. 민주노총 택배노조는 지난달 30일 입장문을 통해 “현행 새벽배송은 5일씩 또는 6일씩 계속 심야 노동하는 ‘연속 고정 심야 노동’으로, 생체 리듬을 파괴하여 수면장애, 심혈관 질환, 암, 우울증, 자살 충동 등 심각한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위험한 시간대의 배송 업무를 제한하여, 택배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수면 시간과 건강권을 보장하자는 것”이라며 “아침 일찍 받아야 하는 긴급한 품목에 대해선 품목 사전 설정 등을 통해 기존처럼 받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택배노조의 주장을 두고 업계에서는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그동안 노조 측에서 ‘연속적 야간 배송 규제’, ‘택배기사 휴식권 보장’을 주장한 적은 있어도 심야 배송 ‘전면 중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해당 주장이 당사자인 택배기사의 다수 의견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 쿠팡의 위탁 택배기사 1만여 명이 소속된 쿠팡파트너스연합회는 지난 3일 성명을 통해 “새벽배송 금지는 야간 기사 생계 박탈 선언이자 택배산업 자해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의 ‘심야시간(0시~5시) 배송 제한’과 관련해 야간 새벽배송 기사 2405명을 대상으로 한 긴급 설문조사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93%가 ‘심야시간 배송 제한’을 반대한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95%는 ‘심야배송을 지속하겠다’라고 했다.

이후 쿠팡의 직고용 배송 기사 노조인 쿠팡친구 노동조합(쿠팡노조)도 지난 7일 “(민주노총의 새벽배송 금지는) 민노총 탈퇴에 대한 보복으로 보인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쿠팡노조 측은 “조합원의 일자리를 빼앗는 주장을 노동조합이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라며 “대다수 야간 배송 기사들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만이 이를 고수하는 것은 그들의 조합 내 야간 배송 기사 비율이 극히 낮기 때문에 나머지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의미로 보일 정도”라고 지적했다.

만약, 새벽배송이 전면 중단될 경우 소비자 불편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날 배송한 상품을 다음 날 새벽 받아보는 새벽배송은 2014년 도입 이후 쿠팡, 컬리, SSG닷컴 등 주요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관련 서비스를 전개하며 보편화했다. 공정위 등에 따르면 이들 플랫폼의 회원 수를 모두 더하면 20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 높다. 사단법인 소비자와함께와 한국소비자단체연합이 지난 9월과 10월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 응답자 중 64.1%가 ‘새벽배송 서비스가 중단되거나 축소되면 불편함을 느낄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9.4%에 그쳤다. 또 새벽배송을 한 번이라도 이용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의 98.9%는 향후에도 계속 서비스를 이용하겠다고 답했다.

맞벌이 부부라고 밝힌 김진영(직장인·42세)씨는 “아이가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이라서 이것저것 준비물이 많은데, 낮에 챙겨주기 어려워 새벽배송을 자주 이용했는데, 이게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막막하다”라고 말했다.

산업계 “일터 무너뜨리는 일”

사진=전세버스생존권사수연합회
사진=전세버스생존권사수연합회

소상공인과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반발도 이어지는 중이다.

먼저, 소상공인은 온라인 판로 축소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8일 논평을 통해 “새벽배송 금지 주장에 대해 정부의 민생경제 회복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로 규정한다”라며 새벽배송 중단에 대해 비판했다. 새벽배송 중단이 현실화할 경우 이커머스 입점 판매자들의 손실과 함께 식재료 등 새벽배송 서비스를 활용해 장사 준비 등을 하는 이들의 피해가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쿠팡에 따르면 지난해 쿠팡 전체 판매자 중 소상공인 비중은 75%에 달한다.

그러면서 “만에 하나라도 ‘택배 사회적대화기구’와 관련된 국회의원들이 노조 측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하여 새벽배송이 금지된다면, 즉각적인 강력한 항의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와 함께 온라인쇼핑 업계, 전세버스 업계 등 새벽배송 중단 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관련 업계 관계자들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안성관 전국전세버스생존권사수연합회 회장은 새벽배송 중단은 “야간 물류 현장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수많은 근로자의 일터를 무너뜨리고, 그들을 안전하게 출퇴근시키는 전세버스 업계의 생존 기반까지 붕괴시키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업계는 새벽 시간대 근로자들의 안전한 출퇴근을 책임지며 야간 운행을 통해 정직하게 일하는 사업자들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왔다”라며 “전세버스 종사자의 생계 터전을 치워버리는 발상은 중단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국내 온라인쇼핑 관련 대표 기업들로 구성된 비영리 민간 경제 단체인 온라인쇼핑협회도 소비자 생활 불편, 농어업인과 소상공인 피해, 온라인 유통산업 경쟁력 약화 등을 이유로 새벽배송 중단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한국로지스틱스학회
사진=한국로지스틱스학회

학계에서도 새벽배송 중단이 경제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국로지스틱스학회가 발표한 ‘새벽 배송과 주 7일 배송의 파급효과 관련 연구’ 결과, 새벽 배송과 주 7일 배송이 중단돼 택배 주문량이 약 40% 감소하면 연간 54조3000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구체적으로 각각 연간 ▲소상공인 18조3000억원 ▲이커머스업계 33조2000억원 ▲택배업계 2조8000억원의 매출 감소가 예측된다.

거센 논쟁에 정치권에서도 가세하고 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자신의 SNS에 “‘새벽 배송 전면 금지’ 추진은 많은 국민의 일상생활을 망가뜨릴 것”으로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국제암연구소가 야간 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는 민주노총 측 주장에 “발암물질을 이유로 새벽배송을 금지하자는 논리는 현실과 동떨어진 말초적 접근”이라며 “햇빛도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상황에서 산업 전체를 금지하자는 건 오만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또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12일 열린 소상공인연합회 간담회에서 “이제 새벽배송은 국민에겐 없어선 안 될 생활 필수 서비스가 됐고, 소상공인에게도 너무 중요한 서비스”라며 “노조의 무리한 목소리는 커져만 가고 정부는 민주노총, 노조의 목소리를 줄일 어떤 힘도 가진 것 같지 않아 더 답답하다”라고 지적했다.

관건은 ‘비용’…단가 인상·고용 확대에 촉각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한편, 택배업계 내부에서는 이번 논쟁의 본질은 새벽배송 서비스의 중단보다는 추가 인력 채용, 단가 인상 등 택배기사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근본적 개선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해당 사안 이면에는 그동안 새벽배송으로 기업의 몸집의 불린 쿠팡의 고강도, 저임금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주요 택배기사 커뮤니티에는 “(쿠팡이) 매년 단가를 인하해 같은 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물건을 배송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려 업무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라는 내용의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자신을 현직 택배기사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배송 물량 증가를 단가 인하 명분으로 삼는데, 물건이 늘어날 경우 혼자 배송하기 어려워 자체적으로 알바를 채용하거나 지인에게 부탁해 함께 배송해야 한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실제, 전국택배노동조합과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쿠팡 배송기사 노동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파트 배송 건당 수수료 중위값은 주간이 665원, 야간은 850원이고 일반 번지는 주간이 730원, 야간이 940원으로 각각 나타났다. 통상적으로 다른 업체들의 새벽 배송 단가가 약 2000원인 것과 비교해 낮은 수준이다.

이 밖에도 프레시백 수거와 세척, 물건 분류작업(통소분) 인력 별도 충원으로 업무 분담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해당 작업에 시간을 할애하느라, 실제 배송할 시간이 줄며 노동 강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커머스 업계도 비슷한 의견이다. 이미 업계 내 자리 잡은 새벽배송 서비스를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으로 노조 측과 업계 간 합의를 통해 절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관련 업계 관계자는 “새벽배송 외에도 현재 새벽에 일하는 직군이 많은 상황에 새벽배송만 중단하는 것은 사실상 현실과 괴리가 있는 주장”이라며 “처우 개선, 수당 인상 등을 통한 절충안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예상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