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금융지주 본사. 출처=각사
4대 금융지주 본사. 출처=각사

금융당국이 금융사 임원의 개별 보수를 주주총회에서 보고하고 주주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제도를 추진한다.

아울러 금융사고가 발생할 경우 관련 임직원의 성과급을 환수하는 '보수환수제도(클로백·clawback)'를 병행 도입할 방침이다. 단기 성과 중심의 경영 관행을 막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금융권의 단기 실적주의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는 금융당국의 소비자 보호 방침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평가다. 그러나 금융권 내부에서는 '성과급 환수'와 '임원 보수에 대한 주주 통제'라는 강한 규제의 이중 압박에 경영 부담이 커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 개정을 통해 임원 보수 체계 전반을 손질하기로 했다.

반복되는 금융사고를 막고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의 일환으로, '세이온페이(say-on-pay)'와 '보수환수제도(clawback)' 도입을 포함한 법안을 조속히 발의할 예정이다.

세이온페이는 주주가 개별 임원의 보수에 직접 동의하거나 반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이미 시행 중이다.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이 회사 실적과 상관없이 과도한 보수를 챙긴다는 비판이 제기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도입됐다.

현재 국내에서는 이사 전체의 보수 총액만 주총에서 승인받고 있으며, 개별 임원 보수에 대한 주주의 통제권은 없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이번 제도 도입을 통해 주주가 금융사 경영진의 보수를 직접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주총에서 개별 임원 보수가 보고되면, 주주가 이를 평가·표결해 반대 의사를 밝힐 수 있다. 영국과 미국의 사례처럼 초기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더라도, 주주 반대가 공개되면 기업 평판에 미치는 영향이 커 사실상 제재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본다.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 임직원의 기존 성과급을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클로백 제도도 함께 추진된다.

클로백은 비윤리적 행위나 손실 발생 시 이미 지급된 성과급을 환수하는 장치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유럽 금융권에서 도입됐다.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국내 금융사들은 일부 성과급 이연제를 통해 환수 근거를 마련하고 있지만, 이는 권고 수준에 불과해 실질적 환수 비율은 미미하다.

금감원 집계에 따르면 금융권이 2023년에 지급한 1조원 규모의 성과급 중 실제 환수된 금액은 9000만원에 그쳤다. 내부 규정만으로는 실효성이 낮다는 점에서 법 개정을 통해 강제력을 부여해야 책임경영이 강화될 것이라는게 금융당국의 판단인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금융당국의 이번 조치는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벨기에 부동산펀드 등 투자자 손실 사태 이후 금융사의 단기 실적 위주 경영 구조를 바로잡겠다는 의도와 맞닿아 있다. 당국은 잇따른 불완전판매와 내부통제 부실을 금융사 경영진의 책임으로 보고,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이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상품을 출시해 단기 실적이 좋으면 인센티브를 많이 받고, 사고가 나면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금융사 KPI(핵심성과지표) 개편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표적 사례로 금감원은 벨기에 펀드 판매사에 대해 "설명의무 위반 등 내부통제 위반이 확인되면 이미 처리된 건을 포함해 모든 분쟁 민원의 배상 기준을 재조정하도록 지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이번 조치가 지나친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내놓고 있다.

우선 주주들의 과도한 보수 삭감 요구나 이미 지급된 성과급을 지키려는 임원들의 불복 소송이 빗발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출범 이후 금융소비자 보호 중심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금융 혁신이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제도 도입이 금융사 경영진과 주주 간 갈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주주들이 경영진 보수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통제권을 갖게 되면 연기금 등을 통한 간접 개입이 확대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금융위는 이번 개정을 통해 금융사 보수체계를 투명하게 하고, 책임 있는 경영문화를 정착시킨다는 방침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국정감사에 출석해 "은행의 금융사고가 급증하는데도 성과급은 대폭 증가하는 도덕적 해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에 대해 "금융사의 손실이 발생한 경우 이미 지급한 보수를 환수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겠다"는 취지로  답변했다.